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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시흥캠퍼스 반대:
‘산학협력 선도 캠퍼스’ 무엇이 문제인가

10월 10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철회를 요구하며 본부 점거에 들어간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신규 캠퍼스 건설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변화다. 그런데 정작 학교 당국은 변화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서울대 학생들의 목소리는 코빼기만치도 듣지 않고 있다. 비민주적인 대학 당국에 학생들이 크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비민주적 행정 외에도 시흥캠퍼스 추진이 공분을 사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흥캠퍼스가 산학협력 확대를 비롯한 대학 기업화의 모델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대 당국은 시흥시에게 지원받기로 한 4천5백억 원 외에 캠퍼스 조성에 필요한 돈은 기업과의 연계 강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형 산학 융·복합 캠퍼스”를 만들겠다는 말도 흘러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학 당국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가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 캠퍼스의 운영을 기업의 지원에 의존할수록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따라 결국 재정 부담이 결국 학생, 교수, 직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대 평창캠퍼스를 보면 학생들의 걱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학교 당국은 평창캠퍼스를 지을 때도 “바이오 산업 클러스트”를 만들겠다며 대규모 기업 유치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가 평창캠퍼스에 입주했다고 밝힌 38개 기업 중 2015년에 실제 입주한 기업은 단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지어 놓은 건물이 텅 비어 있는 상태이다.

정원도 원래 석사과정 60명,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정원 외 40명 등 모두 1백여 명을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이 정원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학생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대는 평창캠퍼스 운영비로 매년 2백50억 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캠퍼스는 그야말로 유령 캠퍼스가 돼 버린 것이다. 규모가 더 큰 시흥캠퍼스는 실패할 경우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시흥캠퍼스 추진 철회를 위해 학생들이 서울대 본부 점거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진

게다가 설사 학교 당국이 말하는 대로 기업과 연계가 강화된다 해도 이는 학문과 교육에 결코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다. 기업과 대학의 연계가 강화되면 학문과 연구가 이윤에 종속돼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됐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생각해 보라.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유 교수는 옥시에게 연구비(와 뒷돈)를 받았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에 유독성이 없다는 거짓 실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도 이미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2005년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황우석의 연구실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였고 정부와 기업주들이 막대한 지원을 했다. 그래서 당시 황우석이 과학을 왜곡하고 난자 확보를 위해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음에도 그의 연구가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온갖 비호를 받았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켄터키대학교는 나이키와 산학협력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대학에서 나이키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면 기업이 2천5백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의 입김이 강화될수록 연구만이 아니라 교육도 왜곡된다. 당장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는 학과는 집중 지원을 받지만 장기적 연구가 필요한 학과는 지원이 축소된다. 상대평가제가 강화되거나 졸업요건 등이 강화되는 것도 학생들을 줄 세워 선별하기 위한 기업주들의 필요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또 대학에 기업들은 많이 들어 오지만 학생들을 위한 시설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예를 들어 연세대는 많은 교수와 학생,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9백억 원을 들여 대규모 지하공간(‘백양누리’)을 조성한 바 있다. IBK기업은행이나 금호아시아나와 같은 대기업들의 돈으로 지어진 이 공간은 77퍼센트가 주차시설에 할애됐다. 나머지 공간 중 학생들이 학업이나 자치활동을 위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단 1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편의시설이나 식당들도 대개는 학생들이 사용하기엔 너무나 비싸다. 거대한 회의실이나 세미나룸은 잘해 봐야 학술대회에 사용될 뿐이고 흔히 기업들의 행사나 설명회를 위해 사용되곤 한다.

산학협력을 통해 기업들의 재정 지원은 늘었을지 몰라도 수익성 논리가 강화되며 교직원들의 처지는 더 열악해졌다. 교수들에게 연봉제·계약제·성과제 등이 확산되며 경쟁 압박이 강해지고, 비정규직 교수와 직원도 늘어났다.

그리고 산학협력의 강화는 지금 학생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는 쟁점인 학내 민주주의의 파괴를 가속화할 것이다. 학교의 운영과 행정 자체가 돈줄을 대는 기업들의 입김에 좌우될 것이다. 법인화 이후 기업 논리가 강화되면서 총장직선제는 폐지됐고, 최근 학생 사찰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학교의 방향에 저항하는 학생들에 대한 뒷조사와 탄압도 강화된다.

이런 방향이 아닌 다른 대안은 존재한다. 교육에 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이들에게서 세금을 거둬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대학 기업화에 맞서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시흥캠퍼스 추진 철회를 위한 투쟁이 승리한다면 기업화하는 비민주적인 대학 당국에 맞선 학생들의 운동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서울대 학생들의 시흥캠퍼스 추진 철회 투쟁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