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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 적폐 문서 공개:
법이 지배계급의 도구임을 보여 주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가 주도해 온갖 편파적 판결을 유도하고 조장한 증거 문서들이 일부 공개됐다.

5월 말 처음 공개될 때 인용되거나 목록만 발표됐던 문서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졌다.

공개된 문서들은 양승태 측이 사법 권력 강화를 위해 반(反) 노동계급 판결을 행정·의회 권력과 거래하려 한 정황들을 아주 분명히 보여 준다.

판사들을 행정적으로 감독해 필요한 판결을 유도해 내려 한 시도 등도 발견된다. 본격적으로 수사해 파헤쳐야 할 문제들이다. 더 철저한 외부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이 문서들은 주로 양승태 체제의 법원행정처에서 그의 심복 구실을 하며 기획조정실장과 차장(법원행정처 서열 2위)을 지낸 임종헌이 작성하거나 작성을 지시한 것들이다.

문서를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보고서의 결론에서 주로 양승태와 임종헌 등의 관료주의 문제로 사건의 본질을 축소했다. 조사단이 보고서에서 문제라고 언급한 중요 문서들 일부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사법 농단 사건의 실체가 충분히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임종헌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을 봐도, (제목부터가) 3권 분립 와해가 아니라 세 권부가 독자적 이해를 가지고 거래를 해 왔음이 간접 증명된다.

“검사 시절부터 형성된 사법부에 대한 견제 의식과 심정적 반감”이 있는 민정수석 우병우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제치고 박근혜의 최측근 구실을 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한 흔적들도 그 사례다.

당시 사법부 최고위층은 원하는 입법을 위해 의회 다수당을 움직이게 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체제 수호적 이해관계가 일치했음이 드러난다.

해당 문서들은 청와대와 대법원 최고위층의 이해관계가 일치함을 강조하고 상호 협력에 따른 득실을 따진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 흠집날 수도 있는 원세훈 판결을 사법부 최고위층도 유심히 살피고 있음도 전달했다. 물론 협력 불발에 따른 ‘위험’(“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도 주지시킨다. 2016년의 조기 레임덕 발생 가능성도 언급된다.

조사단이 문서 손상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은 문서 목록에는 원세훈 재판처럼 특정 판결들 전에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재판 동향 등을 상의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양승태 측은 박근혜 청와대에게 사법부가 “미래 지향적인 ‘경제 부흥’”과 “국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고려”해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판결들을 해 왔다고 제시한다.

ⓒ출처 철도노조

인혁당 등 반민주적 판결과 박정희 유신 체제하 긴급조치로 고통받은 이들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결,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중형 판결, 전교조 교사의 국가보안법 판결, 통상임금의 신의칙 판결,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철도노조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판결, 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판결, 쌍용차와 콜텍의 정리해고가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는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유죄 판결, 전교조 법외노조화 통보 효력 인정 판결, 밀양송전탑 공사중지 가처분 기각 결정, 제주 해군기지 공사 법적 유효 판결 등이 그 예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법원이 국회에 제시한 “신속하고 종국적인 배상 및 보상 방안”이 그대로 ‘4·16세월호참사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반영됐다. 양승태 측은 이를 두고 정권이 위기 상황을 조기 극복하도록 협조했다고 과시한다.

그들은 이것들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 관계를 정립”하려고 노력한 판결이라고 불렀다. 소수 지배자들의 기득권 보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삶과 저항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고, 바람직한 노사관계라는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사법 적폐를 털겠다며 법원이 자체 내부 조사도 하지만, 정작 적폐 옹호 판결들은 이어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진압 작전을 지휘한 전 서울경찰청장 구은수에게 무죄를 선물했다. 이재용과 한진 조씨 일가를 모조리 석방·불구속 처리했다. 각종 반(反) 노동 판결들도 이어지고 있다.

계급적

“법관의 잘못된 재판에 대한 직무감독(검토계획)” 제목의 문서들은 이들이 이런 판결들을 위해 법관의 판결 내용들을 감독·통제하려 했음도 보여 준다. 임종헌 지시로 검토·작성했다는 문서들은 재판 결과에 대한 직무감독권 행사의 득실을 따져 보고 있다.

“튀는 판결의 최소화” 잇점도 있지만, 상급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정권으로 재판 결과가 교정되면 판사들의 내부 반발뿐 아니라 사법부 전체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조사단의 “조사보고서”는 이 문제에 관해 당사자들을 조사한 결과, 재판 내용에 징계를 포함한 직무 감독 등의 사법행정권을 발동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우세해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고 해서 판사들의 (재산 등) 뒷조사까지 실시한 것이나 재판 감독권 행사 검토를 지시한 자가 모두 양승태의 심복인 임종헌인 걸 보면, 재판 내용에 대한 비공식적 간섭마저 없었다고 믿을 근거가 없다.

또 다른 문서(“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에서는 판사들을 대상으로 “가용한 비공식적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함 ... 큰 반발이 예상되므로, 철저한 보안 유지 필요” 등을 언급하고 있다.

끝으로, 문제의 재판들에서 다뤄진 KTX 승무원, 쌍용차 정리해고 등은 노무현 정부 때에 시작된 사건들이다. 노무현 정부의 불법 파견 허용과 해고 인정, 무책임한 쌍용차 해외 매각 등이 원죄가 됐다. 또한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나 이석기 전 의원 등 양심수 석방 등을 문재인 정부는 전혀 이행할 생각이 없다. 양승태의 사법 적폐 뒤에 숨어서 문재인 정부가 문제 해결에 침묵하는 것이 위선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