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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고 박선욱 간호사 수사 종결 예고와 간호사 처우 개선 대책 발표:
정부가 책임지고 간호사 인력을 대폭 늘려라

3월 19일 경찰은 서울아산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종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태움’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서둘러 손을 떼려 한다.

이는 고 박선욱 간호사와 유족의 고통에 공감해 행동에 나선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 훈련이 이뤄지는 어느 병원에서나 ‘태움’이 있다고 말한다. 구조적 문제, 즉 인력 부족 문제가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인력 부족이 병원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메르스 사태나 이대목동병원 사태 등을 보지 않아도 병원에 가 보면 누구나 금방 느끼게 된다. 대형 병원들이 인간의 안전과 존엄, 생명보다 ‘이윤’(수익성)을 우선시해 온 결과다. 정부는 의료 체계 전체를 이런 자들에게 내맡겨 왔다.

이처럼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을 병원과 정부에 물어야 할 텐데, 경찰은 문제를 교육 간호사 등 몇몇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경찰의 내사 종결 방침은 병원과 정부 책임을 면죄해 주고 사실상 고 박선욱 간호사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셈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처사에 유족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실제로 태움을 겪어 본 간호사라면 누구나 경찰이 ‘증거’ 운운하는 것에 혀를 찰 것이다. 태움은 그런 식으로 ‘괴롭힌 증거’를 남기며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폭적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 ⓒ조승진

인력 부족

일단 간호사들이 놓여 있는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 병원의 불친절하고 형편없는 대우에 짜증이 날대로 난 환자와, 그런 환자를 옆에서 돌보며 함께 화가 난 보호자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간호사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신규 간호사들이 태움을 참아 온 이유도 단순히 어수룩해서가 아니다. 신규 간호사들은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으면서도 환자를 돌보려면 그 교육 내용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애가 ‘타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자신이 커다란 실수라도 저지르면 얼마나 자책하겠는가. 고 박선욱 간호사도 바로 그런 정신적 고통 속에 괴로워한 듯하다.

“교육 간호사를 프리셉터라고 하는데요. 똑같이 환자 보느라 힘든 와중에 신규들 교육을 하려면 행동 하나하나 실제로 하면서 설명해 주고 질문도 받아야 해요. 10여 년 전에 비해 일이 두세 배 늘었는데 인력은 전혀 충원이 안 됐어요. 신규와 프리셉터 모두에게 환자 수를 줄여 줘야 해요. 모든 간호사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시스템 문제이지 개인 문제가 아니에요.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문제에요. 박선욱 간호사는 이브닝 근무(대개 오후 3시~11시 근무) 때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했대요. 그러면서 집에 가면 또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김진경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

간호사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처우 개선을 위해 사측에 맞서 싸워 온 이유다.

경찰만 문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경찰의 수사 종결 예정 발표 이튿날 ‘간호사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태움’이 “간호사들이 임상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적발되면 의료면허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다시 책임을 간호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처럼 책임을 떠넘기면서 내놓은 ‘처우 개선’ 대책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정부 대책에는 “간호사 노동 환경과 처우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저임금 해결과 임금 격차 해소 대책, 높은 노동 강도와 엄청난 업무량 경감 대책, 빈번한 시간외근무 줄이기 대책, 직접적인 간호 인력 확충 대책이 빠져 있다. 이것은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종합대책의 근본적인 한계점이다.”(보건의료노조, 3월 20일)

그나마 내놓은 인력 확충 계획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고 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권장”할 뿐이다. 정부 자신이 운영하는 국립대병원들도 민간병원처럼 수익을 좇아 운영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조처로 민간 병원들이 알아서 인력을 늘리려 할까?

정부는 ‘야간근무 추가수당’을 지급하겠다지만,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불과 20일 전 근로기준법을 고치면서도 병원 노동자들을 연장근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으로 남겨 뒀다.

야간전담 간호사도 제대로 된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재 야간전담 간호사들은 최대 한 달에 보름 가까이 밤샘 근무를 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기 쉬운 간호사들은 언젠가 자신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될까 봐 근심만 쌓일 뿐이다. 무엇보다 인력 자체를 대폭 늘리지 않는 한 이런 조처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부족한 노동자들을 야간 노동으로 내모는 일밖에 안 된다.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정부가 공공병원을 늘리고, 고용과 인력 양성 훈련에 재정을 투자하는 것이다. 정부 대책에는 그 재정 얘기가 단 한 마디도 없다. 그리고 이처럼 정부가 따로 재정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면 결국 건강보험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다른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인력 확충에 필요한 비용을 또다시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우려가 큰 것이다.

따라서 인력 대폭 확충과 부자 증세를 통한 정부 투자 확대, 규제 강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내걸고 노동조합들과,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간호사연대 등 기층 간호사들이 단결해 이 끔찍한 현실을 바꿔 나가야 한다.

이 기사는 4월 18일에 일부 수정됐습니다. 경찰은 3월 19일 내사 종결 예정 발표가 보도된 이후 유가족의 항의와 비판 여론이 일자 내사 종결을 유보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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