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합훈련(전쟁 연습)이 초래한 북한 미사일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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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북한 중장거리미사일(이하 IRBM, 화성-12형)이 일본열도를 넘어 2천7백 킬로미터를 날아갔다. 이 사건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긴장이 아직 풀리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인공위성 발사 외에 북한 미사일이 일본열도를 넘은 것은 1998년 이래 처음이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로 일본열도는 물론 괌까지 미사일로 타격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려 하는 듯하다. 김정은은 이 훈련이 “괌을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라고 말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추가 발사도 있을 듯하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청와대는 미국과 한국의 대화 제안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미국과 한국은 대북 선제공격 계획이 반영된 을지프리덤가디언(이하 UFG) 연습을 강행했다. 북한은 28~29일 잇달아 미사일을 발사해 UFG 연습에 대응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는 8월 22일, 북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중국·러시아 기업을 비롯한 기관 10곳과 개인들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도 이에 발 맞춰 미국과 거의 같은 제재 리스트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도 기획재정부 장관 명의로 이들과의 거래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공고를 28일 관보에 게재했다. 우회적인 제재 조처다.
한·미·일 등의 대북제재 강화는 가뜩이나 식량난이 우려되는 평범한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을 줄 뿐이다. 게다가 9월1일부터 미국 정부의 북한 여행금지령이 발효된다. 그러면 북한 현지에서 구호 활동 중인 미국인과 미국 구호 단체들은 활동을 중단해야 할 수 있다(〈미국의 소리〉 보도).
UFG 연습처럼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 행동을 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비단 북한만을 자극하는 게 아니다. UFG 연습이 시작되자 러시아는 전략 폭격기 편대를 한반도 인근으로 보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UFG 연습을 이렇게 비판했다. “해당 지역에 군비가 집중되면서 어떤 경솔한 행보나 의도치 않은 사고도 군사 충돌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이 북한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미사일방어체계(MD)의 일부인 이지스 어쇼어를 배치하려는 것을 두고 “정당화될 수 없고 역내 미사일 위협에 견줘 균형이 안 맞는 조처”라고 규정했다. 러시아의 전략 폭격기 전개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일본·한국)을 향한 무력 시위였던 것이다.
이처럼 북핵 문제는 비단 미국과 남·북한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정세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경쟁과 갈등에 얽히고설켜 있고, 그 관계가 어찌 되느냐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것도 결국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갈등 악화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좌파는 ‘북한 핵무장 반대, 한미동맹 강화 반대’ 식으로, 서로 마주보는 두 군사주의를 공평하게 비판할 게 아니라 제국주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한·미·일 지배자들이 동맹과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익은 문재인 정부가 ‘대화 조급증’에 빠져 미국의 대북 정책에 잘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코리아(문재인) 패싱’, 즉 미국의 한반도 외교에서 한국(문재인 정부)이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 총리와 통화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비난했다.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한다는 건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래 70여 년간 불변의 상수였는데도 말이다.
우익은 마치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시사한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항상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문제를 우선시해 왔다.(제국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의 견해에 관한 고려는 언제나 그다음이었다. 예컨대, 1993~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은 당시 김영삼 정부를 북·미 ‘밀당’ 과정에 끼어 주지도 않았다.
이에 반해 일부 진보·좌파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지 정말 중요하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 구실을 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 게 아니라, 그의 친제국주의적 선택을 들춰 내고 반대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균형 외교’와 ‘한반도 신경제 구상’ 등을 내놓고는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미국·일본 등 전통적 동맹들과의 관계를 우선하고 있다. 미국의 압력에 단순히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 스스로 강대국 간 갈등이 점증하고 남북 관계가 악화하는 현 정세 속에서 한미동맹 강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6월 미국 지배자들이 대북 공조에서 한·미 간에 “빛 샐 틈 하나 없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위안부’ 합의는 폐기하지 않은 채 문재인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스리슬쩍 1년 연장해 버렸다. 정부는 사드 배치, 한일 군사협력 등 박근혜의 친제국주의 적폐를 거의 다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구두선(공허한 슬로건) 빼고는 말이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수립된 대북 선제공격 계획을 이어받고, 공세적인 한반도 전쟁 수행 계획을 작성하기로 했다. 또한 내년 국방예산을 6.9퍼센트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이후로 국방비 증가율이 가장 높다. 국방부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의 효과를 따지는 연구에도 착수했다.
한반도 긴장 해소와 평화 정착을 바라는 진보·좌파라면 문재인 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조언하거나, 정부를 설득할 만한 ‘현실성 있는’ 정책 마련에 골몰할 일이 아니다. 정부의 친제국주의적 선택이 낳을 위험성을 들춰 내, 그 선택에 반대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은 반제 투쟁에 비효과적이다
성주·김천 현지의 사드 배치 반대 주민 운동은 임박한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를 저지하고자 애쓰며 지지를 호소하는 중이었다. 북한의 ‘IRBM’ 발사는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북한 당국은 남한의 아래로부터의 운동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가뭄으로 올해 북한 곡물 수확량이 2001년 이후 최악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식량의 양을 줄였다고 보고했다. 북한 당국은 올해 들어 수십 차례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고, 아마도 거기에 꽤 많은 가용 자원을 투입했을 것이다.
또한 잇단 핵·미사일 시험을 감행할 능력이 있는 중간 규모의 산업국이 가뭄에 대처할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주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인민 중시”를 내세운 게 얼마나 모순인지가 드러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남한과 본질이 다르지 않은 사회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