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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사회주의자 인터뷰:
“낙태권 운동이 낳은 급진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혁명적 좌파 단체 ‘노동자민주주의’ 활동가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를 김종환 기자가 인터뷰해서 낙태권 운동의 최근 상황, 운동이 낳은 급진화, 좌파의 구실 등에 대해 들었다. 안드레이 제브로프스키는 투쟁이 폭발하기 전부터 낙태권 운동을 건설해 왔고, 앞서 본지는 낙태권 운동 소식을 전하는 그의 글을 두 차례 실었다.

10월 3일 ‘검은 시위’ 이후 상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10월 3일 전국 1백여 곳에서 낙태권을 요구하는 시위에 10만 명 이상 참가하자 정부는 즉각 꽁무니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여당 지도자는 “정부는 출산 직후 죽을 것이 분명한 태아도 태어나서 세례를 받고, 이름을 갖고 땅에 묻히도록 조처를 강구하겠다” 하고 말했습니다.

운동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수백 명이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했고, 여당 정치인들은 다시금 그 발언과 거리 두기 바빴습니다.

10월 24일 많은 도시에서 다시금 낙태권 요구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구호는 “우리는 우산을 접지 않겠다”였습니다. 여기서 우산은 낙태권 운동의 상징입니다. ‘검은 시위’가 벌어진 10월 3일에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 시위했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낙태권을 요구하는 '검은 시위대' ⓒRazem

지금 정부는 태아가 심각한 기형을 가진 경우에 출산하면 장려금을 지급하겠다며 보수적 지지층을 달래려 합니다.

다음 ‘검은 시위’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폴란드 파시스트들은 낙태 단속도 강하게 요구하고, 지난 몇 년간 폴란드 독립기념일인 11월 11일에 맞춰 “애국자 행진”을 벌여 왔습니다. 대규모 반파시스트 집회도 그날 예정돼 있는데, 우리는 여성 대열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반파시스트 집회 홍보물에는 낙태권 운동의 상징인 우산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단 그림)

낙태권 운동에서 좌파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습니까?

‘검은 시위’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좌파 사민주의 정당인 ‘함께당’(라젬)입니다. 함께당은 신생 원외정당이지만 지난 선거에서 3.6퍼센트라는 인상적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그 밖의 여러 좌파들도 ‘검은 시위’에서 존재감을 보여 줬고, 많은 참가자들이 좌파를 환영했습니다.

폴란드의 큰 노조들도 이 시위를 지원했습니다. 주요 노총 중 하나인 OPZZ가 지원했고, 교사노조 ZNP와 금속노조도 지원했습니다.

우리 ‘노동자민주주의’도 신문을 수백 부나 판매하면서 우리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노조가 지금보다도 더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낙태권 운동 참가자들을 반파시스트 집회로 연결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낙태권 억압을 낳은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가요?

먼저, 1950년에 스탈린주의자들이 낙태 단속을 도입했습니다.

폴란드 혁명적 좌파 단체 '노동자민주주의' 활동가 제브로프스키.

이윽고 1953년 스탈린이 죽고 1956년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이 있은 후 억압이 전반적으로 완화되는 분위기 속에 낙태 단속도 완화됐습니다. 사회적 요인이 낙태 사유로 인정되고, 사실상 무상으로 쉽게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유럽 붕괴 후] 1990년 [기존 국가자본주의를 시장 자본주의로 급격히 바꾸는] “충격 요법”이 실시됐습니다. 노동자들이 이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했고, 그러면서 우익 정당들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입김도 커졌습니다.

현재의 낙태단속법은 1993년에 도입됐습니다. 공산당의 뒤를 이은 사민주의자들은 1996년에 잠시 단속을 완화했지만, 1년 만에 다시 뒤집혔습니다. 당시 교황 방문에 맞춰 “선물”로 낙태권 단속이 강화된 것입니다. 2003년에도 사민주의자들은 유럽연합 가입 문제에서 가톨릭의 지지를 얻으려고 낙태 단속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운동이 낳은 급진화는 어떻습니까?

폴란드에서 의사들은 ‘양심 서약’을 강요 받고, 그래서 낙태 사유가 합법인 경우에도 의사가 시술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가 낙태를 거부해서 결국 두개골이 열린 아기를 출산한 사례는 악명이 높습니다. 그 아기는 며칠 만에 숨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낙태 단속 수준에도 분노하고 있고, 그래서 낙태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점차 좌경화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의회에는 좌파 정당이 없습니다. 두 주요 야당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고, 운동이 ‘낙태 전면 금지’만 반대하도록 제약하려 합니다. 그러나 거리에 나선 젊은 여성들은 훨씬 더 급진적입니다.

지금 운동 안에서는 낙태권 요구 수준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원내 정당들과 비슷하게 낙태 단속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당, 여성단체 등은 지금보다 단속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낙태권이 쟁점이 되자 한 인기 가수가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낙태를 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5분 덕분에 나는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4백만~5백만 명가량으로 추산되지만 그동안 이렇게 공개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동시에 이 발언은 운동 내 논쟁을 더 격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이 논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낙태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결국 정치인, 경찰, 검사, 사제, 의사 등이 낙태에 대해 왈가왈부하도록 허용하는 것이고 이것은 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정리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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