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수백 명이 당당하게 낙태죄 폐지를 외치며 행진하다

12월 2일, ‘2017 검은 시위 ― 그러니까 낙태죄 폐지’가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300여 명이 모여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쳤고, 활기차게 집회와 행진을 했다.

‘검은 시위’는 지난해 폴란드에서 일어난 대규모 낙태권 시위 참가자들이 검은 옷을 입은 것을 본딴 제목이다.

12월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조승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집회를 주관했다. 이 연대체 소속단체인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깃발과 다양한 팻말을 들고 참가했다.

노동자연대, 정의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진보정당과 좌파 단체 회원들도 참가해 낙태죄 폐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밖에도 여러 여성 단체들과 학생 단체들이 참가했다.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집회 시작 전 광화문 인근에서 “낙태죄 폐지”를 헤드라인으로 하는 〈노동자 연대〉 신문을 판매하며 낙태죄 폐지 캠페인을 벌였는데,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가 높았다. 서울 곳곳에서 열린 〈노동자 연대〉 가판에서도 낙태죄 폐지 주장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 낙태죄 폐지는요?”

이날 집회는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23만 명 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놓은 직후 열린 집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한 달 만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청원에 참가한 것은 낙태죄 폐지 여론이 높다는 점을 보여 줬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답변은 알맹이가 없었다. 처벌 위주의 정책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 등은 지적했지만 정작 청원의 핵심 내용인 낙태죄 폐지에 대해서는 확언한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직후에는 천주교계 등 낙태죄 폐지 반대 진영의 반발을 달래려는 줄타기 행보를 보였다.(관련 기사: 본지 231호 ‘낙태죄 폐지 알맹이 빠진 청와대 답변’)

집회 주최측이 나눠 준 팻말(“그래서 낙태죄 폐지는요?”)과 구호, 몇몇 발언 등에서 기대보다 미흡한 청와대의 답변과 그 직후 우파에 타협하는 행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날 집회는 그리스도교 우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는 의의가 있었다. 또한 청와대 답변 이후에도 낙태죄 폐지 운동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행진 대열이 반환점인 청와대 인근 청운동 주민센터 근처에 도착하자 사회자는 “청와대는 우리에게는 ‘친절하게’ 영상으로 답변하고, 천주교에 찾아가서는 고개 숙였다. 우리는 ‘친절’에 속지 않는다. [청와대가]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을 거라면 우리에게 엎드려 사과하라!”고 발언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침이었다.

참가자들은 이 발언에 호응하며 청와대를 향해 “친절은 너나 갖고 낙태죄를 폐지하라!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하고 함께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하고 있다 ⓒ조승진
집회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앞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하고 있다 ⓒ조승진

시위 참가자들은 세종로공원에서 청와대 인근까지 끊임없이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활력 있게 행진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청와대는 여성의 생명권을 책임져라. 청와대는 여성의 건강권을 책임져라”, “낙태죄 폐지 없이 민주주의 없다”, “낙태는 처벌하고 낳으면 나몰라라”,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캐롤과 찬송가를 재치 있게 개사한 노래도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내 자궁에 간섭 말라", “여성은 정부의 자궁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 ― 낙태를 합법화하라”,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등 참가자들이 준비해 온 다양한 팻말들도 집회의 활기를 북돋았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 ⓒ조승진

“낙태죄 폐지, 더는 미룰 수 없다”

자유 발언을 신청한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며 낙태죄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주장했다.

처음으로 발언에 나선 한 여성 청소년은 피임과 낙태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학교의 실태를 비판했다. “[왜곡된] 영상 시청을 통해 두려움과 죄의식을 여학생들에게 심어 순결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임신과 임신중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또한 “임신 중절은 여성의 권리이고 이 권리는 한 인간의 삶과 존엄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찬반의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녹색병원 산부인과 의사라고 밝힌 윤정원 씨는 자신이 직접 겪은 환자들의 사례를 들어 낙태가 불법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안전한 시술을 받지 못해 얼마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낙태 시술이 불법이다 보니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돼도 시술 병원을 밝히기 힘든 현실,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청소년이 임신 사실을 15주 차에 알게 됐지만 성폭력 사실이 입증돼야만 합법적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시술 병원 못 찾아 헤매야 했던 사례, 이때 불법이기에 치러야 하는 높은 비용이 낙태의 걸림돌이 된 사실 등등.

마무리 집회에서는 장애여성공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장애여성, 성매매 여성, 여성 성소수자에게도 낙태권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렸다.

한편, 집회를 마무리하면서 사회자는 어떤 참가자에게서 “청와대는 할 만큼 했는데 왜 청와대로 행진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자도 얘기했듯이 청와대가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청와대의 답변은 낙태죄 폐지 문제를 회피했고 낙태죄 폐지 법안 추진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낙태 반대 세력에게 타협하려는 모습마저 보였다. 따라서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한 것은 자연스럽고 정당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싸우는 우리가 낙태죄를 폐지한다!”고 함께 외쳤다.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 폐지에 대해 약속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결정권을 보장받으려면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집회를 디딤돌 삼아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위한 운동이 성장하길 기대한다.

낙태죄 폐지하라! ⓒ조승진
ⓒ조승진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