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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퇴진 운동이 조직이 아닌 개인들의 운동이었다는 주장의 함의

최근 〈한겨레〉는 박근혜 퇴진 운동이 기존 조직이 아닌 개인들의 운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이번 운동 과정에서 “기존 조직은 거부당했다”, “깃발을 들지 마라”는 주장과 “대표하려는 조직에 반감”이 크다며 개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통한 행동을 부각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집회를 직접 보고 쓴 기사인지 의심이 든다.

물론 역대 최대 규모였던 이번 운동에서 많은 사람들은 큰 활력과 놀라운 자발성·헌신성을 보여 줬다. 이 사회의 지배자들은 대중은 우매하다고 여기며 지배 엘리트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이와 같은 대중의 자발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회를 운영할 잠재력이 있다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들의 자발성을 찬양하는 것이 기존 운동 단체들의 기여를 깎아 내리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 기존 운동 단체들의 기여는 이번 운동의 성장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악행에 대한 분노가 여러 대학에서 시국선언으로 조직될 때도 학생회 등과 진보·좌파 단체들의 기여가 중요했다.

10월 29일 첫 집회를 제안하고 조직한 것은 대중의 정서를 감지한 노동 단체와 좌파 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투쟁본부였다. 이 집회에 3만 명이 참가한 것이 향후 운동에 중요한 디딤돌을 놓았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11월 5일에 30만, 11월 12일 1백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를 주최했다. 이후 매주 토요일 1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시위들을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도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의 단체들을 포함해 1천5백 개 단체가 참가한 것이다.

〈한겨레〉나 일부 NGO 들은 이 운동에 대표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연대체가 운동의 방향을 논하는 대표체 구실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퇴진 운동에는 민주노총의 조직 노동자들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평일 시위 대열의 거의 절반을 동원하며 운동의 한 축을 형성했다. 운동이 대중적으로 커진 뒤에도 압도적인 정서는 조직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조합과 여러 단체들이 더욱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운동은 그 시작부터 정부의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2002년과 2008년 촛불 운동 과정에서 나타났던 정치 배제 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훨씬 적었다. 또 박근혜 정부라는 억압적인 권력에 맞선 투쟁이라는 성격 때문에 국가 권력의 문제를 회피하는 자율주의적 정서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정치적 대안을 구축해야 한다는 정서가 컸다. 그런 측면에서 거리의 더 큰 문제의식은 야당이 너무 온건해 촛불 운동의 정서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번 퇴진 운동에서 기존 조직이 배제됐다거나 대표체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게다가 현실에서 정치적 조직이 배재된 운동이란 존재할 수 없다. 정치를 의회 정치나, 주류의 공식 정치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진정한 정치란 사회의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과 관련한 것이다. 사회의 권력 구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둘러싼 입장은 다 정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렇게 보면 매우 소박한 수준일지라도 정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특정 단체가 명확한 정치를 표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종의 정치적 성향을 띠기 마련이다.

더욱이 이번 운동에서 기존 조직이 거부당했다거나 대표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은 운동에서 민중운동 단체들이나 좌파 단체들의 주도력을 애써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운동을 온건화하려 하는,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반자본주의 운동 내에서 부흥했던 자율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과 기존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정치 조류였다. 그런데 최근에 자율주의의 언사를 차용하는 주장들은 운동을 오히려 온건한 방향으로 이끌고 급진적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한겨레〉의 기사에서 언급됐던 이화여대에서 정치 배제를 주장했던 점거 농성 주도자들의 경우,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면서도 좌파적인 정치 경향은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정치 배제를 명분으로 삼아 기층의 자발적 토론과 활동을 통제하려 한 바 있는데 이런 태도야말로 비민주적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논쟁하는 것이 더욱 민주적인 태도일 것이다.

급진적 정치가 강화되는 것은 대중의 자발성을 더욱 고양시키는 데서도 유익하다. 이를 위해 좌파 정치 세력들의 주도성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관련 기사: ‘운동의 전진을 위해 투쟁적인 메시지가 제공돼야’]

야당들이나 〈한겨레〉 같은 자유주의 언론, 일부 온건한 NGO 단체들은 운동이 의회나 공식 정치의 틀 내로 수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를 즉각 퇴진시키고, 공범들을 처벌하고, 온갖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거리의 운동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를 위한 거리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등은 더욱 성장해야 한다.

이런 방향을 추구할 좌파적 조직의 구실은 운동의 향방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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