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인천공항 비정규직 대책:
고용 보장하되 임금·처우 개선은 미미한 ‘무늬만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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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취임 3일차인 12일에 첫 외부행사로 인천공항을 찾아가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안전·생명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 정일영은 이 자리에서 올해 안에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기쁨의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공항 노동자의 85퍼센트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고, 이 노동자들은 온갖 차별과 저임금, 고용불안으로 고통을 겪어 왔다. 노동자들이 2008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2013년 첫 파업 등의 투쟁을 통해 공공부문 간접고용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해 온 이유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정권 교체 1주일 만에 비정규직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촛불운동의 요구
문재인이 인천공항에서 1만 명 정규직화를 약속한 직후, 사용자 단체들과 보수 언론들은 노동유연성이 약화되고 비용이 늘어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경총 사회정책본부장인 이상철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공공부문 가격 인상을 통해서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고, 이는 “공공기관 신규채용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러나 정작 이전 정부들과 손잡고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며 공공서비스 가격 인상을 부추겨 온 것은 그들 자신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로막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공공부문에서는 사업이 늘어나는데 정원은 대폭 줄어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안전사고가 빈번이 발생하곤 했다. 대폭적인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재계와 보수 언론은 늘어나는 인건비가 걱정이겠지만, 그것은 마땅히 정부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충당해야 한다.
경총은 이렇게 속내를 드러냈다. “민간부문까지 확대돼서 획일적으로 정규직을 강제하는 쪽으로 연결되지 않(아야 한다.)” 〈조선일보〉도 “’우리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며 정규직 요구 확산과 투쟁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수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 해소를 바란다. 촛불운동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상당한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 사회 불평등을 나타내는 핵심 쟁점이며, 계급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라는 점을 보여 준다. 촛불운동의 수혜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응당 촛불의 열망을 반영하고 자신의 대선 공약을 실현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문재인의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이 아직 모호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반쪽 짜리, 혹은 그 이하가 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인천공항에서 문재인은 비정규직의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보다 비정규직의 “신분 안정”, 즉 고용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처우 개선과 차별 해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매우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적잖은 노동자들이 원청이 업체를 변경할 때마다(혹은 계약 갱신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곤 하지만, 또 많은 노동자들은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짧게는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간 일하기도 한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고용안정만이 가장 중요한 요구인 것처럼 오해해서도 안 된다. 임금이 너무 낮다, 기본급이 낮고 성과 수당 비중이 높다,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휴게실도 없다 등의 불만을 개선하는 것은 때로 가장 중요한 요구이기도 하다. 인천공항, 다산콜센터, 서울지하철 등에서도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열악하고 위험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싸워 왔다.
무늬만 정규직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인천공항 사측은 자회사 신설을 통한 정규직화를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는 듯하다. 이는 대표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해 온 모델과 다르지 않다. 새롭게 재단을 만들어 민간위탁업체에서 일하던 120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고용한 사례, 서울지하철의 양 공사 산하에 자회사를 신설해 청소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례 등이 그렇다.
서울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정년)은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공사가 자회사의 예산을 엄격히 통제해 임금·노동조건 등 처우 개선은 거의 진척되지 못했고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 노동자들은 올해부터 서울시의 생활임금 적용 대상자에 포함됐지만, 이것도 재깍 올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4년 전에 자회사로 전환한 후 서울시와 자회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통에 교섭이 더 어려워졌다”고 불평하며 서울시에서 농성을 벌이고 항의했다.
5월 1일 출범한 120다산콜재단은 현재 고용형태만 결정됐을 뿐, 임금과 호봉, 승진 등의 문제는 아직 결정돼 있지 않다. 여기서도 노동자들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직접고용 무기계약직화도 유력한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국회 청소 노동자 직접고용 사례를 대표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그렇다. 문재인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일자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홍영표도 “국회 청소노동자 직고용 사례를 공공부문 전체에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전환 이후 국회 출입증 대신 직원증을 받게 됐고, 이전보다 고용안정성이 높아졌다. 다만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서울시도 지난해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의 경정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는데, 이들은 ‘안전업무직’이라는 별도 직군으로 만들었다. 정규직처럼 고용은 보장하되 처우는 기존 정규직보다 열악한 일종의 무기계약직이 된 셈이다.
이 모델은 노동자들과 구의역시민대책위 등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규직이 아니라 ‘중규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서울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별도의 임금테이블을 적용해 차별을 고착화했다. 비중은 매우 적지만 근속연수가 긴 노동자 일부는 용역업체에서 받던 임금보다 더 적은 임금만 받게 되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 때문에 직영 전환 이후 2명이 퇴사하기까지 했다.
요컨대, 자회사 방안이나 무기계약직화 모두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중규직’화 방안으로 불리는 이 모델들은 기본적으로 인건비 절감이라는 목적에서 추진된 것이므로 한계가 명백하다. 이번에 인천공항 사장 정일영이 직접고용 시 “비용 10퍼센트를 세이브할(아낄)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양질의 일자리 전환
따라서 박대성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장이 지적했듯이, 진정 중요한 점은 “어떤 정규직화냐”일 것이다. 고용안정뿐 아니라, 임금·노동조건에서도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온전한 정규직화는 바로 이것을 뜻한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 내려고 하지는 마시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자”며 제한을 뒀다. 〈조선일보〉는 며칠 뒤에 이 점을 부각하며 문재인이 “’정규직 전환(고용안정) + 알파’ 달라는 민주노총에 일침”을 놨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노조도 좀 욕심을 버리라’고 훈계하는 분위기였다”고 〈조선일보〉에 전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문재인의 인천공항 정규직화 약속을 “무기계약직 전환”이라고 옳게 짚으면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 언급은 없이 그저 “적극적 행보를 높이 평가하며 매우 환영한다”고 논평한 것은 아쉽다.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대폭 정규직화해야 한다. 고용안정뿐 아니라 임금·노동조건에서 차별을 철폐해 양질의 질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무비판적으로 기대지 말고, 지금의 기회를 이용해 독자적으로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