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분할,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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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사측이 2월 27일 현대중공업 분할을 의결하는 주주총회를 예고한 가운데, 노동자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앞서 지난 15일 4시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22일 4시간, 23~24일과 27일 8시간 전면 파업을 예고하고, 총회장 봉쇄를 계획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부의 전면 파업은 2014년 민주파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 제시된 기업 분할 안은 회사를 갈기갈기 쪼개는 전면적 구조개편 방안으로, 가뜩이나 지난 몇 년간 지속된 구조조정 공격으로 고통 받아 온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불만을 사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조선·해양·엔진(현대중공업),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 건설기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 등 사업분야별로 4개로 쪼개고, 그린에너지와 서비스 분야도 각각 현대중공업과 현대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사측은 지난해 10월 이사회에서 이를 의결하고, 주주총회의 최종 승인을 거쳐 4월 1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엄습하는 불안감
기업 분할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말 제도화된 것으로, 기업의 구조조정(규모 축소), 수익성 제고와 착취 강화, 최대 주주의 기업 지배력 확대 등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돼 왔다. 특히 현대중공업 분할 계획은 조선업 위기 속에 추진돼 온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애초 자구안에서는 기업 분할이 최후의 보루로 다뤄졌었는데 사측이 “선제적”으로 시행에 옮기로 한 것이다.
이번 분할 계획은 지난해부터 야금야금 시도된 분사화보다 전면적이고, 기업의 규모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예컨대, 지난해 7월 사측은 설비지원부서를 분사화해 현대중공업모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전적 거부자 3백여 명을 제외한 7백여 명이 현대중공업에서 퇴사해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 기업은 별도의 자산이 없는 자회사로, 원청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하청업체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이번에 분할되는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 건설기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 회사들은 자산 규모가 적게는 1조 6천억 원에서 많게는 4조 4천억 원에 이르는 대형 기업이다. 자산 규모로 치면 쌍용자동차만 한 회사 두 개, 현대미포조선과 같은 중형조선소 한 개가 신설되는 것이다. 인력 규모도 1천 수백 명에서 2천~3천 명가량 될 것으로 보인다.
사측은 이런 분할이 사업부문별로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고용과 노동조건도 “1백 퍼센트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금세 깨질 거짓 약속일 공산이 크다. 당장 임단협 교섭에서 ‘임금 20퍼센트를 반납해야만 올해 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사측이 노동자들을 여러 회사들로 갈기갈기 찢어 단결력을 저해한 뒤에 도리어 공격을 멈출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기업 분할은 그 목적상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조처다. 각 기업들이 사업부문별로 별도의 경영체계를 구축하거나 사업부제를 도입하는 것은 인력·인건비·업무실적 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은 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더구나 그동안 매각설이 나돌던 건설기계 사업 부문은 고용 불안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기업 분할은 매각에도 용이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주력 사업 부문인 조선·해양의 노동자들도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의 급격한 수주 축소와 수익성 악화 속에서도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절감과 비조선 부문에서 얻은 수익으로 흑자 전환했다. 그런데 기업 분할로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다면, 대대적인 인력 감축이나 임금·조건 하락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이미 사측은 물량 감소를 이유로 올해 6월 군산공장을 폐쇄할 계획도 내놨다.
군산공장 폐쇄를 비롯해 분할 기업들의 본사 이전 등으로 일부 업무가 타지로 옮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노동자들에겐 무시 못할 불안 요소다.
편법적 경영 승계
현대중공업 사측이 이처럼 전격적인 기업 분할 방식을 택한 데는 정몽준의 지배력 강화, 아들 정기선으로의 탈법적 경영 승계라는 목적도 크다. 지금껏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10.15퍼센트를 가지고 순환출자로 그룹사 전체를 지배하며 부와 권력을 누려 왔다. 그런데 아들에게 이를 물려주려면 현행법상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주들이 그렇듯이(재벌 총수는 물론 중소기업주들도), 정몽준은 ‘기업 분할 → 지주회사 전환 → 자기 지분의 의결권 확보 → 지분율 확대’라는 편법적 “지주회사 마법”을 통해 돈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지배력을 확대해 아들에게 승계하려 한다. 실제 현대중공업이 이번 분할 후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10.15퍼센트에서 43퍼센트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탈법적으로 손쉽게 승계하려면, 필수적으로 기업을 여러 개로 쪼개 주식과 자산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분할해야 하는 것이다.
“자식에게 권력을 안겨 주려고 우리에게 칼을 겨누냐”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극도의 비효율과 온갖 부패를 일삼으면서 위기를 만든 장본인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발의된 일명 ‘이재용법’, 즉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들은 이 같은 편법적 경영 승계를 규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기존 자사주가 고스란히 이전되지 못하도록 소각해야 한다거나, 주식이 이전되더라도 의결권을 갖지 못하도록 해 경영권 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최근 민주당의 우경화 행보를 봤을 때 2월 임시국회에서 이런 법안들이 통과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고, 설사 현대중공업 주주총회 전에 그것이 통과돼도 현대중공업에까지 효력이 발휘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 박용진은 한 인터뷰에서 자기 당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며 “이런 당이 집권하면 재벌에게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 국민들은 의심하고 있다”, “야당이 집권해도 [법 개정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아 걱정이다” 하고 한탄한 바도 있다.
따라서 국회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현대중공업 사측의 분할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저항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지난 15일 현대중공업지부의 파업 집회에서 노동자 수천 명이 모여 뜨거운 열기 속에 전면 파업과 총회 저지를 결의했다.[당일 취재기를 본지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지난해 말 높은 지지로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한 상황에서, 반갑게도 금속노조 확대간부 1천5백여 명이 참가해 연대로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기업들에 구조조정을 재촉하고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구조조정은 비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반대해 더 넓은 연대를 조직하고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최근 박근혜 일당과 우익의 공세에 맞서 퇴진운동이 다시금 커지는 상황은 그동안 지역에서 촛불을 들어 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게도 반가운 일일 것이다. 역으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나서고 연대가 확대된다면, 이는 박근혜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을 위한 광장의 시위에도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