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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 성명 혜화역 불법촬영 항의 집회에 대한 마녀사냥:
여성의 정당한 분노를 지엽적 문제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2018년 7월 11일에 발표한 노동자연대 성명을 그 뒤 상황 변화를 반영해 개정증보한 것이다.

불법촬영에 항의하는 혜화역 3차 집회가 7월 7일 열렸다. 성차별 반대 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주최 측 발표 6만 명). 주최 측 발표를 기준으로 하면, 5월 19일 1차 집회와 6월 9일 2차 집회는 각각 2만여 명, 4만 5000명으로, 시위를 거듭할수록 참가자 수가 늘었다.

참가자들은 주로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시위 스태프의 다수도 20대로 보였다. 놀라운 일이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성차별 반대 집회를 이 젊은 여성들이 몇 달 새 세 차례나 벌인 것이다.

이 운동은 그동안 불법촬영 수사·처벌 과정에서 만연했던 여성 차별에 대해 여성들이 정당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그동안 사회에서 이등국민 취급받아 온 것 전반에 대한 불만도 깔려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대통령 하에서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 점은 2차 집회 뒤 나온 성명서와 3차 집회에서 두드러졌다.

실망

집회 주최 측인 ‘불편한 용기’는 2차 집회 뒤 이렇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10대 공약으로 몰카 판매 및 소지 허가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말뿐인 정부’, ‘일회성인 정부’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가 젠더폭력 대책을 발표한 뒤 불법촬영 피해 방지법안이 여러 개 제출됐지만 통과된 게 하나도 없다. 방심위가 불법촬영 영상을 삭제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삭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2차 시위 뒤 드러났다.

성차별 발언을 반복한 국방장관 송영무, 저급한 여성 인식을 드러낸 청와대 비서관 탁현민 등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이 높지만 그들은 여전히 중용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2차 집회 뒤인 6월 15일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기 재원 50억 확보, 불법촬영물 공급자 수사 강화 등을 약속했다. 피해 영상물 삭제 건수도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대규모 시위 덕분이다.

그러나 ‘불편한 용기’ 측은 더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요구하며 적어도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주류 정치권과 주류 언론의 반짝 관심을 경계하며 계속 시위를 벌이겠다는 것은 완전히 현명하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에 대한 풍자와 항의의 표현이 3차 집회에서 나왔던 것이다. 불법촬영 관련 수사가 그동안 편파적이지 않았다는 문재인의 3일 국무회의 발언을 성토하며 대통령 풍자 퍼포먼스도 벌였다. 완전히 옳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일부 표현을 두고 일부 언론과 친문 인사들, 김어준 씨 등은 혜화역 시위를 ‘과격하고 극단적인 혐오 시위’라며 맹렬하게 비난한다.

한 참가자가 문재인을 향해 “재기해”라고 발언하고 참가자들이 따라 외친 것과 한 여성이 ‘곰’이라고 적은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퍼포먼스를 한 것이 성토 대상이다. ‘재기해’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투신] 자살하다/라’라는 은어로 사용돼 왔다. ‘곰’은 문재인의 성인 ‘문’을 뒤집은 것인데, 친문 진영은 이를 문재인도 투신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자유주의자들이 관용적이라는 건 완전한 오해임을 그들이 입증하고 있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성차별 반대 여성 시위가 몇 달 새 세 차례나 열렸다 7월 7일 혜화역 시위 ⓒ이미진

어떤 표현들이 사용되는 구체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단어 사용 여부만을 놓고 ‘혐오’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인식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과정에서 극소수 참가자들이 박근혜에게 성차별적 편견이 섞인 욕설이나 위협적인 표현을 썼다고 해서 그 운동을 ‘여성 혐오’로 비난했던 것이 부당한 것과 비슷하다.

피상적

정치인이나 훈련받은 활동가도 아닌 서민층이 다수인 20대 여성이 최고 권력자에 대한 불만을 즉자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그 표현 형식만 갖고 이 집회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저의가 의심스럽다.

문재인을 ‘곰’으로 표현한 것에는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다. 2017년 2월 27일 문재인 캠프도 곰을 문재인의 상징 이미지로 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야 해당 여성이 잘못을 한 것이고 수사 과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동안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촬영 수사에 대해 수사당국이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신속한 수사·처벌, 신속한 삭제 등의 피해 구제 노력이 부족했다는 여성들의 성토는 전적으로 옳다.

워마드가 주도하므로 혐오 시위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옳지 않다. 최근 주최 측은 자신들이 워마드가 아니라고 밝혔다. 설사 워마드 측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해도 이 운동은 3회 만에 연인원이 10만여 명에 이르는 대중 운동이다. 참가자들(운동의 사회적 구성)을 보지 않고 운동 집행부의 성분만 문제 삼아부정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관심을 딴 데로 돌려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불법촬영, 비동의 영상물 유포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노동계급 여성들 사이에서도 광범하다. 실제로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학생이거나 직장에 다니는 젊은 노동계급 여성들이다. 그것이 워마드 사이트 이용자인지 아닌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3차 집회 직후, 시위를 지지하고 시위의 요구를 정부가 이행토록 더 노력하겠다고 밝힌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집회 현장에 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비난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말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게 쟁점이어야 할 것이다. 아래의 두 장관 말이 실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자.

“공중화장실 관리는 행안부의 고유 업무 ... ‘편파수사’의 당사자로 지목된 경찰청은 행안부의 외청 ... 저의 책임이 큽니다. ... 몰카 단속과 몰카범 체포, 유통망 추적색출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김부겸)

“국가기관과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성토[한] ... 생생한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고, 불법촬영 및 유포 등의 두려움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정현백)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당 위원장도 일부 과격한 표현만 볼 게 아니라 그동안 여성이 당해 온 것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가 언론의 비난을 받았는데, 부당한 비난이다.

마녀사냥 속에서도 주최 측은 8월 4일 광화문에서 4차 시위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불편한 용기 게시판에는 환호의 댓글이 길게 이어졌다. 다음 집회도 대규모일 듯하다.
7월 13일 주최 측은 여성가족부와 만났는데, 정부 측 요청으로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9월 국회에서 불법촬영(몰카) 관련 법안이 통과되려면 대중행동을 멈춰선 안 될 것이다.

ⓒ이미진

운동의 특징

이 운동은 젊은 여성들의 자발성이 두드러진다. 자원자들로 구성된 스태프만 250명이라고 한다. 주최 측이 단일한 성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2차 시위 뒤 집회 조직 방식을 놓고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 가능하다는 방침만 제외하면 이 운동이 채택한 정당·‘운동권’ 참가 거부, 개인 자격 참가 방침은 2008년 촛불 운동의 초기 국면을 연상케 한다. 당시 촛불 집회에도 10~20대 청년들이 많았는데, 대개 연성 아나키즘 성향을 보였고 기존 진보단체를 포함해 공식 정치세력들에 대해 불신과 경계를 드러낸 바 있다.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의 압도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압도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 즉자적 분노를 드러내며 분리주의적 경향(집회에 남성 참가 배제 등)을 띠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전술은 운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여성들조차 분열시키는 약점이 되기 쉽다. 일상생활에서 남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은 별로 없다.

최근 주최 측 내에서 일어난 분열의 핵심 쟁점 하나가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방침이었던 것도 이런 문제를 반영한다. 기존 대외팀은 ‘생물학적’ 여성에서 ‘생물학적’이라는 표현 때문에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이를 삭제하자고 했다. 최근 난민 배척 선동이 일어나면서 자신들이 그런 배타적 움직임과 연결돼 보이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3차례의 혜화역 집회는 불법촬영 쟁점으로 터져 나오긴 했지만 근저에는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에 대한 반발이 있다. 따라서 이 운동이 여성 차별에 도전하는 더 효과적인 운동이 되려면 ‘생물학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트랜스젠더의 존재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성범죄에 반대하고 성평등을 지지하는 남성도 많다.

더 개방적인 조직 방식이 운동의 저변을 확대해 더 성공적인 운동이 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