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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갈림길에 선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박근혜가 탄핵됐다. 실로 기쁘기 그지없다. 물론 박근혜가 소생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 자신도 최고 국가 기관이고(활동 정지를 명령 받았지만), 운이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다른 몇몇 권력 기관을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된 것을 보면, 지배계급의 다수는 도마뱀처럼 (박근혜라는)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기로 한 듯하다.

그런 다수 지배자의 의지를 대변한 듯한 선전물이 바로 전여옥의 《오만과 무능 ― 굿바이, 朴의 나라》(도서출판 독서광, 2016)이다.

저자는 6·15선언을 폄훼하고, 노숙자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2008년 촛불 운동을 비난한 악명 높은 우익 언론인이자 친이명박계 정치인이다.

그는 박근혜가 아는 게 없는 무식쟁이인 데다, 꼴에 극도로 오만 방자하고,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고 늙다리들의 나이트클럽이나 출입할 듯한 늙고 천한 제비족 최태민과 함께 기업인들의 돈이나 뜯으러 다닌, 수준 이하의 인물이었음을 많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폭로한다.

박근혜는 말이든 글이든 횡설수설하는 데다 가끔 얼토당토않게 뜬구름 잡는 신비주의적 언사도 섞어 말한다고 한다.

또, 박근혜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박근혜를 ‘조종한’ 최태민 딸 최순실의 정체도 전여옥은 들춰 낸다.

물론 박근혜에게도 강점은 있는데, 바로 권력 의지, 권력에의 놀라운 집착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문제는 그런, 크게 함량 미달인 인물이 어떻게 공식 정계 입문 후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대부분 승승장구했느냐이다.

전여옥은 한때,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에 당 대변인이었다가 2007년 박근혜에게 등 돌리고 이명박 지지로 옮겨갔다. 그러니 박근혜 공식 정치 인생의 전반부는 지지해 준 셈이다.

다른 우익들과 지배자들은 모두 박근혜와 그의 반동적인(반민주, 반민생, 반노동, 반평화 등) 정책들을 일관되게 지지했다.

그들이 박근혜의 결정적인 단점들을 몰랐을 리 없다. 허구한 날 작당이나 하고 앉았고 꼼수나 쓰는 인간들이 그걸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들은 박근혜가 박정희 시대를 나타내는 정치적 상징 구실을 할 수 있고, 정치 의식이 없는 후진적 유권자들로부터 동정표를 얻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는 박근혜라는 우상을 앞세워 그 우상 뒤에서 이윤과 권력을 쌓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임금님 벌거벗으셨네요!” 하자 모든 것이 한순간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최순실의 꼭두각시도 아니고, 다른 어느 누구의 꼭두각시도 아니다. 그는 그 모든 자들과 공범이다. 부패와 부정축재 공범이고, 노동계급 착취의 공범이고, 반민주 억압의 공범이고, 친미·친일 군국주의 후원의 공범이다. 이 경우에 공동정범의 주종관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박근혜가 주범이다.

신분 세습 왕조라면 모를까 (자본주의적)민주주의 하에서는 형식상으로 공정한 절차를 거치므로 일곱 살배기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는 일은 없다.

박근혜처럼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 성품이 결여된 인물이 국가 수반이 되고, 언론과 학계의 아첨꾼들이 그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온 국민에게서 쥐어짜 내려 애쓰는 것이 바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정치 체제(전여옥이 ‘시스템’이라고 부르는)인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 일부 유럽 나라들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들과 심지어 나치의 부상도 같은 맥락 속에서 볼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려는 자들

이처럼 시스템에 비춰 본다면, 그동안 박근혜라는 정치적 상징(더 정확히 말하면 우상)을 내세워 억압과 착취, 천대와 차별을 일삼던 자들이 이제 박근혜만 남겨 두고 도망가고 있는 명백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다.

그런 현실을 못 본 척하는 기성 정치인들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인 황교안 내각을 반대하는 것조차 막으려 애쓰고 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안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도 막으려 하고 있고, 비폭력적 정치 활동을 했는데도 단지 친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수감된 진보당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도 가로막고 있다. 노동개악이 박근혜 하에서 쌓이고 쌓인 폐단(적폐)의 일부라는 점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노동자 연대〉 신문은 마르크스-레닌-트로츠키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므로 수감된 진보당 간부들의 사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석기 등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고, 아무의 목숨도 노리지 않았으며, 테러용 폭탄이나 총기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사상과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정당을 강제 해산시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본가들을 비롯한 지배자들에게는 민주주의일지 몰라도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에게는 독재다.

지금 촛불 운동은 갈림길에 서 있다. 전진이냐, 아니면 잠시 답보하다 퇴보까지 하느냐 하는 선택지 말이다. 정부·여당을 확실히 패퇴시켜야 한다. 적당히 패퇴시키고 빨리 선거 문제로 도망가는 것은, 명망과 존경, 점잖다는 칭찬의 입발림말을 늘어놓으며 정치적 소생의 기회를 엿보는 여권 세력에 반격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