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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특별 기고
핑크머니, 핑크워싱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

필자는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맑시즘2017'에서 같은 제목으로 발표를 했고, 그 내용을 정리해 〈노동자 연대〉 신문에 기고해 왔다.
맑시즘2017에서 ‘핑크머니, 핑크워싱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이란 주제로 연설하는 김현우 활동가 ⓒ조승진

1. 문제 제기

6월 24일 대구에서 제9회 대구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날 ‘성주 사드 배치 철회 촛불 지킴이 동남청년단’은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문구가 쓰인 무지개 플래그를 들고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다. 연단에 오른 동남청년단의 활동가는 성소수자와 여러 사회운동의 연대를 강조하는 발언을 해 참가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런데 이 사드 반대 활동가 바로 다음에 연단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 대사관 공공외교지역총괄담당관이었다. 사회자는 “자유의 나라 미국, 미국 대사관에서 지지발언을 하러 오셨다”라며 미 대사관 발언자를 소개했다. 미 대사관 발언자는 연단 위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인권 문제라고 발언하며 매우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하였다.

이날 대구 퀴어문화축제 부스에도 참가한 미 대사관의 부스에는 트럼프가 ‘성소수자를 보호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진 판넬이 붙어 있었다. 여러모로 미 대사관의 대구 퀴어문화축제 참가는 모순 그 자체였다. 대구에서 불과 한 시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성주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밀어내고 사드 배치를 강행한 미국이 ‘인권’ 운운한 모습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모습은 미국이 자신의 제국주의적 공세를 ‘이미지 세탁’하려는 핑크워싱의 전형이었다.[1]

한편 7월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 주한 미 대사관이 지지와 연대의 뜻을 표명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것은 대구 퀴어문화축제의 연장선상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핑크워싱이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어김없이 영국의 코스메틱 기업인 러쉬(LUSH)가 부스 행사와 프라이드 행진 트럭을 운영했는데 이 또한 다국적 자본의 핑크워싱의 일환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러쉬, 구글, 아메리칸 어패럴과 같은 다국적 자본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외치면서 핑크워싱을 행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국적 자본은 지속적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에 기금을 대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핑크워싱을 행해 왔다. 이들의 핑크워싱을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만 규정할 거냐는 논쟁적인 부분일 수 있으나, 무엇보다 이러한 핑크워싱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전폭적인 지지와 타협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은 깊이 고찰하고 문제시해야 할 부분이다. 제국주의 국가들과 다국적 자본의 핑크워싱이 강화될수록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이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로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을 성소수자가 온전히 해방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한 부문운동으로서 규정한다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타협주의적이고 핑크워싱 의존적인 흐름은 매우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2. 핑크머니와 핑크워싱은 무엇인가

핑크머니는 게이 커뮤니티의 구매력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게이들의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서구사회의 경우, 게이 커뮤니티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이 증대되면서 게이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적지 않은 기업들은 게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마케팅 전략,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들은 핑크머니의 수혜를 보게 된다.

성소수자들은 핑크머니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구매력을 통해 사회 내에서 가시화될 수 있고, 핑크머니를 경제적 압박 수단으로 삼아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일정 부분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핑크머니를 둘러싼 사회적 양상들은 핑크머니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기업 내 정책을 통해 핑크머니의 수혜를 입는 기업들은 근본적으로 핑크머니가 많은 이윤을 남겨다 주기에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취한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보이는 기업들, 이른바 ‘핑크산업’ 기업들은 게이들의 핑크머니를 통해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통해 획득한 ‘착한 기업’ 타이틀로 내부적인 인권 문제를 은폐하고, 긍정적 기업 이미지를 획득해 장기적인 이윤도 얻는다. 핑크산업 기업들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는 인권에 대한 당위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기업들의 이윤 획득 욕구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핑크산업 기업들은 핑크머니가 충분한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고, 오히려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가 이윤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과감하게 성소수자 친화적 정책을 철회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핑크머니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기여하는 바도 있지만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철폐라는 당위적인 문제를 기업의 경제적 이윤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문제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핑크머니가 성소수자 인권의 문제를 경제적 이윤에 따른 문제로 전락시키는 양상은 핑크머니의 개념적 범위에서부터 드러난다. 핑크머니의 주체이자,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되는 주체가 성소수자 그룹 중 게이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등 다른 성소수자들이 핑크머니를 통해 가시화, 주체화되지 않는 모습은 성소수자 그룹 내부에서도 위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를 반영한다. 교차적인 사회적 차별 속에서 게이들은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보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게 되고, 핑크머니라는 권력을 얻게 된다. 소위 말해 ‘돈이 되지 않는’ 다른 성소수자 그룹들은 핑크머니라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핑크머니가 확장되고 그 영향력이 증대될수록 핑크머니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가 비가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핑크워싱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마케팅이나 정치적 전략을 목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언사, 정책을 동원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핑크워싱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이용해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대표적인 핑크워싱으로 지적받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인권영화제를 비롯한 영화제에서 ‘핑크워싱에 반대한다’는 기조 아래 보이콧된 이스라엘의 인터섹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3의 성’은 이스라엘 정부의 핑크워싱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이스라엘 정부는 성소수자 우호적 정책을 펼치고 성소수자와 관련된 영화들을 제작, 배급함으로써 중동에서 유일하게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파하고, 전 세계적으로 ‘문화 다양성을 장려하는 민주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포해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정작 이스라엘 내부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은 열악하다는 점, 이러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이스라엘이 대외적으론 인권을 존중한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 정부의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와 정책은 자신들의 반인권적 범죄와 행위를 핑크색(성소수자 이슈)으로 덧칠하는 데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규탄하는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 ⓒ이미진

핑크머니를 통해 양산되는 핑크산업 기업들도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다수의 핑크산업 기업들은 정작 기업이 행하고 있는 노동 착취나 인권 유린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성소수자 인권 친화적인 마케팅과 정책을 펼침으로써 경제적 이윤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핑크워싱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지지를 표명하며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과 내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제3세계 국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신들의 기업 경영 방침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인권 친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그 어떤 기업보다도 적극적으로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민낯이다.

한편 최근 대단히 전략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하고 나서고 있는 구글 역시 핑크워싱의 대표적 기업이다. 구글은 구글 이용자들의 막대한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구글 웹 내에서 취득한 정보들을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과 미국 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유린에 동조하고 있다.[2] 구글은 독점자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여 공격적으로 노동자들과 소규모 자본을 착취하며 이를 위해 미국의 정치권력에게 전방위적 로비를 한다. 구글의 이러한 민낯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업무 환경으로 유명한 이미지와 한국 성소수자 운동 지원 등을 통해 구축한 핑크워싱의 이미지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

이처럼 핑크워싱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내세워 제국주의 국가들과 기업들이 사회의 다른 약자를 향해 행하는 착취와 억압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 해방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핑크워싱은 무엇보다도 성소수자 억압의 주요기제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은폐하고,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기능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이 자본주의에 있다고 바라보는 맑시즘의 시각에서 성소수자의 해방은 자본주의의 분쇄를 통해서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핑크워싱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자본들의 착취와 억압을 은폐함으로써 교묘한 체제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성소수자 해방의 장벽이 되는 것이다.

3.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핑크워싱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1993년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초동회의 설립과 1997년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동성애자인권연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전신)의 출범 이래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돼 왔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여타 사회운동이 그렇듯, 운동 내 여러 이질적인 세력들이 있었고, 친자본주의적 온건파는 초기부터 주요 세력이었다.[3] 친자본주의적 온건파는 제국주의 국가와 다국적 자본의 후원을 거리낌 없이 받으며 핑크워싱에 동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성소수자 운동 내에는 구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를 필두로 근본적 사회변혁운동과 연대를 지향하는 급진파가 여러 운동을 주도해 왔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동성애자의 평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연대를 중요시’[4] 한다는 기치 아래,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반전 운동, 한미 FTA 반대 운동, 2008년 촛불 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 동참해 왔다. 이러한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통한 성소수자 해방과 이를 위한 연대를 지향하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사회주의·좌파적 인식과 자기규정에 근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운동 초기와 다르게 한국 사회 내에서 성소수자가 가시화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제도적 억압과 차별이 대두되면서 다양한 성소수자 현안에 대한 투쟁에 집중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여러 투쟁의 현안에 있어서 성소수자 운동 내 온건파와 급진파가 단일쟁점 중심의 활동을 벌이게 되면서 한국 성소수자 운동 내 급진파는 우경화를 거듭하게 되었고 핑크워싱에 대한 동조와 타협이라는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 전반의 경향이 형성되고 말았다.

2014년부터 지속돼 온 구글의 청소년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지원, 주한 미 대사관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 지원, 구글의 ‘무지개행동’과 무지개행동 소속 7개 단체의 사업 지원 등은 오늘날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핑크워싱에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표다. 오늘날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단순히 핑크워싱 세력의 지원을 받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와 핑크머니 기업을 운동 내부로 끌어들이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지난 2016년 12월 김조광수-김승환이 설립한 성소수자 문화센터인 ‘신나는센터’는 미 국무부 LGBT 인권특사 자문관 닐 바이스를 초청해 ‘성소수자 인권특사의 역할과 인권외교의 방향’, ‘미국 성소수자 단체-현 정부의 관계 맺기와 협력’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주최했다. 한편 무지개행동은 대북전단 살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의 위선적 대북 제재를 옹호해 온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성소수자 출신 최고법원 법관’이라고 소개하며 올 5월 그와 간담회를 했다. 이러한 성소수자 운동진영 내 활동들은 핑크워싱 전략을 구사하는 제국주의 세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견고한 억압의 체제에 편입시키고 근본적 사회변혁을 통한 성소수자 해방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한 성소수자 운동진영 내 핑크워싱 동조 활동은 실제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작년 11월 ‘신나는센터’가 개최한 ‘성소수자와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핑크 산업의 전망과 비전’이라는 제목의 강연회에서 러쉬 코리아의 상무가 성소수자 차별적 발언을 해 30분 만에 강연이 중단된 사례는 성소수자 운동진영의 핑크워싱 동조가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또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를 취하는 소위 핑크머니 기업들이 실제로는 성소수자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드러냈다.

오늘날 핑크워싱에 동조하는 우경화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자유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 정치와 정체성 정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 내 자유주의적인 흐름은 성소수자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한 집단행동보다는 성소수자 개인의 변화와 개인적 해방 ― 자신을 둘러싼 억압을 이해하고, 이를 성소수자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 그러한 사회적 편견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 을 강조한다.[5] 이러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정치는 결국 억압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연대와 집단행동을 배제하고, 라이프스타일, 문화 정치·운동으로 이어진다. 라이프스타일 정치는 성소수자로서의 생활양식(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고, 이를 공동체적으로 향유함으로써, 또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표현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존재를 확인받고, 그 존재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운동이다. 분명 이러한 성소수자 운동은 사회 속에서 배제된 성소수자의 존재를 호명하고, 성소수자의 사회적 지위를 드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운동이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러한 라이프스타일, 문화 정치는 사회의 근본적인 성소수자 혐오와 억압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 확장과 전파가 한정적이다. 또한 라이프스타일 정치는 성소수자 내의 특정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을 생산하고 옹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함으로써만 자신의 자리를 찾고, 존재할 수 있는 성소수자의 지위와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상 ‘성소수자적 소비’를 의미하는 ‘성소수자 라이프스타일’은 그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성소수자 계급에게만 유의미한 생활양식이자 문화이다. 라이프스타일 정치는 특정 계급의 성소수자만을 자유롭게 할 뿐, 모든 성소수자들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정치는 성소수자 억압의 근원인 자본주의 시스템과 그 기제에 편승함으로써 오히려 억압적 기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오늘날 성소수자 운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정체성 정치는 성소수자 억압의 근본 원인이자 모순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오직 이 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러나 성소수자 차별과 억압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분리해 다루면 성소수자 차별의 근본 원인을 이해할 수 없고, 성소수자 해방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도 제시하지 못한다.[6] 극단화된 정체성 정치는 사회 근본 모순의 해결을 위한 연대를 가로막는 분리주의 정치로 이어진다. 정체성 정치와 분리주의 정치는 차별과 억압의 당사자를 사회운동 내에서 고립시켜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강화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진영이 핑크워싱에 동조하는 현상은 라이프스타일 정치, 정체성 정치의 대두와 무관하지 않다. 라이프스타일 정치, 정체성 정치라는 우경화된 운동 노선의 영향으로 성소수자 운동진영은 성소수자 라이프스타일 형성과 향유에 도움을 주는 핑크머니 기업들에 의존하게 되며, 성소수자 차별과 억압의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이를 위해 제국주의 국가, 다국적 자본과 타협하게 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성소수자 운동진영이 지향해야 하는 운동은 성소수자 내 소수에 불과한 자본가, 중간계급만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나, 제도적 개선에만 매몰되는 운동이 아니다. 성소수자 운동진영이 지향해야 하는 운동은 성소수자 억압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고 모든 성소수자가 해방될 수 있는 변혁적 사회운동이다.

퀴어퍼레이드 개막식에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사관이 연단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이미진

4. 결론: 다시 스톤월 항쟁을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제국주의 국가와 다국적 자본의 핑크워싱의 장이 되어 버린 일명 퀴어문화축제, 프라이드 행진은 급진적 성소수자 운동의 등장을 알리는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드랙퀸, 트랜스젠더와 흑인, 히스패닉 등의 유색인종 성소수자가 주축이 되어 성소수자를 향한 경찰의 조직적인 탄압에 저항한 스톤월 항쟁은 ‘동성애자해방전선’이라는 급진적 성소수자 운동 조직을 만들어 낸다. 동성애자해방전선은 동성애 억압이 자본주의 자체에서 생겨난다고 봤고, 핵가족 제도와 전통적인 성 역할에 도전했으며,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든 사람의 해방은 일체의 억압이 사라진 사회를 건설하는 것, 즉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인식했다.[7] 당시의 운동은 이전의 온건하고 타협주의적인 운동과 달리 큰 성과를 냈다.

급진적 성소수자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스톤월 항쟁으로 시작된 프라이드 행진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단순한 ‘축제’로 전락하거나 핑크워싱의 장이 되었다는 점은 대단히 비극적이다. 그러나 성소수자 운동 진영 내 급진파와 우리 사회의 진보좌파는 스톤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기며 투쟁적이고 우리 사회의 근본 억압과 모순에 맞서 싸우는 성소수자 운동의 건설을 위해 힘써야 한다.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순간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또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운동의 성과를 내고자 핑크워싱 세력의 지원을 받거나 동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변혁 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성소수자 운동은 모든 인간의 해방을 위한 연대와 운동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더불어 진정한 의미로서의 성소수자 해방운동을 위해서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저항해야 한다. 그랬을 때 역사적인 1984~85년 영국 광원 파업과 프라이드 행진에서의 노동자와 성소수자 간 연대, 근본 모순에 전면적으로 저항하고 맞서 큰 성과를 거둔 1969년 스톤월 항쟁의 감동과 성과를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4]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 동성애자 인권연대’, 안희영, 〈서울대저널〉 68호.

[5]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2016), 노라 칼린, 콜린 윌슨, 이승민, 이진화 역,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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