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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개혁 과제 이행률 2%:
문재인 반 년은 임기의 나머지를 미리 보여 준다

〈조선일보〉와 함께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동아일보〉는 11월 10일자 문재인 6개월 평가 기사의 제목을 “‘미래-인권’ 사라진 적폐 청산”으로 뽑았다. 〈동아일보〉의 기사는 문재인 정부의 첫 반 년이 ‘적폐 청산’으로 요약된다고 했다. 그리고 적폐 청산 수사는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이명박과 박근혜를 겨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적폐 청산에 ‘새 권력의 정치 보복’ 프레임을 씌워 물타기하는 우파의 전형적 수작이다. 도대체 우익은 “미래”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이 신문의 독자에게 굳이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동아일보〉가 현 정부 반 년 동안 전임 정부 숙청하기용 ‘적폐 청산’만 두드러진다고 한 건 그 자체로는 맞는 말이다.

문재인의 지지부진한 개혁이나 개혁 배신을 지지하려고 촛불 든 게 아니다 ⓒ이미진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구 여권 청산의 명분과 동력을 촛불의 적폐 청산 염원에서 빌려 왔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꾸는 개혁에는 턱없이 못 미치거나 심지어 때로 배치된다.

인적 청산도 아주 미흡하다. 인사 개혁 문제에서도 송영무, 박성진(낙마), 박기영(낙마), 박형철, 탁현민 등 우익적이거나 부패한 인사들을 내각과 청와대에 등용하려고 해 실망을 샀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 해소 문제와 안보 문제에서 오히려 등을 돌리고 약속을 어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감히 촛불 정부를 자임하지만, 촛불 운동을 정권 교체의 동력으로만 제한해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주당은 정권 퇴진에 반대하면서 박근혜와 물밑 거래를 하려 했다. 서울에서 100만이 넘는 정권 퇴진 시위가 벌어진 뒤에도 문재인은 “질서 있는 퇴진”(퇴임 후 안전 보장)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자신이 정치적 ‘혼란’을 해결할 수 있음을 지배계급에 보여 주려 했던 것이다. 비록 지배계급의 제2선호 정당이어도 민주당은 명백한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받는 일자리·임금·부동산 정책 등에서 정작 친노동적인 면을 민주당 정부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이유다.(오히려 경제팀은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겨 경제·안보 위기에 대처하려는 지배계급의 기본 프로젝트에서 이탈할 생각이 없다.

적폐 청산? 적폐 연장?

그래서 문재인은 대통령의 명령으로 즉시 이행할 수 있는 일도 미루고 피해 왔다. 퇴진 촛불 1주년 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촛불 100대 과제 이행률이 2퍼센트라고 발표했다. 이 기구의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치를 바라는 입장이었는데도 말이다.

특히 9월 초 6차 북한 핵실험 이후로는 정부는 미국의 강경 대북 압박에 더한층 찰떡 궁합으로 호응하고 있다. 9월 7일에는 경찰 폭력을 동반하며 사드를 전격 추가 배치했다.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선 각종 첨단 무기 구매에 합의했다. 평화를 위협할 뿐 아니라 복지 확대에 차질을 줄 일인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파기는커녕 재론될 기미조차 없다.

국정원 등이 주도한 탄압으로 확인된 일들에서도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등 양심수 석방, 전교조·공무원노조의 인정 등이 그것이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인 진압 탓에 죽었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 거의 다섯 달이 걸렸고 경찰 지휘부의 핵심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박근혜의 대표 노동개악이던 성과연봉제는 폐지했지만, 이번에는 직무성과급으로 추진할 태세다. 최저임금 인상도 무력화하려 한다.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인천공항의 경우까지 포함해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누더기가 됐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일자리와 복지 확대 예산이 충분히 반영된 것도 아니다. 예산안을 내면서 문재인이 한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경제라는 말이 39번, 성장이라는 말이 15번 나왔으나 분배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방한 항의 집회에는 경찰 적폐의 상징인 차벽과 채증 카메라가 등장했다. 트럼프는 한국 국회에서 환영 박수를 받으며 미국이 이식한 자유 ‘민주주의’를 찬양했다.

박근혜 파면 이후 세월호가 인양되고 선체 조사가 시작됐지만, 금세 더디고 답답한 예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책임 떠넘기기

개혁 지지부진(과 외면)에 쌓이기 시작한 불만에 문재인은 국회로 공을 넘기는 것(정치적 대화)으로 대처한다.

전교조 등의 노조 인정은 국회가 ILO 협약을 비준한 이후에 하기로 미뤘다. 세월호는 정부 차원 조사기구를 설치하기로 한 공약을 취임 석 달 만에 철회하고는 국회로 공을 넘겼다. 하지만 올 11월에 통과될 거라고 정부가 장담한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법’(2기세월호특조위법)은 통과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게다가 추가 의혹이 드러나는데도 검찰에 수사를 지시하지도 않는다.

분명 자유한국당 등 우파가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집권해 놓고 우파를 핑계 삼을 거면 애초에 ‘대통령’ 선거에서 입법 공약은 왜 냈는가? 대통령 직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도 안 하면서 우파 핑계를 대는 것은 군색한 책임 회피다.

문재인의 또다른 책임 회피 방식은 민감한 쟁점을 노사정 등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풀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과 (특히) 박근혜 때처럼 개악을 일방으로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통으로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대화 테이블에 올라온 차림표가 구 여권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안보 문제에서 촛불 염원을 크게 배신한 것 때문에 노동개악을 서두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는 아래로부터의 커다란 압력이 없다면, 지배계급이 동의하는 개악 어젠다를 정부가 언제든지 추진할 수도 있다는 걸 뜻한다. 마치 노무현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비정규직 개악 법안 등을 한나라당과 협력해 통과시켰듯이 말이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독립적으로 세력을 구축하지 않고 정부와 협력해 개혁을 얻으려고 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 방식일 뿐인 “숙의 민주주의”는 정권의 개혁 회피에 그럴듯한 외양을 부여할 뿐이다.

또한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나 신고리원전 중단처럼 기업주들이 반발하는 공약은 사회적 대화로 넘겨 공약 파기의 책임을 회피한다.

신고리 핵발전소 관련 공론화위원회에 진보 엔지오들이 참여했다가 들러리만 선 것으로 끝난 일을 보라. 문재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반도 평화 운동을 분열시키면서까지 트럼프 방한 반대를 내걸지 않았던 엔지오들은 트럼프 방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기능을 했다.

또 하나 문재인 정부의 책임 회피 방식은 〈한겨레〉, 〈경향〉 같은 친민주당 언론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들은 하찮은 개혁 제스처를 포장해 주고, 개혁 배신은 상황 논리로 변명해 준다. 그들은 최근에도 퇴진 촛불 1주년 집회에 정부 비판 목소리가 클까 봐, 난데없이 여의도 촛불을 띄우며 힘을 빼려 했다.

퇴진 촛불의 교훈은 거대한 대중 운동이 있을 때만 체제 수호 세력들의 방해를 뚫고 얼마간이라도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