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편파판결 불법촬영 항의시위:
올해를 달군 불법촬영 항의운동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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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6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광화문에서 열린다. 집회 사흘 전인 12월 18일 밤, 주최 측인 ‘불편한용기’는 이번 집회를 마지막으로 다음 시위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전격 밝혔다.
불편한용기가 이런 결정을 발표한 배경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주최 측은 “지난 5월부터, 6차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진보진영·보수진영 할 것 없이 남성 권력의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받아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운영진은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제가 곡해되지 않고 진의를 전달하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의 이유로 이 운동에 대한 반발(‘백래시’)을 꼽은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여러 반발에도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3차 집회 뒤 언론들과 친문 인사들의 마녀사냥이 있었지만 이 운동에 대한 지지는 더 늘어났다. 그래서 8월 4차 집회는 집회 장소를 혜화역에서 광화문으로 옮겨 정점을 찍었다.
6차 집회 구호문에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구호가 있음이 미리 공개됐다. 그러자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집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한민국 웹하드 대표이사 (청와대 청와대)”, “알탕 카르텔 문재인 때려쳐라” 같은 문구가 특히 반발을 낳았다.
이 구호문이 공개된 직후, 불법촬영 항의 집회 카페와 여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카페들에서 6차 집회 구호가 “과격하다,” “문재인 탄핵 요구가 들어가는 게 옳지 않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문재인 때려쳐라” 같은 구호는 6차 집회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새삼 논쟁이 됐다. 이는 최근 양진호의 검·경 로비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정부에 대한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합리적 의혹
불편한용기가 웹하드 카르텔과 문재인 정부를 관련지은 것은 괜한 의심이 아니라 합리적 의혹이다. 최근 양진호의 검찰과 경찰 로비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웹하드 업체들의 협회인 DCNA의 전직 간부들이 민주당원들로 밝혀졌다. 민주당의 부패 전력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민주당이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은 많을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촬영물을 대거 유통시켰는데 그동안 거의 제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심위는 올해 새로운 필터링 기술인 ‘불법 유통 촬영물 DNA 추출 시스템 개발’ 사업을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조한 것으로 의심받는 민간 필터링업체에 맡겼다.
정부와 정치권, 웹하드 카르텔과의 관련성 의혹이 커지는데도 주류 언론은 대부분 이 문제를 다루기를 꺼렸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최 측은 이번 집회를 앞두고 웹하드 카르텔의 핵심으로 청와대를 정조준하는 구호를 내놓았다.
동력
이 운동은 지난 4차 집회를 정점으로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5차 집회는 수만 명 규모로 여전히 컸지만 4차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주최 측은 경찰에 낸 집회신고서에 이번 집회 규모를 5천 명(5차 집회 때는 1만 5천 명으로 신고했다)으로 적었다.(실제 참가 규모는 신고 규모보다는 많았다.)
이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이 집회에 대한 반대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일쟁점 운동이 갖는 한계와 관련 있는 듯하다. 불법 촬영·유포 범죄 처벌·단속이라는 단일쟁점으로 7개월째 항의 운동을 해 왔다. 단일쟁점 운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 급속도로 동력이 떨어지게 된다.
지난 10월 6일 5차 집회를 앞두고 필자는 〈노동자 연대〉 261호에 이렇게 썼다.
“이 운동은 어떤 계기를 얻으면 다시 성장할 수 있지만, 일반으로 단일쟁점 운동(광범한 여성 차별에 대한 분노를 깔고 있지만 불법촬영, 편파수사라는 단일 쟁점의 항의운동이다)은 지속 기간이 길지 않다. 대중의 분노와 싸울 자신감이 클 경우 단일쟁점 운동은 매우 빠르게 타올랐다가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그 협소함과 정치적 전망 부재로 확장성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특히, 지배자들이 그 운동을 시스템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양보나 양보 제스처를 취하면 스멀스멀 동력이 분산되게 된다.”
올해 5월 급부상한 이 운동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배자들은 이 운동에 일부 양보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5차 집회 직후인 10월 17일 주최 측과 2차 간담회를 했고, 그 뒤 ‘몰카 제왕’ 양진호와 웹하드 업체 임원들, 헤비 업로더 등을 구속했다. 그리고 국회는 11월 29일 불법 촬영·유포 범죄 처벌 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12월 18일부터 이 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양보는 부족하다. 불법촬영물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수익을 몰수하는 등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단일쟁점 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도 그 뒤 쉽게 반격에 부딪힐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약점
지난 5차 집회 때 이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는 조짐이 보였지만, 불편한용기는 이를 극복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정치 배제’라는 아나키즘적인 방침 때문에 운동이 직면한 도전을 적절히 다루지 못했다.
남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주최 측의 분리적 페미니즘도 운동의 전망을 열어젖힐 수가 없었다. 남성 비하적 표현들을 거리낌없이 쓴 것은 여성 차별에 대한 반발의 표현으로 너그럽게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적대시하는 태도는 평범한 남성들의 반발을 사기 쉬웠다.
젊은 여성들이 이 운동에 대거 동참한 것은 워마드식 정치보다는 이 집회의 투쟁적·급진적 분위기 때문이다. ‘여성계’ 지도자들과 달리,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한 게 분노한 젊은 여성들의 정서와 잘 맞았다.
그러나 정세가 좋고 여성들의 자신감이 높을 때는 운동 주도자들의 정치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투쟁이 한동안 성장할 수 있지만, 운동이 일정 국면을 지나서 새로운 정치적 상황에 처하면 한계가 드러나는 법이다.
주최 측이 이번 집회를 앞두고 발표한 글을 보면, 여전히 기성 질서를 거침없이 비판한다. 하지만 “불법촬영 범죄자 공범”으로 “한국 남성을 규탄한다.”
만약 모든 남성들이 성범죄자고 ‘여성혐오’에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이 운동의 전망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모든 남성들이 카르텔을 맺어 여성을 억누른다고 생각한다면, 여성해방은 물론 불법촬영 근절 감소조차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때려쳐라”는 구호가 그냥 폭로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의미가 있으려면, 계급투쟁을 무시한 채 모든 남성을 도매금 취급하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자본가들과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 정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노동계급과 서민층 남성을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권력자들 및 자본가들과 동등한 ‘남성 권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스물넷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발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를 과연 이 사회의 특권적 집단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만약 노동계급 남성을 지배계급과 같은 특권적 집단으로 간주한다면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적 정책과 사용자들에 반발해 싸우고 있다는 점을 놓치게 된다. 그러면, 차별받는 여성들이 힘을 합쳐 싸울 수 있는 동맹 세력을 못 보게 돼, 여성운동의 전진에 큰 약점이 된다.
불편한 용기가 다음 시위를 무기한 연기했지만 이 운동의 중단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정치적 계기가 생기면 주최 측이 다시 기회를 잡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운동이 재개돼도, 운동이 직면한 정치적 문제들이 저절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운동의 성과를 밑거름 삼아 더 전진하려면 이 운동의 약점을 극복할 정치(물론 급진적 좌파적 정치)가 필요하다. 이 정치는 의회나 국가기구와의 협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투쟁을 고무하면서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나아가 해방의 전망을 보여 줄 수 있는 정치를 뜻한다. 여성해방과 노동계급의 해방을 연결시키는 진정으로 급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이 운동에 참가한 젊은 여성들의 활력과 투지는 놀라웠다. 많은 여성들이 이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불법촬영 항의운동은 한국 여성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이 운동에 지지를 보내자. 그리고 이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앞으로 무엇이 더 필요할지를 고민해 보자.
정치적 대안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분단은 성별이 아니라 계급이다. 물론 모든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여성 차별의 경험은 계급에 따라 상당히 다르고 해결책도 달라진다. 노동계급 여성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공공보육시설이 대폭 확대되기를 바라지만, 자본가 계급과 상층 중간계급의 여성들은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기를 원한다. 노동계급 여성들을 고용해서 양육 부담을 덜 수 있는 부유층 여성들은 공공보육시설 확충이 절실하지 않고 흔히 이에 반대한다.
7개월 동안의 불법촬영 항의운동에 참가한 수십만 여성들은 대개 학생이거나 노동계급 여성들(가령 이디야 등에 근무하는)이었다. 여성 인구의 대다수가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노동자 집단이다. 불법촬영 항의운동이 보여 준 잠재력을 향후 발전시키려면, 일자리, 임금, 복지 등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요구들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이 발전해야 한다.
여성운동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수많은 김용균을 양산하는 기업주들과 국가의 정책에 항의하는 노동자 투쟁과도 연결돼야 한다.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여성운동이 만날 때 여성운동은 큰 힘을 얻게 된다. 물론 소규모 알음알음 급진 페미니스트들만의 배타적 조직으로는 이런 대중 운동을 건설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