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 허경주 씨 인터뷰 :
“국가는 우리에게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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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초대형 화물선 스텔라데이지 호의 실종 선원 가족들이 사고 발생 이후 1백 일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된 수색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 호의 실종 선원들은 침몰 직후 구명벌(자체 동력이 없는 구조 보트)을 이용해 탈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구명벌에는 3일치 식량과 낚시 도구 등 생존에 필요한 장비가 구비돼 있다. 만약 사고 즉시 주변 해역을 수색했다면 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은 사고가 발생한 지 12시간이나 지나서야 한국 해경과 외교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해수부와 외교부도 사고 사실을 안 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에게 보고하기까지 8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사고 발생 28시간 뒤에 수색을 시작했지만 골든타임은 흘러간 뒤였다.
사고 이후 시작된 수색은 새 대통령이 당선한 5월 10일 새벽 4시에 중단됐다가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6월 중순에 재개됐다. 하지만 겨우 2척(정부가 새로 투입한 배 1척, 선사가 투입한 배 1척)에 불과했다.
그런데 7월 11일 오전 11시 정부는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수색 중단을 통보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6시간 30분 동안 식사도 하지 않은 채 해수부, 해경, 외교부 등에 항의했다. 정부 브리핑이 끝나고 가족들은 외교부 건물 앞으로 달려가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외교부 직원은 “아무나 면담 요청한다고 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막말을 했다.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긴급하게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그 농성장에서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 허경주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뜨거운 여름, 그늘도 많지 않은 농성장이지만 세월호 유가족, 4•16연대 등의 연대 방문과 이름 없는 시민들의 응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제 해수부가 수색 중단을 통보했는데요. 정부의 수색 중단 근거는 무엇이고 가족들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어제는 7차 정례 브리핑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자리에 기자들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도된 게 별로 없었어요. 기자들을 왜 막느냐고 물으니까 ‘가족들에게 브리핑하는 것이지 언론에게 브리핑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정부는 6월에 해역 수색을 재개했을 때 그 범위를 가로 3백 킬로미터, 세로 2백20킬로미터로 설정했어요. 이것은 가족들이 요청한 게 아니고 해수부랑 해양과학기술원이 해류 흐름을 분석해 설정한 거예요. 해경은 이 구역을 한 번 훑으려면 배 3척으로 22일 동안 수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색 재개 직전에 보니까 수색 구역이 축소된 거예요. 해경에서 선박 3척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부가 1척만 투입하니까 그런 거예요. 우리가 따지니까 처음에는 잡아떼더니 다음 브리핑 때 수색 구역을 일부 확대 조정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수색 자원은 전혀 늘리지 않았어요. 투입되는 배가 1척인 것은 변함이 없는데 수색 구역만 늘어난 거죠. 정부는 수색 방식을 바꿨습니다. 네모 모양인 수색 구역을 배가 지그재그로 다니면서 수색을 하는데, 그 지그재그 선 사이의 간격을 2.5마일(4킬로미터)에서 5마일(8킬로미터)로 늘린 거예요. 꼼수를 부린 거죠. 이렇게 대충 겉핥기 식으로 수색을 하니까 15일 만에 넓어진 구역을 다 훑을 수 있었던 거예요.
스텔라데이지 호에는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는 물품 중 스텔라데이지 또는 폴라리스쉬핑이라고 기명돼 있어서 식별이 가능한 물품이 2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걸 찾으면 지금 수색 구역이 제대로 설정돼 있는지, 바다 흐름에 따라 어디에 구명벌이 있는 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개나 찾았을까요? 단 두 개 찾았습니다. 심지어 이 두 개도 4월 첫째 주에 찾은 거라서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수색에서는 단 하나도 찾지 못한 거죠. 그러니 상식적으로 이번 수색이 제대로 된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잖아요.
정부는 수색 선박에 실종 선원 가족이 동승하고 싶다는 요구도 딱 잘라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해경도 해수부 직원도 아닌 외국인들이에요. 정부가 구조선을 고용한 거라서요. 이 외국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찾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색을 할 만큼 했지만 나온 게 없다’며 수색을 중단했습니다. 최소한 정부 스스로 수색하겠다고 한 구역만이라도 제대로 수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대로 된 수색에 몇백억 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30억 원이면 해경이 말한 배 3척을 투입할 수 있어요.
지금은 ‘정부가 생색내기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들어요. 얼마 안 되는 예산 집어넣고 가족들 떼쓰는 거 입 다물게 하려고 한 거죠. 이 정도 ‘쇼’ 해 주면 닥치겠지, 이것밖에는 안 돼요.
수색 중단 이후 정부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어제야 ‘통항 수색’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알려 줬어요. 그전까지는 수색 중단 이후의 대책을 물어봐도 얘기를 전혀 안 해 줬어요.
통항 수색은 사고 구역을 지나가는 배에서 그냥 쌍안경 들고 ‘뭐 보이나’ 하면서 쓱 지나가는 거에요. 제대로 보는지조차 알 수 없고, 감시할 수단도 없어요. 해수부도 자기들 입으로 “통항 수색은 체류 수색(수색 전담 배를 투입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건 맞다” 하고 말해요. 우리가 ‘대책이 뭐냐’고 물으면 또 답이 없어요.
외교부와 해수부는 서로 자신들은 주무부처가 아니라고 핑계 대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죠?
지난 6월 30일에 해수부 장관을 만났어요. 그때 해수부 장관이 말하길 ‘해수부는 주무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권한도 없고 예산도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20일 전부터 외교부 장관 면담을 계속 요청했어요. 어제(7월 11일) 외교부 건물 앞으로 찾아왔을 때 외교부 국장 한 명이 나오더니 “(장관을) 왜 만나려고 하느냐”고 하길래 “해수부 장관이 말하길 외교부가 주무부처라고 해서 만나러 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국장은 “해수부 장관이 그렇게 말합디까?” 하는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해외 사고이기 때문에 관할권은 외교부에 있고, 해양 사고이기 때문에 전문성은 해수부에 있죠. 그러니 두 부서가 협력하는 게 최고인데 협력은커녕 서로 미루고만 있습니다.
스텔라데이지 호 참사에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은 무엇입니까?
물론 폴라리스쉬핑이 처음부터 안전 의무를 어기고 개조한 노후 선박을 함부로 굴리다가 사고가 났죠. 그래서 시작은 선사의 탐욕이에요.
하지만 국가는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선적으로 달려가서 구조할 의무가 있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국가는 사고 지점이 해외라는 이유, 관할 부처가 해수부인지 외교부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 등을 대면서 처음부터 계속 ‘핑퐁질’만 했어요.
우리도 처음에는 정부를 믿고 조용히 있었어요. 근데 딱 3주 정도 지나고 난 뒤에는 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 정부가 ‘계약 기간 끝났으니까 수색에서 발 뺄게’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우리에게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박근혜 정부는 스텔라데이지 호 사건이 세월호랑 엮이는 걸 두려워해서 숨기는 데 급급했고, [그래서] 실망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새 정부에서는 많이 달라질 거라 기대도 했었죠. 하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요.
선박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특히 세월호가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선사는 일본에서 폐선하려고 하는 ‘똥배’를 싼값에 사들여 왔어요. 그리고 중국에서 개조했어요. 개조 이후 제대로 된 안전 점검은 없었습니다. 스텔라데이지 호는 사건이 나기 얼마 전 한국선급의 정기 검사를 다 통과했어요. 세월호랑 똑같죠. 정부는 이 한국선급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습니다.
선사 등의 기업주들은 노동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노동할 조건을 제공할 의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텔라데이지 호의 선사는 이 배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영업을 했죠.
개조 선박이 문제인지 노후 선박이 문제인지 밝히려면 원인 규명을 해야 합니다. 심해수색장비를 투입하는 게 답이에요. 개조 선박이 문제라면 다른 배들도 문제는 없는지 점검해야 해요.
지금 선사는 선원들 목숨을 담보로 계속 영업을 하고 있는데 국가는 방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실종 선원 가족들은 다른 개조·노후 선박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라고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어요. 이러다가 다른 배도 침몰할 수 있다고요.
스텔라데이지 호 문제는 문재인 정부에게 접수된 ‘1호 민원’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실종 선원 가족들에게 문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죠. 가족들의 요구에 비춰보면, 새 정부가 약속했던 바는 얼마나 이행됐다고 평가할 수 있나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내가 지금은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지만 당선이 되면 청와대에서 해결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은 그걸 믿었어요.
그런데 당선한 이후에도 스텔라데이지 호 담당자인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을 만나는 데 열흘이 걸렸어요. 그 이후 한동안 진척이 없다가 6월이 돼서야 배가 1척 들어간 거고요.
배 1척 들어간 것도 처음부터 넣어 준 게 아니었어요. 새 정부는 당선 후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만 더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러다가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수색을 재개하는 게 실효성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 거죠.
[6월 10일에 수색을 재개한 것은 청와대가 준비해서 해 준 것이 아니라 미온적인 태도에 우리가] 반발을 했더니 청와대에서 입장을 바꿨던 거예요.
이런 상황들을 보면 모든 게 ‘쇼’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과의 소통’을 얘기하면서 무릎을 꿇고 초등학교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는 대통령,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가는 대통령 등 미담이 많았잖아요.
정부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 우리의 손을 아예 놔 버리는 짓은 차마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수색해 주지도 않고. 이 사건을 계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세월호 유가족과 많은 연대 활동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느꼈던 바가 있다면요?
동병상련을 느꼈죠.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신데, 세월호 가족들을 만났을 때 들은 위로가 가장 와 닿았어요. 정부의 거짓말과 희망고문을 3년 먼저 겪으신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이 지난 3년 동안 좀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바뀐 게 없다고 속상해 해 주실 때 많이 와 닿죠.
곧 4·16연대와 함께 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국가와 가족 몇 명 사이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똥배’를 타면서도 무섭지만 어쩔 수 없이 배를 타야만 하는 선원들을 위해 끝까지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겁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세월호 참사,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을 보면 안전 사회는 아직 멀었어요. 그런 일들이 ‘설마 나한테 생길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동안 힘들었을 다른 피해자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저희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수많은 분들도 안전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