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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노동시간 단축 또다시 후퇴시키려 한다:
탄력근로 확대 위한 법 개악 시사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 관련 법·제도를 또다시 후퇴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8월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장과의 소통과 호흡”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신축적으로 하는 것은 충분히 의논할 수 있다.”

그는 다음 날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구체적으로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연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정부는 근로기준법의 관련 조항을 개악할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 2022년까지 단위 기간 없애고 전면 시행.)

재계는 그동안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 연장과 유연근무제 확대 등을 요구해 왔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정당과 언론들도 ‘노동시간 단축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난했다.

김동연의 노동시간 단축 “속도 조절”, “신축(적 운영)” 발언은 이에 대한 화답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기 악화에 직면해 기업주들의 이윤을 지키고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우경화하고 있다. 정부가 광범한 노동시간 단축 열망을 거듭 배신하는 배경이다.

특히 이번 후퇴 시사는 당·정·청이 ‘고용 쇼크’ 해결을 위한 긴급 회의를 한 직후에 나왔다. 형식적으로는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난 7월, 취업자 증가 폭이 더 줄어 8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향은 해결책이기는커녕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를 어기는 사용자에 대한 처벌을 6개월 유예하고(그래서 실제로는 노동시간 단축 시행을 유예하고), 일부 업종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장시간 노동 정책을 유지해 왔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가능한 일자리 확대조차 어렵게 만든 것이다.

정부가 지난 6월 유연근무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유연근무를 적극 권장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도 일자리 창출의 유인을 가로막는 효과를 내고 있다.

예컨대, 탄력근무제가 도입되면 일정 단위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은 줄지만, 그 내에서 하루, 1주일의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사용자들은 일손이 부족할 때 연장근무 수당을 주지 않고도 하루 12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인력 충원의 필요가 줄어든다.

만약 정부가 탄력근무제 단위 기간을 연장하면 일자리 창출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노동자들은 더 불안정한 조건에 내몰릴 것이다.

공염불

실제로 이미 현장에서는 유연근무제 도입, 교대제 개악, 외주화 확대와 노동강도 강화 등의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주 52시간 상한제로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300인 이상 사업장 3627곳을 조사한 결과 단 22퍼센트만이 신규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그 규모도 고작 2만 9000명에 그쳤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개 일자리 만들겠다”던 문재인의 공약은 공염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인력 확충" 8월 20일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결의대회 ⓒ출처 금융노조

인력 충원 없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답한 곳이 35퍼센트, 교대제 등 근무형태를 변경하겠다고 답한 곳이 17퍼센트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런 기업주들의 선호를 보면, 유연근무제가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노동운동 내 일각의 주장은 착각일 뿐이다.

“탄력적 노동시간”, “자율 출퇴근제” 같은 제도는 빡빡한 장시간 노동의 반대말이 아니다. 기업주들에게 유연성은 적은 비용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노동을 배치하고, 복잡한 교대제를 도입하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더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자리, 삶의 질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열망과 거리가 멀다.

지금 현장 곳곳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그 조건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금융노조, 보건의료 노동조합들,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은 하반기 임단투의 핵심 요구로 노동시간 단축과 인력 확충을 내걸었다. 인천공항 보안검색 분야에서 추진된 12조 8교대제로의 개편에서 보듯, 교대제 개악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금속·서비스 부문에서도 유연근무제,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등이 쟁점이다.

이런 투쟁이 노동조건의 실질적 개선과 인력 확충으로 이어지려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조건 하락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압력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단위 사업장·부문으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미 현장 곳곳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시도가 잇따르는 지금, 정부와 집권당은 신속하게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등 법 개악을 밀어붙일 수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에 기대하기보다 정부를 압박할 투쟁을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