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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
좌파는 왜 제러미 코빈을 지지해야 하는가

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이 뜨거워지고 있다.(8월 22일~9월 21일 우편 투표, 9월 24일 결과 발표)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노동당 당권을 둘러싼 갈등의 뿌리를 살펴보며 제러미 코빈의 승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삽입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에도 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이 치러진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러미 코빈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두 경선의 공통점은 이것이 전부이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당대표 경선은 노동당 의원단(PLP)이 코빈을 당대표에서 밀어내려고 격렬하게 공격한 결과로 치러지는 것이다.

코빈에 대한 지지가 훨씬 더 크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지난해 코빈의 선거 유세에 모인 사람들의 규모가 인상적이었다면, 올해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이다.

8월 15일 런던에서 열린 코빈의 선거 유세에 모인 지지자들. ⓒ사진 출처 Steve Eason (플리커)

잉글랜드 북부 도시 리버풀, 헐, 리즈에서 각각 1만 명, 3천 명, 2천 명이 모였고,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 주의 여러 도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를 보면, 런던에 사는 유복한 자유주의자들이나 코빈을 지지한다는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노동당 좌파 성향의 저널리스트 오언 존스는 코빈 선거 유세의 의미를 깎아내리려 애썼다. 오언은 이렇게 썼다. “1983년 총선을 앞두고 마이클 풋[1980~83년 노동당 당대표]은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지만 총선 결과는 노동당에 재앙이었다.”

1980~81년 겨울 실업률 증가에 항의해 리버풀과 글래스고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마이클 풋이 연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조직 노동계급이 여전히 강력했던 도시에서 노동당의 대표로서, 그것도 지위가 확고한 당대표로서 연설했다. 198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큰 낭패를 본 것은 파업이 연이어 패배하고 노동당 우파가 이탈해 나간 결과였다.

전례 없는

노동당 좌파의 지도자로서, 당내 경선에서 맹렬한 공격에 시달리며 의원단의 다수가 등을 돌린 코빈의 선거 유세에 그만한 규모의 사람들이 모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코빈의 선거 유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지난 1년간 노동당 당원이 증가한 것을 보면, 좌파적이면서도 진정으로 대중적인 운동이 코빈 주위로 모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노동당 의원단이 지지하는 후보 오언 스미스가 당원 구성 변화를 의식해 외견상 좌파적인 강령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동당 우파 성향의 의원 한 명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약간 참담한 심정이지만, 당대표 후보로 온건 좌파 성향의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정말 전례가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백 년 동안 노동당 내 권력 구조는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의원단, 노동당 가맹 노동조합 지도자들, 지역위원회(CLP)의 기층 당원들이 그것이다. 그중 구심 구실을 해 온 것은 여러모로 노동조합들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 노동조합들을 좌지우지하는 상근 간부층이라는 관료였다.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착취 조건을 놓고 자본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 관료의 목표는 노동자 투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관료는 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운동 내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세력이다.

지역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노동당] 좌파의 운동은 1920년대, 1930년대, 1950년대, 1970년대 말에 성장했다. 그때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당대회에서 블록투표권[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표를 노조 지도부에게 주는 것]을 행사해 노동당 좌파들을 패퇴시켰다.

본질적으로 노동당은 의원단과 노동조합 관료의 우파적 동맹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다.

그래서 노동당이 진정한 반자본주의 정당이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노동당은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라고 부른 정당으로, 즉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에서 생겨나지만 노동자 투쟁을 기존 체제 안에 묶어 두려 애쓰는 정당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제 이 메커니즘이 망가지고 있다. 얄궂게도 그 이유의 하나는 노동당 우파의 지나친 자신감이다.

신노동당 시절(1994~2010년), 노동당 우파는 노동조합과의 연계를 끊어 노동당을 보통의 ’중도좌파’ 정당으로 변모시키려 애썼다.

[1994~2007년 노동당 대표이자 1997~2007년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는 이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에드 밀리반드가 2010년에 노동당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는 노동조합의 지지 덕분이었다. 부분적으로 그 때문에 에드 밀리반드는 노동당 우파의 핵심 요구 하나를 양보한다.

그 뒤로 노동당 대표는 평당원, 노동당에 가맹한 노동조합의 조합원, ‘명부 등록 지지자’[일정액을 납부하면 될 수 있다]의 1인 1표제로 선출하도록 바뀌었다. 노동조합의 블록투표라는 완충장치가 사라진 덕분에 지난해 당대표 경선은 영국 사회에 널리 퍼진 정치적 급진화 정서에 더 민감해질 수 있었다.

긴축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은 코빈의 출마에서 그 표현을 찾았다.

당시 코빈은 신노동당계 후보들을 압도했고, 이번에도 오언 스미스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코빈이 승리한다면 노동당 내 권력 구조가 재편될 것이다. 평당원의 지지를 받는 당대표 코빈과 그에게 매우 적대적인 의원단이 맞서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코빈을 지지해 왔다. 바로 그 덕분에 코빈은 6월 23일에 치러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노동당 예비내각의 장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상황에서도 지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내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졌고, 이를 보며 코빈을 지지하던 사람들 일부가 겁을 집어먹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오언 존스이다.

오언 존스는 노동당 우파를 편들지 않지만 코빈 진영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동당의 지지율이 ‘궤멸적’인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고도 비판했다.

코빈의 앞날

이 비판은 좌파들 사이에서 광범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오언 존스는 자기 페이스북에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침묵하기보다는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내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겠다. 반면 좌파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다.”

이 말은 몹시 불쾌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틀린 비유이기도 하다.

코빈과 좌파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 우파가 그들을 절벽 아래로 떠밀려 애쓰고 있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보수당이 혼란에 빠진 때에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사퇴하며 코빈에 대한 적대를 시작한 것은 바로 힐러리 벤, 엔절러 이글 등 노동당 우파였다. 그래도 코빈을 당대표 자리에서 밀어내지 못하자 그들은 코빈의 대항마로 오언 스미스를 지지하고 나섰다.

지금은 급진좌파가 모두 코빈을 지지해야 하는 때이고, 사람들이 오언 존스에게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오언 존스가 스스로 밝힌 고민은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바로 노동당이 근본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라는 점이다. 이는 당내 우파든 좌파든 모두 받아들이는 생각이다.

코빈의 스승인 토니 벤[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노동당 좌파 운동을 이끈 인물]은 의회민주주의 옹호자였다. 토니 벤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변모시키고 영국을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의회민주주의의 힘이 확대되기를 원했다.

더 간단히 말해, 노동당 좌파는 선거에서 승리해 사회주의를 이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노동당 좌파에게도 선거와 지지율은 중요하다.

현재 노동당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낮게 나타나는 것은 보수당이 테러사 메이를 당대표로 내세워 단기적 수혜를 입고 있는 것과 [코빈에 대한] 노동당 의원단의 ‘쿠데타’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합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이 그럴지라도 다음 몇 달 동안 노동당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면, 코빈은 오언 스미스를 격퇴하고 당대표가 되더라도 점증하는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코빈을 지지했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점점 초조해져서 그에게 당내 우파와 타협하라고 촉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글이 쓰이고서 영국에서 셋째로 큰 노조 GMB 사무총장은 “현실을 직시하자”며 스미스 지지로 돌아섰다. 그의 행동은 불과 두 달 전 GMB 대의원대회가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게” 코빈을 지지하기로 표결한 것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가장 큰 두 노조인 유나이트와 유니슨을 포함한 대다수 노조는 코빈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노동당 좌파의 구상, 즉 코빈과 존 맥도넬이 주장하듯이 노동당을 사회운동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에 선거에서도 승리하는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구상에 내재된 긴장을 보여 준다.

대중 투쟁의 리듬이나 필요는 선거의 리듬이나 필요와 달라서, 그 둘은 꽤 어긋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 SWP는 노동당 바깥에 있으면서 대중 투쟁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선거는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여러 전선의 하나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전선도 아니다.

우리는 대중운동을 건설하고 그에 대한 지지를 조직한다. 우리는 그런 대중운동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삶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코빈 주위에 결집한 운동이 이 목표의 성취에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당 우파에 맞서 코빈을 확고히 지지한다.

좌파는 모두 코빈이 오언 스미스를 물리칠 수 있도록 더 넓은 노동운동 안에서 코빈 지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

코빈이 확실한 승리를 거둔다면, 영국 좌파가 더 투쟁적이고 원칙적인 기초 위에 서도록 할 진정한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붙잡는 과정에서 좌파(노동당 안에 있는 좌파든 바깥에 있는 좌파든)는 모두 쉽지 않은 전략적·전술적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판돈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