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안철수 대결에 촛불운동의 염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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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마자 안철수 지지율이 오히려 급등하며 대선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 일부 여론조사의 조사 방법에 신뢰성 의혹이 제기됐지만, 적어도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 자체는 이제 현실로 보인다.
안철수 지지율 상승은 우선 구 여권이 워낙 대중적 불신을 사 도저히 지지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의 지지율은 합쳐도 대체로 10퍼센트가 안 된다.
원내 제2당의 대선 후보가 같은 우익에게서 최악을 막기 위해 사퇴하라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고소하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박근혜 출당 요구를 거부했는데, 정작 친박 핵심 조원진은 박근혜를 지키려고 그 당을 탈당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이런 웃기는 자들에게 9년이나 통치받았다는 게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는 박근혜 정권과 구 여권 정당들이 군색한 처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만든 것이다. 퇴진 운동은 박근혜 정권을 궁지로 몰아 그 추한 실상을 더는 감출 수 없게 했다. 이 과정에서 그따위 인간을 상징 조작해 정권을 잡고 혜택을 누려 온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염증이 확 커졌다. 그래서 일단 이번에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정서가 대세가 됐고, 그래서 주류 야당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중도 보수층을 두고 경쟁하는 자본주의 야당들의 양강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는 것이 많은 촛불 운동 참가자들에게 씁쓸한 일일 것이다. 촛불들은 문재인·안철수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지배계급이 두 후보를 이미 길들이고 있고, 둘은 그에 순응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급히 이동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문-안의 체제 수호적 행보도 더 두드러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두 후보는 … ‘대통령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경쟁을 해야 한다. 안보를 맡길 수 있고, 경제 쇠락을 되돌리고, 국민을 통합할 사람임을 보여 줘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먹히는 데에는 지배계급이 국회 탄핵소추와 헌재 탄핵, 박근혜와 재벌 총수, 측근 실세들을 구속해 대중의 성난 기세를 누그러뜨려 온 효과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퇴진 운동의 유력한 이데올로기가 주류 야당의 헤게모니를 넘어서지 못한 한계도 봐야 한다.
여기에는 운동의 내용이 계급적으로 심화되지 못하고, 혁명적 좌파도 기층에서 대중을 계급투쟁적으로 돌파구를 내는 쪽으로 인도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부르주아 선거가 기층 대중의 염원을 굴절시키는 메커니즘인 점도 봐야 한다.
강철수?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보수 지지층 상당수가 국민의당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 IT 자본가 출신 안철수가 훨씬 더 친화적으로 느껴지는 탓일 게다.
안철수도 보수층에 본격적으로 구애하며 이런 상황 변화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사드 배치 찬성에 유보적이던 입장을 버리며 적극 찬성을 분명히 했고, 10일에는 의료 민영화 등 친기업 규제 완화 법안인 규제프리존법에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재판도 안 한 박근혜의 사면을 시사하고, “적폐 청산”에 반대하며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
이는 단지 득표 전략 때문만은 아니다. 안철수는 한국 지배계급 다수가 최근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는 정책들을 최근 쏟아낸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박근혜의 대표 적폐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철수의 최근 태도는 그의 계급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안철수는 자수성가한 벤처 기업주로 유명해졌지만, SK 최태원과 함께 회사를 세우는 등 확고히 자본가 계급의 일원으로 살아 왔다. 비리로 구속된 최태원의 사면 캠페인에 참여했고, 그 자신이 천억 원대 자산가다.
그는 한때 자수성가 신화로 노동계급 청년들에게도 선망되는 인물이었다. 때마침 분 힐링 열풍 덕분에 국민적 멘토로 인기를 얻고, 2012년 대선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었다.
그러나 그때조차 그는 성장과 안보를 강조하고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극복[하고] …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반(反)이명박 정서를 낡은 정치로 규정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층의 강력한 정권 교체 염원 때문에 결국 “새누리당의 정치 확장뿐 아니라 정권 연장을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자강론, 강철수론은 단지 이미지 쇄신인 것만이 아니라 (특히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지지층에 일일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호남의 전통적 야권 지지층에서도 만만찮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기반 때문에 이번에도 안철수는 문재인보다 먼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해야 했던 것이다. 지지율 상승에도 어느 정도 초기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서로 상반된 기대를 거는 지지층을 “덧셈”한 결과지만, 그 덧셈은 결코 화학적 결합이 될 수 없다. 결국 모순된 지지층 때문에 안철수는 문재인 못지 않게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결국 개혁적 지지층을 배신할 때만 “강철수”가 될 것이다. 이따금 그냥 놔두면 지배계급 전체에 해를 끼칠 부패 인사를 제거하는 일은 지지할지라도 말이다.
보수 언론 등 우익 세력은 안철수가 당선하지 않더라도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을 이용해 문재인을 견제하고 가능하면 문재인의 더 노골적인 우경화도 이끌어내길 바랄 것이다. 안철수가 당선하면 여당이 의석을 40석밖에 못 가진 약체 정권일 테니, 길들이기 더 쉽다고 볼 수도 있다.
우익들의 안철수 궁여지책 선택에는 퇴진 운동이 바꾼 정치 지형을 다시금 되돌리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노무현 5년, 민주당 10년
이런 상황에서 호남 등의 개혁 염원 야권 지지층이 계속 안철수를 지지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애써 박근혜를 중도 퇴진시키고 치르는 선거에서 다시 보수층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약점 때문에 퇴진 운동 초기에 박근혜 퇴진을 지지한 것 말고는 한 게 별로 없는 안철수가 득을 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5년, 길게는 민주당 정부 10년 동안 대중이 개혁 염원을 배신당하고 삶이 더 힘들어진 환멸의 경험이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명박이 등장해 새로운 불행의 씨앗을 뿌렸다.
그런데도 문재인과 친노 정치인들은 지지층의 기대가 너무 커서라거나, 노동운동과 진보 세력이 성급하게 정권을 비판해서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민주당 정부들의 실패를 온통 남 탓으로 돌리기 바쁘다. 그래서 진보적 변화 염원 대중은 문재인에 대해 떨떠름해 한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안철수가 정권 연장 세력과 손잡았다고 비판하지만, 그동안 문재인의 행보를 보면 안철수와 특별히 다른 게 없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지난해 총선부터 줄곧 중도 보수층을 더 끌어들이려고 경쟁해 왔다.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됐는데도 박근혜 정권의 각종 악행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근혜의 친기업 규제 완화나 노동 개악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세월호 문제에서도 민주당은 줄곧 유가족 뒤통수만 쳐 왔다.
결국 오른쪽 눈치를 봐 온 것이 오히려 우익의 기를 살려 줘 지금 안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니 지금 곤경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자신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정당의 대선 후보로서 문재인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조건부지만 사드 강행을 얘기하고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의 노동공약 질의에도 답변 시한을 어겨 마지못해 지각 답변을 했다.
물론 문재인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일부와도 연계가 있고, 그 때문에 노동운동 안에서도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할수록 정치 지형 자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문재인은 노동계급 대중에게 지지할 동기를 부여하지도 못한다.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그런 점에서 촛불 운동을 화끈하게 대변했던 이재명 시장이 (문재인에게 유리해 패배가 예상된) 민주당의 경선 룰에 순응하고는 문재인 지지를 단순히 선언한 것은 유감스럽다.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되겠다더니, 경선 패배 후 힐러리를 지지해 지지층을 실망시킨 샌더스의 잘못까지 따라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두 주류 야당의 위선적 차별화 경쟁을 비판하고 있으나,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안의 지지율 격차가 좁아지면서 완주 여부가 (그 가능성이 높여졌음에도) 여전히 불확실한 쟁점으로 남아 있고, 대선 이후 연립정부 참여 문제로 노동운동 안에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정치적 약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제국주의 문제에서도 약점을 드러냈는데, 심 후보는 유일한 노동계 후보로서 진보적 변화를 염원하는 대중을 잘 대변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야당들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단호하게 행동할 때에야 박근혜 퇴진 요구를 지배계급이 마지못해 수용했다는 점을 교훈 삼아야 한다.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좌파가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