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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노동존중’, 점점 실체를 드러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을 표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촛불 운동으로 태어난 정부답다고 여겼다. “일자리 대통령”이나 “소득 주도 성장” 같은 말은 우파 정부 하에서 저질 일자리,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임금 억제 정책에 신물이 난 노동자들의 기대를 자극했다. “사람 중심 경제”라는 표어도 ‘이윤보다 사람’이라는 오랜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구호와 같은 뜻인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된 문재인 노동정책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 원 같은 핵심 약속과 정책들이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3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공공운수노조가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쟁취!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를 열고 상시지속업무 예외 없는 정규직 전환, 해고 없는 정규직 전환, 꼼수‧편법 정규직 전환대상 축소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진

(1)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노동시간 단축 미루기

문재인은 노동시간 관련 근기법 개정 후,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간다운 삶을 향한 대전환의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말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장 노동시간과 과로사회에서 벗어나”게 됐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주 52시간 노동의 단계적 적용, 5개 특례 업종 존치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휴일수당 중복할증 폐지에 따른 휴일노동 장려,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논의 명시 등을 보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최장 노동시간과 과로사회에서 벗어나기는 글렀다.

문재인은 “끈질긴 논의와 타협”도 칭찬했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 노동조합은 완전히 배제됐다.

똑같은 겉치레와 위선이 지금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의 질 제고”나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표방해 온 것이다.(〈2018년 정부 업무보고〉,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계획〉)

그런데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최소화하려 한다. 중소기업 사용자와 자영업자의 부담이 이유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액은 전체 노동자 임금 총액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민주당 정부는 사용자들에게 이 정도의 부담도 지우지 않으려 한다.

민주노총 새 집행부는 위의 두 쟁점, 즉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의 일방적 개악을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재논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가 어그러지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남아 있을 명분을 잃게 된다는 신호를 문재인에게 보낸 셈이지만, ‘노동존중’에 걸맞은 화답은 없었다.

국회 환노위는 한국노총이 제안한 최저임금 노사정소위를 거부했다. 민주노총도 비슷한 논의 틀을 요구했다. 지금 최저임금 산입범위 결정은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흡혈귀의 친구들에게 혈액은행이 맡겨져 있는 격이다.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과 기간제교사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2월 21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기간제교사 정규직 전환 제외 및 해고를 규탄하고 있다. ⓒ이재환

(2)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공부문 저임금 직군의 탄생

문재인이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이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정책이 됐다. 그러나 1단계 실행을 보면, 전환 대상과 전환 방법 모두에서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못 된다.

우선,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4만 명이 넘는 기간제 교사들이 대표적 사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환 제외 대상자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등도 투쟁에 나섰다.

둘째, 직접 고용이 아닌 자회사 방안도 흔히 포함했다. 공공기관들은 경영 부담을 줄이고자 자회사를 적극 활용했다. 정부는 ‘일차적으로 고용안정, 이차적으로 처우개선’ 원칙을 표방했지만, 자회사 전환은 고용안정도 보장할 수 없는 방안이다.

셋째, 직접 고용으로 전환된 노동자들도 제대로 된 정규직이 아니라 대부분 무기계약직 또는 별도직군이 됐다. 처우 개선도 미미했다. 게다가 무기계약직 전환자에 적용되는 임금 표준모델(직무급)을 만들었다. 이는 해당 직종을 저임금 집단으로 고착화시킬 게 뻔하다.

이런 문제점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펴겠다면서도 “과도한 비용” 또는 “국민부담 발생” 없는 방식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충분한 예산 지원 없는 정규직 전환 정책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상황을 은근히 이용했다.

마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 시행 상의 난점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인 것처럼 암시한 것이다. 물론 정규직(이 다수인) 노동조합들이 충분한 예산 지원과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비정규직과 연대했다면, 그럴 여지를 봉쇄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일자리 대통령? 구조조정 칼을 휘두르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성동조선소 법정관리와 STX 구조조정,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일자리 대학살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기업 위기에 노동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는데도 오히려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 같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STX에는 기업 회생 자구책으로 생산직 노동자의 무려 75퍼센트 감원을 요구했다.

‘친노동이자 친기업’이라며 ‘더불어 성장’을 하겠다더니, 취임 몇 달 만에 ‘기업 살리자고 노동자 내쫓는’ 본색을 드러내며 일자리 대학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일자리를 위해 내놓은 것이라고는 고용지원대책 같은 박근혜 정책의 재탕뿐이다. 그런 정책이 효과가 없었음은 이미 드러났다.

정부는 고용과 해고가 유연해도 재취업 훈련을 잘 지원하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은 일터에서 쫓겨나게 생긴 노동자들에게는 한가한 헛소리일 뿐이다. 해고 위험에 놓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하겠다는데, 있는 일자리부터 지켜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다. 기업(결국 이윤!)을 살리는 데 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대량 해고와 폐쇄 위기에 놓인 사업장을 국유기업화하는 것이 기업에 책임을 묻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길이다.

ⓒ출처 금속노조 성동조선해양지회

(4)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 뒤통수 치기’ 3종 세트

앞에서 다룬 네 가지 쟁점에서 나타난 문재인 정부의 겉치레와 위선은 비교적 알려져 있다. 노동자들 자신이 항의와 투쟁에 나선 덕분이다.

특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문제점을 들춰냈다. 마트노동자와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한 저임금층 노동자들의 항의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의 꼼수가 알려졌다.

이와 달리 몇몇 사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쟁점은 아래와 같다.

○ 공무원노조 규약 시정 지속 압박

문재인 정부는 전국공무원노조에 박근혜 정부가 반려한 설립신고를 내주기는커녕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규약 시정을 압박하고 있다. 앞에서는 헌법에 노동3권 보장하겠다면서, 뒤에서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으로 해석될 조항을 규약에서 없애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문제 삼는 조항은 박근혜 정부가 문제 삼았던 바로 그 조항이다. 물론 그것을 규약에서 삭제하고 규정으로 옮기면 눈감아 주겠다고 한다. 노조와의 협상 자리에서는 이 꼼수를 제안하며 우파 핑계를 댔을 수 있다.

그러나 규약과 모순되는 규정은 효력이 문제될뿐더러, 다음번엔 정부가 규정마저 문제 삼고 나올 수 있다. 또다시 우파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게다가 규정 수정은 규약보다 훨씬 쉬워, 노조 내 세력관계에 따라서는 규정으로 옮겨진 단서 조항이 규정에서마저 사라질 수 있다.

문재인은 ‘노동존중’ 정책의 하나로 결사의 자유 등에 관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ILO가 오랫동안 “해고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 금지”를 비판한 것의 결과이기도 하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겉으로는 협약 비준 약속하면서 뒤로는 쉬쉬하며 위선 자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규약 시정 압박에 저항해야 한다.

○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재추진 시도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기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이자 박근혜 정부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쟁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공공운수노조 등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노동자들에게 성과연봉을 반납하도록 해 ‘공공상생연대기금’ 재단까지 설립했다.

그러나 3월 초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 및 혁신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성과연봉제 시행안을 포함하려 했음이 드러났다. 정부가 끼워넣은 성과연봉제 권고안은 박근혜 정부가 발표했던 것 그대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대위의 항의로 권고안은 일단 삭제됐지만, 정부가 성과에 따른 보수체계를 추진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단지 성과연봉제를 각 기관 특성과 여건을 반영해 시행하라고 하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2월에 발표한 공무원지침에 성과연봉제를 포함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촛불 운동은 초기에 철도 파업 노동자들이 불씨를 댄 덕을 톡톡히 봤다. 그 핵심 쟁점이 바로 성과연봉제 반대였다. 촛불 운동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이 노동자들 몰래 슬그머니 성과연봉제 재추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노동시장 구조 개선’ 카드 다시 꺼내

민주노총은 최근 일자리위원회가 발표한 청년일자리대책 자료 초안에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고 밝혔다(3월 15일자 성명). 위원회의 본회의 자료에서는 빠졌다지만 “우려되고 심각한 내용”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이렇게 규탄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악을 포장했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서 딱 한 글자 바꾼 판박이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청년·여성 고용 문제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에서 비롯한다며,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의 조건 개악에 열을 올렸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포진한 노동정책 브레인들도 대개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프레임을 공유한다. 올해 1월 문재인이 주재한 청년일자리 점검회의에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은 이 제안을 충실히 반영하라고 했다.

배규식 씨는 〈매일노동뉴스〉 좌담(2017년)에서도 같은 주장을 편 바 있다. “[노조는] 보호받는 노동자만 대변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에 기여한 면이 있다. …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려 해도 노사정 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과정에 노동계도 참여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계속 고립될 수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부 방안을 비판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고용안정유연모델 구축 등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다시는 재론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정부 정책 안은 느닷없이 불쑥 나온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계급 기반, 따라서 그들이 추진하려는 개혁의 진정한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개혁 말이다.

또한 그에 맞서려면 단지 엄포가 아니라 단호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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