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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입원한 이주노동자까지 강제 연행해 구금한 경찰

경찰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후송된 이주노동자를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연행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하는 야만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기구가 미등록 체류자 단속추방을 위해서 이주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8월 12일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 왕아무개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앞에 가던 트럭이 갑작스레 좌회전을 하는 바람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왕 씨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고 늑골 골절과 다발성 좌상,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출동한 창녕 경찰서 경찰은 왕 씨의 신분 확인을 해야 한다며 왕 씨를 데리고 집에 가서 여권을 확인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환자를 데려간 것도 모자라, 왕 씨가 미등록 체류자임을 알게 된 경찰은 곧바로 경찰서로 연행했다. 링거 바늘도 빼지 못한 채 연행된 왕 씨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뇌진탕인 상태에서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 했고, 조사가 끝나자 창원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구금시설)에 갇혔다.

경찰은 공대위가 항의하자 되려 “도주하면 책임지실 겁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다행히 왕 씨는 공대위와 가족들의 항의로 8월 17일 구금이 일시적으로 해제돼 가족의 간병을 받으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창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돼 있던 5일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왕 씨는 구금돼 있는 동안 매일 여러 번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며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사고 당시 다친 다리는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왕 씨의 가족들은 “아무리 불법 체류자라도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공대위는 창녕 경찰서가 왕 씨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찰의 이런 비인간적 태도는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강화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올해 초 정부는 11.3퍼센트인 미등록 체류율을 2018년까지 9.3퍼센트로 낮추겠다며 “상시 단속 체제 강화”를 강조하고, 경찰청까지 동원하는 정부 합동 단속을 벌였다.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1만 8천, 1만 9천 명이었던 단속 숫자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벌써 1만 5천 명에 이르렀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들을 범죄자 취급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정부의 잘못된 제도에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체, 농축산업 등에 부족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들여 온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의 유연한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주를 막고 직장 이동 금지, 체류 기간 제한, 가족 동반 불허 등 각종 규제를 가한다.

이런 가혹한 규제 때문에 임금 체불이나 장시간 노동, 폭언과 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작업장을 뛰쳐나와 미등록 신분이 되는 일이 흔하다.

또 한국인 배우자와 이혼해 체류 자격까지 상실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난민 인정률이 지독히 낮은 한국에서는 난민 인정이 거부돼 미등록 신세가 되는 일도 많다.

이처럼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체류 기간을 넘기거나 자격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 낙인을 찍고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기적으로 단속·추방을 벌이며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강요한다.

이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심각하다. 미등록 체류자라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고, 부당한 처우나 인권 침해를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단속·추방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일도 적지 않게 벌어진다. 이번 사건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단면을 보여 준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를 통제하고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