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 연대와 투사들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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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노동운동 전반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에 관한 문제가 날카롭게 제기됐다. 주요 노조들에서 잇따라 비정규직 동료들을 내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지도부가 판매연대의 노조 가입을 거부한 것, 기아차지부 집행부가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쫓아낸 것, 전교조 중집이 비정규직 교·강사의 정규직화 요구를 반대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저마다 ‘사정’은 있었다. 사측이 강요하는 판매 실적 경쟁의 우려(판매연대)나 가르치는 교사의 ‘자격’ 요건(비정규직 교·강사) 논란이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은 내가 속한 부문·작업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으려고 온갖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고 분열을 부추긴다.
노조 지도자들이 그런 ‘사정’에 타협한 결과는 부정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정규직의 사기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았다. 든든한 정규직 노조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 자기 노조가 비정규직을 배신한 ‘이기주의’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노동조합 투사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어떻게 노동자들의 연대를 발전시킬 것인가?
진지한 투사들이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생각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안 돼.’
그러나 이런 태도는 좌절감을 줄 뿐이다. 또, 의도치 않게 연대 파기를 이끈 노조 지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에도 맞지 않다. 올해 문제가 불거졌던 곳들에서도 비정규직에 연대하고자 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적지 않았다.
오히려 좌파들이 복기하고 돌아볼 점은 따로 있다. 노동조합 내 좌파들이 좀더 일찌감치 기층에서 분열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고 연대를 구축했다면 사태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좌파들은 우왕좌왕 하며 시간을 까먹거나 노동조합 내 온건한 부위에 타협하며 문제의 일부가 됐다.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하거나 노동조합이 분열하게 될까 봐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좌파들이 비정규직 노조 분리나 비정규직 교·강사 정규직화 반대처럼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는 주장에 대해 논쟁을 삼가지 않을 때만 오히려 단결을 유지할 수 있다. 단결은 그저 여러 이견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가 현실의 여러 압력에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논쟁하고 설득할 때 강화된다.
무엇보다 좌파는 투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때, 체제의 희생자(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를 비난하는 보수적 주장을 물리칠 수 있다.
경제 위기는 노동계급의 삶에 고통을 가해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반목하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위기가 계급 투쟁과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모순적이다. 고통전가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함께 뭉쳐 싸워야 한다는 정서를 자극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잘 이해한다면 좌파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연대기금이 단결에 도움이 되나?
노동운동 안에는 연대의 방안으로 제시됐지만 실제로는 연대에 도움이 안 되거나 심지어 방해가 되는 제안들이 꽤 있다. 그중 하나가 연대기금이다.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등의 지도자들은 비정규직과 청년 일자리를 위한 ‘연대기금’을 추진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의 일부를 떼어 기금을 내면, 사용자들의 양보도 끌어낼 수 있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은 그것이 설사 선의에서 출발했다 해도, 사용자의 양보는 거의 끌어내지 못한 채 정규직에게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이 있다는 이간질만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
실질적 연대 강화는 도리어 방해가 됐다. 대표적으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김성락 집행부의 ‘나눔과 연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원망과 불화를 낳았다. 전체 임금 몫을 늘리기 위해 투쟁하는 게 아니라, 줄어든 몫을 두고 노동자들끼리 아옹다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대의식은 정규직의 임금 양보가 아니라 더 나은 조건을 위해 함께 단결해 투쟁할 때 고취될 수 있다.
비정규직 위해 정규직 요구를 내려놔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이 자기 요구를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좌파가 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나 투쟁을 외면하면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회피하거나 흐지부지 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한껏 지지하면서 동시에, 그 힘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립시키면 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요구를 결합시키고, 연대를 확대하도록 애써야 한다.
1사1노조는 비정규직을 통제할 뿐인가?
진보·좌파들은 대부분 기아차 노조 분리에 반대했다. 그런데 일부는 1사1노조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통제를 낳는다며 사실상 회의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지도부의 관료적 통제는 노조가 분리돼 있어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일례로, 지금 한국지엠 창원의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파업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더러 단기 계약직에 대한 해고를 수용하라고 압박하며 사실상 투쟁을 통제하려 한다.
관건은 기층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런 힘으로 미덥지 못한 노조 지도부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분리된 노조보다 하나의 노조 안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함께 활동하면서 연대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좌파 활동가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투쟁하는 비정규직과의 연대야말로 효과적인 조직화 방안
민주노총과 산하 조직들은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일부 지도자들은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비정규직을 지원함으로써 조직을 확대하는 일에는 미온적인 경우가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조합원이 되기까지 여러 노조들을 뺑뺑이 돌아 간신히 금속노조 경기지부로 가입하는 경로를 밟았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올해는 자동차 판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난을 겪었다. 금속노조 지도부가 노조 가입 승인을 1년이나 미루면서, 일부 노동자들은 사측의 혹독한 탄압에 홀로 방치된 데 좌절감을 안고 노조 하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최근 금속노조가 가입을 승인하기로는 했다지만 노동자들을 개별 지부로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어 여전히 불만을 사고 있다.
기간제 교사들은 또 다른 사례다. 전교조 지도부가 4만 7000명이나 되는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며 그들의 편이 돼 주었다면 조직 확대의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전교조 중집이 정규직화 반대를 표명하면서 기간제 교사들은 좀더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쳐 조직하고 투쟁에 나설 때, 그것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조직 확대 방안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잘 싸워서 승리의 전망을 보여 주는 것, 같은 부문·작업장의 비정규직 요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 또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노동조합 결성을 고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