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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자들 또다시 ‘운동권’을 배제하다

8월 23일, 이화여대 본관에서는 ‘대(大)만민공동회’가 열렸다. 농성장에서 매일 열리던 만민공동회와 달리 운동의 방향에 대해 “모든 이화인이” 논의하자는 취지로 열린 특별한 모임이었다. 나도 참석했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이 지난 8월 17일 이후 주장해 온 것처럼, 총장 사퇴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공개적 대중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최경희 총장은 한편으로는 ‘대화’를 하자며 언론을 의식한 제스처를 반복하고 있었고, 경찰은 ‘감금’ 혐의로 총학생회장 등 대표자들을 소환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점거를 확대하고 더 큰 연대를 이끌어 내야 한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토론과 결정이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이 토론에 참석하려던 양효영은 아예 본관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자원봉사자벗”(이하 자봉벗, 본관 점거 농성을 통제하는 그룹)들은 양효영을 들여보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며 투표를 주도했다. 지난 7월 31일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배제가 결정된 바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이와 관련해서는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농성에서 배제하는 것은 근시안적 단견일 뿐이다’을 참고하시오.) 이번에는 심지어 그에게 주장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표결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이번 표결 결과는 지난번과 달랐다. 주도적으로 배제를 주장한 사람들은 ‘운동권’을 받아들이면 경찰과 언론의 공격 빌미가 될 것이라며 다시금 두려움을 조장했지만, 배제에 반대한 학생이 십여 명으로 늘었다. 양효영이 입구에서 막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함께 항의한 학생들도 있었다.

표결 과정에서 노동자연대 회원인 졸업생 성지*이 배제 반대 주장을 하자 곧바로 그도 ‘운동권’으로 지목당했다. 이미 그와 나에 대한 신상 정보가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떠돌았고, 이를 유포한 학생 일부가 우리를 알아 본 듯했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자봉벗이 와서 “알아서 조용히 나갈 것인지, 투표에 부쳐진 후 나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협박했다.(이들은 대부분의 농성 참가자들과 달리 처음부터 시종일관 신분을 숨겨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다.) 우리는 스스로가 ‘운동권’인지 아닌지, 그것을 부정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 당해야 했다. 전형적인 마녀사냥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항변했다.

“나는 최경희 총장 퇴진 요구를 지지한다. 하나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양한 의견에 대해 토론하고 이후 그 의견들이 실천에서 검증받는 게 민주주의다. 내 의견을 들어 보기도 전에 ‘운동권’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나가라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정치색을 가지면 탄압의 빌미가 되고 운동이 위험에 처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좌파를 배제했다고 경찰과 학교 당국이 이 운동을 지켜 줬던가? 경찰과 학교 당국은 어떻게든 빌미를 만들어 탄압할 수 있다. 이곳에는 세월호 팔찌를 하거나 더민주당 지지자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더민주당마저 선거철마다 ‘종북’이라고 공격받는다. 우리가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휘말리고 운동의 폭이 좁아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것이 본관에 들어와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발언이었다. 내게는 고작 3분도 안 되는 시간을 줬고, 그마저도 중간에 일부 자봉벗들이 “그렇게 길게 들어 줄 시간이 없다고요!” 하고 소리를 지르며 끊어버리려 했다. ‘느린 민주주의’가 과연 말처럼 실현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의사 결정 과정도 일관되지 않았다. 우리의 항변을 듣고 나서 본관 학생들 다수가 ‘시간을 다른 데 쓰지 말고 그냥 본 안건을 논의하자’고 해서 퇴출 논의는 중단됐다. 그런데 회의 진행 도중에 ‘마이크벗’(사회자)이 다시 익명 게시판에 글이 자꾸 올라온다며 추방 투표를 시작했다.(농성장에서는 농성 참가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 중요 사안이 익명 게시판 여론을 핑계로 번복된 적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농성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늘고 있는 이유다.)

투표 전 찬반 토론에서 우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정치 배제’ 논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현재 익명 게시판에서조차 문제제기를 받고 있다. 더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에게 이대 사태에 ‘개입’을 요구하는 활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도한 처사다”, “특정인을 배제하는 것은 느린 민주주의의 본질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하는 등 반대 발언들도 나왔다. 결국 자봉벗들은 표결을 진행했다. 그런데 ‘마이크벗’(사회자)은 어이없게도 표결 결과를 밝힐지 여부를 표결에 부쳤다. 이 문제에 대해 참가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차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처사였다. 결국 우리는 농성장 밖으로 쫓겨나면서 도대체 찬성과 반대가 각각 몇 명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또다른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 학생이 다른 곳에서 휴대전화 캡쳐 소리가 들렸다고 제보하자 자봉벗들은 조별로 휴대전화를 검사하라고 공지했다. 반발이 나오자 표결로 밀어붙이려 했고 이런 오만방자한 군림 행위에 위축된 일부 참가자들은 서로 휴대전화를 보여 주며 자신의 ‘순수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일부 자봉벗들은 우리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보낼 수 없다며 우리의 휴대전화 앨범과 메신저를 검사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쫓아다니며 영상을 찍었고, 일부 자봉벗들은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유출하지 말 것”을 동영상이나 자필로 서약하라고 강요했다.

운동권이라며 쫓아내 놓고 ‘끄나풀’ 취급하는 것도 모욕적이었는데, 이들이 말한 “내부에서 있었던 일”에는 농성 참가자들의 신상이 아니라(사실,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우리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 쫓겨났는지에 대한 사실들도 포함됐다.

“본관 안에서 느끼신 감정은 ‘유출’해도 되지만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유출’하실 수 없다. ‘기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왜 기분이 나쁜지는 말해서 안 된다.” 이런 부당한 강요 속에 우리는 밤 12시까지 본관 입구에서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붙잡혀 있었다. 부당한 강요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날 우리 말고도 쫓겨난 ‘운동권’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휴대전화 앨범을 검사당했는데 온라인 익명 게시판을 캡쳐한 사진과 민중총궐기 참가 사진을 담고 있는 게 쫓겨난 이유였다고 한다.

나는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총장 사퇴 이후의 대안을 토론해서 마련하자’는 내용의 리플릿을 학교 정문에서 뿌리다가 본관에서 나온 자봉벗 3명에게 제지를 당한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리플릿을 수거하러 왔다. 응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하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나의 단호한 거절에 반론을 펴지 못하고 돌아간 바 있다.

모순과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조직 방식

‘운동권’ 배제에 찬성한 사람들의 일부는 이런 조처가 비민주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경찰과 학교 당국의 탄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다. 나와 졸업생 회원이 배제될 때 본관에 있던 어떤 학생들은 ‘이런 상황 자체가 폭력적인 걸 안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끝내 우리 편을 들어 주지는 않았다. 이처럼 본관에서 농성을 지속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운동권 배제’, ‘정치색 배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존재한다.

물론 학교 측과 경찰은 좌파를 탄압의 빌미로 삼을 수 있다. 좌파들은 일상적 시기엔 상대적 소수인 데다, 연대를 건설하고 더 전투적으로 싸우자고 하기 때문에 정부나 학교 당국에게 눈엣가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경희 총장은 농성 초기에 기자회견을 열어 ‘외부세력’ 운운하며 공격의 빌미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런 빌미는 어디까지나 탄압이라는 정해진 방향 아래 이용되는 핑계일 뿐이다. 학교 측은 총학생회가 이 농성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고 있지 않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경찰은 결국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등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세월호 유가족은 받지도 않은 보상금을 빌미로 ‘돈벌레’라고 공격받았고,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사용자측에 ‘찍힌’ 노동자들은 ‘업무 불량’으로 표적 징계를 받기도 한다. 운동을 탄압하려는 권력자들은 때때로 조작을 해서라도 빌미를 만들 수 있다.

운동 내 ‘자기검열’보다 훨씬 좋은 방법은 따로 있다. 첫째, 온갖 이간질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더 민주적인 토론과 실천 속에서 똘똘 뭉치는 것이다. 그런 단결 속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 중 일부에 대한 표적 탄압이 아무 소용 없음을 만천하에 입증하는 것이다.

둘째, 운동이 더 크고 넓은 연대를 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곳곳에서 대학 총장의 불통에 맞서고 있는 대학생들,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이화여대의 본관 점거 농성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 이화여대 운동에 연대하고 함께 지켜 줄 세력이 늘어난다면 경찰과 학교 당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이대 본관 점거 조직자들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거부함으로써 어려움에 놓여 있는 듯하다.

‘운동권’ 배제 논리에 함축된 외부 배척 때문에 지금의 본관 점거 농성 조직자들은 전국 수십 개 대학에서 보내온 연대 의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연대를 거부해 버렸다.

무엇보다 특정 학생들을 운동에서 배제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왕따 만들기’를 하는 것은 이 운동을 지지하는 진보적이고 양식있는 학생들까지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 운동이 고립되고, 지지자를 점점 잃어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운동이 폐쇄적 모양새를 띨수록 우파들이 이 운동을 ‘엘리트주의적 순혈주의’ 운동이라고 몰아갈 빌미를 주게 된다.

본관 점거 투쟁의 감동적인 성과와 단결의 경험이 한편에 존재하지만, 통제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직 방식 때문에 점점 열의가 식어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착잡한 심경들은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글을 올렸다가는 (학교 측과 연결된) ‘교직원’이나 ‘첩자’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방식이 민주적인가? 반면 ‘운동권’ 배제 글은 엄청난 응원 속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온라인 토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보여 주듯이 익명 게시판에도 늘 정치적 입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관 농성 조직자들은 자신들이 형식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리더십은 형식적 절차를 거친 뒤에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성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을 때 ‘지도력’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미 발생하는 것이다. 오히려 선출 절차는 그 결과일 때가 흔하다.

물론 본관 점거 농성을 이끌어 온 지도부에는 커다란 강점이 있다. 학생들의 불만을 단호한 전술로 구현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 학생회의 지도력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도부가 모호하다는 약점은 그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성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특히,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선출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임의적으로(게다가 잔인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이해심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진심으로 운동의 발전을 바라며

농성장의 지도부는 자신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이 단결을 해치고 운동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이라고 본다. 나와 졸업생 회원이 퇴출될 때 별것도 아닌 “안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함구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한 논리도 사실은 이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지도부든 결코 무오류일 수 없다. 그러니 비판받아야 할 점이 있다면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운동이 더 강력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본관에서 부당하게 추방됐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본관 점거 운동이 더 소기의 목표를 이루기를 바란다. 그래서 최경희 총장이 사퇴하고 그 이후에 학교 운영에서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적인 이화여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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