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유엔 연설:
북한 도발이 아니라 트럼프의 초강경이 진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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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미국 우선” 노선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그는 “내가 집권하는 한 다른 그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며 동맹국들을 향해 한쪽에만 유리한 (즉, 미국에는 불리한) 거래는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서방 지배자들이 유엔 총회장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국제 질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떨떠름하게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또한 북한·이란·베네수엘라 등을 “사악한 소수의 불량국가”라고 지목하며 매우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 정권들은 공통점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바른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대적하지 않으면, 결국 악이 승리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2002년 부시가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비난한 것과 비슷하다. 그중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2003년에 미군 침공으로 무너졌다. 그 일에서 나름의 교훈을 얻은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치달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란과 북한은 트럼프에 의해 “악”으로 규정됐다.
국제정치에서 이런 식의 선악 구분은 그 자체로 매우 위선적인 이중 잣대다. 예컨대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수백만 명의 아사, 수많은 사람들의 투옥, 고문 등에 책임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탄압하는 미얀마(버마) 국가 비판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이 연설에 앞서 트럼프를 만난 방글라데시 총리는 트럼프가 로힝야족 문제에 눈감았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버마 국가와 관계를 개선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연설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바로 북한을 향한 군사 행동 위협이었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국과 동맹국들이 위협받는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일부 국가들이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과 무역할 뿐 아니라 무장시켜 주고 금융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말했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한 범죄자 무리를 지켜보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이것은 중국 등을 겨냥한 얘기다. 트럼프는 유엔 대북제재보다 더 강한 조처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트럼프의 연설에 앞서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니키 헤일리, 국무부 장관 틸러슨 등 트럼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잇달아 대북 군사 행동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외교 옵션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결국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대북 이슈를 다루게 된다. … 그렇게 되면 북한은 파괴될 것이다.”(니키 헤일리)
“우리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 단 하나 남는 것은 군사 옵션이 될 것이다.”(틸러슨)
서울
특히, 별명이 “미친개”인 국방부 장관 매티스가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대북 군사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큰 피해를 입을까 봐 미국이 대북 군사 행동에 주저할 것이라고 ‘오판’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리고 조만간 한반도 인근에 미 항공모함이 배치된다.
트럼프 정부의 잇단 호전적 발언이 한반도가 당장 “화염과 분노”에 휩싸일 것임을 시사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실패하지 않았고, 북한과 그 주변국들한테 여전히 상황을 통제할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북 군사 행동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이것이 단지 엄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이 먼저 물러서라는 것이다. 아니면, 중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라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면, 미국의 협박이 도리어 북한의 강한 반발을 부르며 사태를 더 악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그럴 공산이 있다. 북한이 미국한테 보낼 “선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서울(한국)이 위험하지 않은 대북 군사 행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은 즉시 (자칫 중국까지 휘말리는) 전면전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현재 언론에는 “위험하지 않은” 군사 행동으로 해상 봉쇄나 사이버공격 등이 거론된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북한이 제재를 우회하려고 밀수를 자행한다고 폭로했고, 9월 미국이 제출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 초안에는 공해상에서 군사력을 동원한 선박 검색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군사 행동도 북한의 반발을 부르며 한반도 상황을 아주 불확실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지금의 긴장 상황이 시간이 지나 일시적인 이완기로 전환될 가능성은 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 행동은 그만큼 판돈이 크게 걸려 있는, 즉 미국에게도 위험한 도박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갈등이 계속 악화하는 한, 한반도 긴장은 근본으로 해소되지 않고 금세 재발될 것이다. 수준이 더 악화된 형태로 말이다.
그때마다 미국 대통령이 ‘오판’하지 않으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게다가 트럼프인데? 아니면 문재인이 외교력을 발휘하길 기대해야 할까? 지금 문재인은 사드 배치 등 트럼프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하고, 핵잠수함 건조 등 우회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말이다.
한반도 긴장의 원인인 제국주의에 맞서고 자본주의 이윤 체제를 마비시킬 유일한 사회 세력인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 이것만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트럼프 방한 반대한다!
이런 와중에 11월 초 트럼프가 한국에 올 예정이다. 11월 10~11일 베트남 아펙(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한·중·일을 순방하려는 것이다.
진보·좌파는 모두 한반도 긴장의 주범인 트럼프의 방한에 반대해야 한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문재인은 대북제재와 군사 협력 강화에 합의했는데, 그런 결정이 이후 한반도 정세에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그 뒤 사드가 급속하게 배치되고 한미FTA 문제가 불거진 것을 두고,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은 “[정상회담 당시] 무엇인가 미국과 다른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고 지적했다. 외교 실무 경험이 풍부한 인사인 만큼, 그의 의심에 근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11월 한·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럼프는 상당히 많은 청구서를 들고 서울에 올 것이다. 대북 압박 강화, (사드 구입까지 포함한) 미사일방어체계(MD) 참가 및 비용 분담, 미국산 무기 수입,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 방안, 한미FTA 개정 등등.
문재인은 결국 트럼프의 요구에 별로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이 미국과의 협력을 우선하기로 선택했으니 말이다. 비록 지지층을 의식해 대북 인도적 지원도 말하지만 말이다.
트럼프의 11월 방한은 한국인 다수에게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화염과 분노” 운운하며 한반도를 위협하는 진정한 “악의 축”에게 노동계급의 분노를 보여 주자.
[추천 책] 제국주의론으로 본
트럼프 등장 이후의 동아시아와 한반도
김영익·김하영 외 지음, 책갈피, 288쪽,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