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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
이주민을 경제 위기 속죄양 삼으려는 시도에 맞서 연대하자

12월 18일은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1990년 유엔이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채택하고 이 협약은 2003년부터 발효됐다. 그러나 OECD 회원국 중 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가 하나도 없다. 한국 정부 역시 비준하지 않았다.

올해 6월 30일을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2백만 명을 넘었고, 그중 이주노동자는 약 1백만 명에 이른다. 이주민은 전체 인구의 3.9퍼센트 정도로,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향후 5년 내에 OECD 평균인 5.7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이제 이주노동자는 한국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체, 농축산업 등 임금과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해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곳에 노동력을 공급하려고 이주노동자 유입을 늘려 왔다.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이른바 '뿌리 산업(원자재를 소재나 부품으로 가공하는 기초공정 산업)'과 일부 지역의 산업을 이주노동자가 지탱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적 정책들로 이주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주민들을 속죄양 삼아 왔다.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며 무슬림 이주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이주민 통제와 강제 추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출입국관리법을 개악했다. 이런 배경에서 시리아 난민 28명이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 6개월 넘게 구금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 합동 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여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단속·추방했다. 그래서 최근 이주 운동 단체들은 박근혜 정부의 이주민 억압을 규탄하며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용허가제 시행 12년을 맞아 올해 8월 21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3권 쟁취! 수도권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조승진

고용허가제는 이주민을 천대하는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이주노동자를 사용자에 종속시킨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린다. 고용허가제를 벗어난 노동자들은 미등록 신분으로 내몰려 단속·추방의 위험에 놓인다.

이런 열악한 조건 때문에 2008년 이후 전체 산업재해는 감소했지만, 이주노동자의 재해는 증가 추세이다. 이주노동자 재해자 및 재해 사망자 비율은 모두 내국인 노동자보다 높았다.

심지어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사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여성 이주 농업 노동자 2백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약 12퍼센트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 그중 약 20퍼센트만이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다. 그중 8퍼센트는 불허됐고 허가된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가 인정돼 옮긴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정부는 초단기 계약을 강요할 계절노동자 제도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농촌 지역에서 3개월짜리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다른 업종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계절노동자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이 미등록 체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임금의 80퍼센트를 중개인에게 줬다가 출국할 때 지급하고, 심지어 군청이 여권을 사실상 압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다.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던 과거 산업연수제도 때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시범 사업을 농업뿐 아니라 어업 분야로도 확대했는데, 향후 다른 업종으로 더 확대하려 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보수 언론 등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단속과 비난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근에도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영주권 제도도 더욱 개악해 이주민 통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주노동자 유입과 실업률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돼 온갖 혜택에도 투자와 신규 고용을 늘리지 않는 기업주들,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라는 요구는 묵살한 채 친기업 정책만 추진하는 정부야말로 실업의 책임자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성장하는 상황은 내국인과 이주민 모두의 자신감을 고무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12월 3일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사정집회에서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발언해서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12월 18일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와 함께 이주 여성과 난민 등 다양한 요구를 담아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집회에 적극 참가해 이주민을 경제 위기의 속죄양으로 삼으려는 악랄한 시도에 맞서 이주민들과 연대를 다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