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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한상균 위원장의 사퇴 철회에 부쳐:
단결의 선용과 오용

한상균 위원장의 사퇴 철회를 환영한다. 노동자연대는 ‘박근혜의 남은 임기 3년 동안 맞짱 뜨겠다’던 한상균-최종진-이영주 지도부의 약속을 믿고 지지해 온 조합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사퇴를 철회하고 “투쟁 지도부”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었다. 한상균 위원장은 몇 날 며칠 뜬 눈으로 고심한 끝에 다행히 철회를 결심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상균 위원장의 사퇴 철회가 조합원 직선으로 선택 받은 투쟁적 지도부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의나 타의에 의해 중도하차할 뻔했다가 직책을 유지하게 된 지도자들은 모름지기 자신의 유임이 어떤 세력의 어떤 염원에 힘입은 것인지 잘 알아야 올바르게 처신할 수 있음을 역사적 경험들은 보여 준다. 한상균 위원장의 경우, 그것은 투쟁을 이끌다 수감된 위원장의 사퇴를 납득하지 못하는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주로 나왔다. “정책 대대 이후 한상균 지도부가 지도력의 한계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일각의 평가는 조합원들 대부분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그런 논란을 찻잔 속의 폭풍으로 여겼고, 단호한 투쟁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상균 위원장이 물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민주노총 내 좌파들도 한상균 위원장이 사퇴를 철회하고 당면한 투쟁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사퇴를 철회한 한상균 지도부는 ‘찻잔 속 폭풍’인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보다 기층 조합원들의 염원과 투쟁 잠재력에 중요성을 둬야 한다. 지금 박근혜의 노동개악과 구조조정, 노조탄압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단호하게 투쟁을 선언하는 것이 첫 걸음일 수밖에 없다. 1년반 전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조합원들이 상근간부층의 다수파인 후보조가 아니라 한상균 후보조를 선택한 것은, ‘투쟁하는 법을 잊어버린 민주노총의 투쟁 사령부가 되겠다’고 공언한 것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하고 그때와 같은 취지로 사퇴 철회를 촉구한 조합원들의 바람을 잊지 않는 것은 한상균 지도부에게 비단 도덕적 책무가 아니다. 그것은 한상균 지도부가 기층의 투쟁이 활성화됨으로써만 힘(부양력)을 받고 상층 기구 내의 세력관계에도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좌우 아우르는 통합 지도부는 지도력 강화 방안이 못 된다

이 점에 비춰볼 때 한상균 위원장이 서신을 통해 지도집행력 강화 방안으로 제안한 것은 상근간부층의 단합에 주안점을 둔 조처로 보인다. 수석 부위원장 직무대행을 지명하고 전략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도력을 보강하자는 것은 사실상 지도부 확대개편안이다. 그런데 전략특별위원회 구성 단계에 들어가면 안배를 요구하는 여러 압력이 반영될 터이고, 결국 직선으로 선출된 좌파 지도부가 우파를 포용해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 지도부를 구축하는 희한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실제로 9월 9일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일부 중집 성원들은 한상균 지도부에 ‘인적 쇄신’과 ‘통합 지도부’ 구축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상균 지도부의 사퇴 철회를 수용할 테니 인적 쇄신과 통합 지도부 구축을 하라는 것은 부당한 요구다. 한상균 위원장은 조합원들 다수의 불만에 직면해 사퇴를 표명했던 게 아니고, 그런 위기로부터 그를 우파 지도자들이 구해 낸 것도 아니다. 앞서 필자가 지적했듯이, 오히려 대다수 조합원들은 정책 대대 이후 일각에서 개진한 ‘지도력 한계’ 주장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 우파 지도자들이 한상균 지도부에 정책 대대 ‘파행’의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부당한 압박이다.

정책 대대를 ‘파행’으로 규정하는 것은 특히, 진보통합정당 건설 추진안의 관철을 유일한 잣대로 보는 특정 세력의 편향된 평가다. 정책 대대에서 중집 정치전략안(1안과 2안)은 모두 폐기됐지만, 전략 투쟁 의제와 조직 강화 방안, 전략조직화 등이 논의되고 통과됐다. 이 명명백백한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정책 대대 파행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정책 대대에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사태를 몰아가는 것은 부정직한 짓이다.

급기야 일부 중집 성원들은 이런 억지를 공식 회의(9월 9일 중앙집행위원회) 석상에서까지 부리며, 정책 대대에서 이뤄진 엄연한 결정을 무로 돌렸다. 정책 대대에서 대의원들이 회의 절차에 따라 의결한 것을 중앙집행위원회가 뒤집은 것이다. 결국 이들은 통과된 전략 투쟁 의제와 전략 조직화 등을 반대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정책 대대를 ‘파행’으로 규정함으로써 한상균 지도부를 압박하고 진보통합정당 건설 추진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밀어붙이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중앙집행위원회가 정책 대대 의결을 뒤집은 것도 그렇지만, ‘중집안이 통과되지 않은 대의원대회는 파행’이라는 입장도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노조 관료주의의 관점이다. 중앙집행위원회가 일상적 업무를 결정하는 의결·집행기구라면 대의원대회는 그보다 상위의 의결기구다. 중앙집행위원회는 대의원대회에서 논의되고 의결된 범위 안에서(여기에는 당연히 중집안에 대한 반대/폐기가 포함된다) 이후 집행을 추진해야 한다. 만약 중집안이 통과되지 않는 대의원대회를 파행으로 규정할 요량이라면 대의원대회는 뭐하러 하는가? 그것은 대의원대회를 중집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거수기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런 관행을 진보정당 의원단과 관료기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의 안이 부결되면, 약간 말을 바꾼 유사안을 다시 내놓고 통과시켜 달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안을 추진할 발판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것마저 통과 안 되면 지도부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까지 곁들여진다. 모호한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사실상 중집이 백지 위임을 받으려고도 한다. 이런 것을 잘하는 게 매끄러운 회의 진행처럼 여겨진다. 그래도 지도부의 안이 부결되면, 그것이 통과될 때까지 임시 대의원대회를 계속 연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이런 관행은 노동조합의 진정한 힘을 평조합원과 대의원으로부터 상층의 관료기구로 이동시킴으로써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좀먹을 뿐이다.

정책 대대에 대한 ‘파행’ 규정의 칼끝은 진보통합정당 건설 추진안 관철에 걸림돌이 된 인물들을 향할 것이 뻔하다. 정책 대대 의장이었던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과 양동규 정치위원회 위원장 등이 대상일 공산이 크다. 최종진 직무대행은 한상균 후보조의 수석부위원장으로 당선했다가 한상균 위원장 구속 이후 직무대행을 해 왔고, 양동규 정치위원장은 한상균 선본의 집행위원장으로 그 뒤 한상균 지도부의 사무부총장을 거쳐 지난해 중순부터 정치위원회를 관장해 왔다. 이들의 제거 또는 권한 축소는 상층 기구들 내에서 좌파의 약화를 뜻한다. 한상균 지도부의 나머지 구성원들도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어 운신의 폭이 더 줄어들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것이 ‘좌우’ 문제와 아무 관계없는 ‘능력’ 문제라는 명분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능력을 판단하는 데는 잣대가 있게 마련이다. 경영 능률을 앞세우는 기업주 입장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말하는 노조 지도자들이 무능력자이고, 장기 집권을 해 온 보수적 권력자들은 정권교체로 들어선 개혁세력의 이러저러한 개혁 시도(실패)를 무능력의 징표로 본다.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우선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투쟁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무능력의 소산으로 보일 터이고,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신속히 결정짓지 못하는 지도부가 무능력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실무 역량의 부족은 이런 것들보다는 훨씬 하위의 문제다.

따라서 “현 지도부의 무능을 보완할 통합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특정 목적을 추진하기 위한 특정 종류의 지도력이 보완돼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그러나 그 특정 목적은 누가 정했으며 특정 종류의 지도력은 누가 인정했는가?

만약 소수파 지도부보다는 통합적 지도부가 더 강력하지 않겠느냐는 (지나치게 단순한) 일반론이라면, 그런 주장은 이미 지난 선거에서 다수 조합원들에 의해 부정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도, 경험이 없지도 않다. 통합 지도부가 더 안정적이고 강하고 좋은 지도력을 뜻한다고 여겼다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년반 전에 그런 지도부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당시에 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연합 선본은 통합과 단결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우위를 어필했다.

반면 한상균 선본은 상층 지도자들 사이의 연합이 결코 민주노총의 강화나 조합원의 단결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이 ‘단결’해서 투쟁을 회피하거나 적당히 하는 데 그친다면, 또 지도자들이 ‘단결’해서 투쟁을 회피하고도 조합원들의 비난을 무마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민주노총의 약화와 분열을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는 다수 조합원들은 상근간부층 내에 기반이 거의 없는 소수파일지라도 선출되면 단호한 투쟁 지도부로서 조합원들의 단결을 고취하고 민주노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표를 줬다. 만약 다수 조합원들의 표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관료 기구 내로 들어온 이상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지도력을 세워야 한다는 관행이 횡행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 선거를 한낱 요식절차로 전락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현 시기에 통합 지도부는 투쟁에도, 단결에도 득이 못 된다

지금 당면한 투쟁 건설이 중요하다는 점에 비춰 봤을 때도 통합 지도부가 더 효과적이냐는 데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이 단호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그런 방향을 제시하는 한상균 지도부를 지지하고 뒷받침해 주면 될 것이다. 반면 지향 자체에 이견이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그들을 아우르는 통합 지도부를 구성한다 한들 투쟁 건설을 향해 힘을 증대시키기보다 무원칙한 절충에 그치거나 사공 많은 배처럼 산으로 갈 공산이 크다.

한상균 위원장은 서신이나 접견 등을 통해, 올해 1월 정부지침이 발표되는 상황에서도 총파업에 돌입하지 못한 것에 대한 괴로움과 자책감을 나타냈다. 이 상황을 재구성하고 교훈을 얻는 것은 모든 좌파 활동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참고하시오.)

2015년 새 지도부가 등장한 이후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노동개악에 맞서 비교적 완강하게 저항을 했다. 그러나 한상균 위원장이 안타까워하듯이, 11월 총궐기 이후 정부지침 등에 맞서 파업을 일궈 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한상균 지도부는 “총궐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총궐기가 총파업의 발판이 되지는 못했다. 사실 기층의 정서는 노사정위 야합이 있던 9월부터 11월까지가 그래도 가장 뜨거웠다. 그런 정서는 1차 총궐기 이후에도 얼마간 지속됐지만, 대부분의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민주노총 본부 압수수색, 위원장이 머무는 조계사 침탈 위협, 위원장 구속과 정부지침 강행 속에서도 명목 이상의 실질적 총파업을 한사코 반대했다. 지도부가 싸울 의지가 없음을 알아챈 기층 정서는 이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되고 기층 분위기도 가라앉자 민주노총 상층 상근간부층 내에서 한상균 지도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런 과정을 돌아보면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의 통합에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총파업을 할 수 없다”는 상당수 지도자들을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점점 불필요한 타협을 하게 되기 쉽다. 상층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조합원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상층 수준에서 조율해 내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이 아니다. 그저 중재 능력 또는 조정 능력일 뿐이다. 어차피 노동조합 안에서는 운동을 둘러싸고 불균등한 의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온건 협상파가 있는 한편 강경 투쟁파가 있게 마련이고, 노동조합의 지향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있게 마련이다. 좌파 지도자라면 노동조합 운동과 당면 투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놓고 다수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으려 애써야 한다. 그것은 분열적인 게 결코 아니다. 능동적인 현장 조합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다른 주요 지도자들을 투쟁 방향으로 견인 또는 묵인토록 하는 것이야말로 소수파 지도부에게 필요한 지도력일 것이다. 이것은 특정 정세·조건과 맞물리면 상당한 탄력을 받으면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총선 이후의 상황은 그런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박근혜가 참패하고 지배자들 사이의 분열이 증폭되면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다시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총선 직후 메이데이를 대규모로 열어 투쟁 재개를 선포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걸린 당면 투쟁에 힘을 집중했어야 했다. 실제로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노조탄압 등 중요한 투쟁과 의제들이 떠올랐지만, 민주노총은 연대를 확대하고 초점을 제공하는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총선 이후 민주노총 상층은 정책 대대 준비와 민주노총 주도 제2의 진보정당 건설 논의에 쏠렸다.

통합 지도부가 구성되면 자민통 계열은 진보통합정당 프로젝트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정책 대대에서 드러났듯이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서신에서 “위원장이 되기 전에는 노동진보정치에 실망했고 관심도 잃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노동자 민중을 대변할 정치의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많은 노동자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필요를 과연 어떻게 충족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다.

다시금 민주노총이 주도해 정당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주도해 17년 전에 만들었던 당은 지금 정의당, 노동당, 통진당 계열(합법정당은 해산됐지만 법외 정치조직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로 분열했다. 그런데 이 당들은 모두 여전히 민주노총과 연계를 맺고 있다. 이 당들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일궈 온 민주노총 조합원 거주지 선거구들에 의존하고, 세액공제 등 조합원들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따라서 이 정당들 가운데 하나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또는 유일 연계를 강제하고 나서려 한다면, 커다란 갈등이 빚어질 것이 뻔하다. 합법정당 해산 이후 활동의 제약을 안고 있는 통진당 계열이 민주노총의 기반을 이용해 당을 만들려고 하는 진보통합정당 건설 프로젝트가 문제인 이유다.

상호 골을 (돌이킬 수 없이) 깊게 만드는 이런 갈등은 전에 겪어 봐서 알지만 노동조합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선거적 연대도 어렵게 만든다. 갈등이 심할 때는 한 선거구에 이 당들의 후보가 각각 나와 부르주아 야당, 심지어 집권당 좋은 일만 시키기도 했다. 올해 총선에서 기분 좋게 노동자들이 대체로 정의당과 부울경연합 후보에게 힘을 모아 준 것은 민주노총과 연계가 있는 노동계 정당들이 단일화를 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울산의 경험을 민주노총 주도 정당 건설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하는 것은 자민통 계열의 아전인수일 뿐이다.(선거 결과의 이런 측면을 지적한 김인식의 〈노동자 연대〉 기사, ‘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 박근혜 정부의 참패, 노동계급(그리고 정의당)의 전진‘을 참고하시오.)

한상균 위원장의 말대로 선거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민주노총과 연계를 맺고 있는 복수의 노동계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변혁당과 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좌파노동자회 등도 민주노총과 연계를 맺고 있는 정치조직들이다.) 이 당들이 선거연합(당)을 만들어 공동 선거대응을 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연합의 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이용해 체제를 비판하고 노동자들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노동자 운동이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 대신 정규적인 일상 활동은 각자의 정당(정치조직)으로 하되, 선거가 아닌 시기에도 사안별로 공동전선을 구축해 투쟁 공조를 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맺으며

통합 지도부 구축은 한상균 지도부가 이런 문제들을 풀어 나아가려 할 때 다른 지도자들의 협력을 얻어 내는 통로가 되기는커녕 그들에게 포위되는 통로가 되기 십상이다. 한상균 위원장은 서신에서 “정치적 노선으로 현장을 갈라서는 희망이 없다”며 단결을 강조했다. “현장은 오직 민주와 어용으로만 활동을 평가해 나갑시다.” 정파에 따라 투쟁 연대도 거부하는 풍조에 대한 그의 통탄이 담긴 말인 줄은 이해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민주’ 안에도 노동운동의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노선과 불균등한 의식이 있다.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것은 노선과 의식의 차이 속에서도 적에 맞서 공동 투쟁하는 정치문화이지, 이견이 있으면 연대도 거부하거나 연대를 하려면 이견 표명은 금기시하는 풍조는 아닐 것이다.

무조건 ‘단결’을 앞세워 입 다물게 하는 방식은 언제나 좌파, 투쟁파에게 재갈을 물리는 효과를 냈다. 지금 좌파 지도부에게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특히 파업)에 필요한 주장과 진정한 단결 구호를 제시하고, 조합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투쟁적이거나 좌파적인 조합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을 자제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한상균 지도부의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통합 지도부 구축이 아니라, 능동적 조합원들의 지지에 바탕한 투쟁의 전진, 조합원의 자신감 회복으로만 메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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