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산업재해 사망자 1957명:
이윤 논리에 노동자 안전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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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박근혜 정부가 안전 문제에서 보인 무관심과 무능 때문에 문재인은 대선 때부터 안전 문제를 부각했다. 집권 후에도 문재인은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며 “2020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매우 미흡하다며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평한다. 건설기계, 화물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는 여전히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발동은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등 곳곳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4월 25일 광화문에서 “NO! 위험의 외주화, YES!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OUT! 과로사·장시간 노동 – 4·28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노동자들은 이윤 논리에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업중지권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해당 작업장에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업중지명령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2017년 10월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기계 협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발동된 작업중지명령은 5일 뒤 사측의 작업재개 요청이 접수되자 불과 3~4시간 만에 해제됐다. 절차상 노동자들과 면담을 통해 위험요소 제거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지만, 현장 관리자인 팀장들과의 면담만 했을 뿐이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3월 2일 노동자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엘시티 추락사고 현장도 재발방지 대책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지만 결국 35일 만에 노조의 반발을 무시한 채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됐다.
작업중지와 해제의 권한은 고용노동부와 기업주에게만 실질적으로 부여돼 있다. 현행 ‘산안법’상 노동자에게도 작업중지권이 있지만, 나중에 회사가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심지어 수억원 대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현실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산재사고가 잦은 건설업, 조선업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작업중지권이 잘 발동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해환경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7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957명으로 전년 대비 10.1퍼센트(180명) 증가했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964명으로 비슷한 수준이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185명이 증가한 993명이었다.
유해한 작업환경 속에서 건강과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정부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금속노조가 현장에서 다량 사용되고 있는 여섯 개 안전장갑을 검사해 보니, 모든 검사대상 장갑에서 DMF(디메틸포름아미드) 잔존량이 독일 안전기준을 초과했고, 심지어 독일 기준의 80배가 넘는 장갑도 있었다. 한국은 최종 제품에 남은 DMF 잔존량에 대해 아무 기준이 없다. 이 장갑을 물에 8시간만 담가 두면 독성물질이 제거되지만, 제조업체들은 생산비용을 이유로 세척을 하지 않는다. 노동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더니 안전장비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외면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11년 전에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책임을 회피하고자 거짓말로 일관하는 삼성의 행태를 폭로했다.
“내 딸 유미가 반도체 공장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갔다 뺐다 하는 일을 하다가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처음에는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다가, 사실이 드러나자 안전한 화학약품만 쓰니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 뒤에 또 유해물질이 나오니까 이제는 영업비밀이라 말을 할 수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반도체와 삼성사업장에서 일하다 각종 암에 걸렸다고 반올림에 알린 사람만 320명을 넘어서고 있고, 이 중에서 118명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도 삼성은 여전히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삼성 측은 최근에도 백혈병, 림프종에 걸린 노동자와 유족들이 작업장 유해환경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요구하자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기밀’이라며 삼성을 편들고 나섰다. 2017년에 이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당시 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산재노동자와 나아가 지역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NO 위험의 외주화, OUT 과로사, 장시간 노동
산재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자들이 안전관리에 주도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생명안전 지속 업무의 정규직화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겠다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약속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다.
산재 사고가 빈번한 건설업과 조선업에서는 여전히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해 있다.
“건설현장에서 여전히 해마다 노동자 500~600명이 죽어 나가고 있지만,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과 하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안전은 찾아볼 수 없다.”(강한수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건설지부 교선부장)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 수백 명이 여전히 사고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해양플랜트 위 좁은 공간에 수십 명이 움직일 틈조차 없이 위험한 혼재작업을 진행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이런 열악한 환경을 만들었다.”(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
“화력발전소에서 5년간 340여 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40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피해자는 90퍼센트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7600명은 모두 필수유지, 생명안전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규직 전환 대상에는 이 중 20퍼센트만 포함됐다.”(최규철 공공운수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 태안화력지회장)
과로, 장시간 노동도 노동자들을 건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유해환경이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달에 무려 100시간이 넘는 연장근무”로 과로에 시달리며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학교급식 노동자들도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면서도 대체인력 부족으로 휴식조차 제대로 취할 수 없다 보니 골병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환자를 돌봐야 할 병원노동자들이 아픕니다”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보건업은 지난 2월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 시 특례업종으로 주당 52시간 근로 규정에서 제외됐다.
최근 노동자 두 명이 연달아 목숨을 잃은 이마트에서도 사측이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며 노동강도를 높인 탓에 과로가 누적돼 왔다. 하루 2번 30분씩 있는 휴식시간이 20분으로 짧아져 스트레스가 부쩍 높아졌다. 그 시간에 진행하던 중간정산을 할 시간조차 부족해졌다.
정부가 말로는 ‘안전 사회’를 외쳐도, 실상은 기업의 이윤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산업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노동자들이 강력한 투쟁으로 이런 정신나간 우선순위를 뒤흔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