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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사법 농단을 통해서 보다:
3권 분립이 민주주의의 정수인가?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양승태 사법부가 자행한 사법 농단 수사에 대해 잇달아 영장이 기각됐다. 현 문재인 정부와 동행하는 김명수 사법부도 법원 권력을 유지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으로 드러난 권력 3부 간 삼각 거래는 다음과 같다.

법원은 뒷거래와 음모적 공작을 통해 최고 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확고히 하려 했던 듯하다. 대법원의 기능을 분할해 별도로 상고법원을 세우면 대법관급 고위 판사직도 늘어나고, 경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도 더 쉽다고 본 것이다. 그리되면 장차 법원 고위 판사들의 지배계급 내 위상이 높아질 터였다.

법원은 청와대가 여당을 움직여 법원의 바람대로 국회에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길 바랐다. 이를 위해 법원은 우파 정부의 안정적 통치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사법권을 행사했다. 아마 당시 여당 실세들은 법원의 청탁을 수용하려는 청와대에 협조함으로써, 이후 총선 공천과 후계 구도, 지역구 예산 등에서 이득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거래가 가능한 것은 양승태 법원의 이해관계와 나머지 국가기관들, 그리고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이해관계인즉,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저항에 맞서 공통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이해관계이다. 본질적으로 양승태 추문은 권력 3부가 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해 손잡고 거래한 사건인 것이다.

법원은 노동자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고통과 미래를 거래 품목으로 삼았다: 일제 강제 징용·동원의 피해자들, 유신 독재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동자, KTX 노동자 등. 그 결과 억울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악랄한 판결들이 나왔다. 일제 강제 징용자들의 국가 배상 요구 판결을 미루는 판결에는 박근혜 정부의 법무장관 황교안과 박근혜의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도 연루됐다.(박근혜가 몰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법원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공통분모(계급 이익)를 찾아 청와대에 제시한 것이다. 독재 정권 때처럼 판사들이 정치권력에 굴복해 자신의 양심과 이익에 반하는 판결들을 갖다 바친 게 아니다. 3권 분립을 훼손한 게 사건의 진정한 성격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분권의 기반 위에서 서로의 권한을 교환하려 했다.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도 잘못되기가 쉽다. 양승태의 농단 문제를 사법부 독립(또는 중립)을 해친 문제로 보면, 처방은 3권 분립론에 입각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더 강화하자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수사를 법원이 ‘합법적’으로 방해하고 있는데, 이 사태야말로 사법부의 독립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다. 법원은 사법 농단 피해자들의 항의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급기야 비밀 문서를 다 파기한 뒤에야 압수수색을 허가했다.

이처럼 법원은 지배계급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고,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가 강화된 상황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성(또는 중립성)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적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다.(이 점은 촛불 운동 무력 진압을 모의한 군부에 정치적 중립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너 서클

사법 농단 관련 문건을 보면,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받자 당시 경찰의 청와대 방향 행진 금지 통고에 법원이 집행정지처분을 내린 게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또한 ‘중산층’(‘여론 주도층’의 다른 말)의 성향은 “대북 문제를 제외하고 정치는 진보, 경제/노동은 보수”라며 판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내용도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박근혜 퇴진 운동 국면에서 지배계급이 어떤 기조와 방식으로 대중의 분노와 저항을 달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자칭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 염원을 받아 안는 방식 — 어느 요구는 실행하고 어느 요구는 묵살하는가, 어디에서 우선회가 시작됐는가, 어디에서 지지층을 잃고 있는가 등 — 과 당시 법원의 판단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국정 기조와 당시 법원의 판결 가이드라인이 무척 닮았으니까 말이다.

이는 법원(특히 상급으로 갈수록)의 판결이 (단지 법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 내 ‘여론’과 함께 계급 간 세력균형을 (계급 지배 안정이라는 전략적 목적 아래 정교하게) 고려해 내려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법을 개정해 줄 국회를 움직이려고 (즉, 입법부의 협조를 얻으려고) 법원이 청와대에 로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매우 우파적인 정권 아래서는 대통령 권력이 집권 여당을 움직일 효과적인 지렛대였을 것이다.

구 여권 세력(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독재 정권의 후신 정당들로, 국가 기구들을 수십 년 동안 장악해 온 지배계급의 제1선호 정당이다.

선출직 정치인, 행정관료, 자본가, 언론인, 판사 등이 수십 년 동안 다져 온 네트워크는 적폐의 원천이다. 말만 무성하고 알맹이도 없는 문재인 개혁, 예컨대 시급 7530원인 최저임금(그나마 법 개악으로 월 총액은 낮춰 버린)으로 나라가 망한다며 이들이 어깃장을 놓는 걸 보라.(시급 8350원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문제는 이런 네트워크에 민주당 정치인, 친민주당계 관료, 언론인, 지식인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그 네트워크의 마디를 이루는 좌장들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친민주당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도 법원이 구 여권의 부패를 감싸는 것을 한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국가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정당들은 대체로 지배계급 정당들이다. 그러니 3권 분립이라는 것도 지배계급 내 권력 분점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대통령제 하에서 의회 다수당과 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일치한다면,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기가 어렵다.(사실 견제할 의지나 있겠는가?) 내각제는 다수당과 내각이 일치하므로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경우에 권력 분립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면, 대통령제 하에서는 야당이 의회 다수당인 경우가 이상적일 것이다. 우파 정부 하에서는 개혁파 야당이 다수당인 편이 나을 것이다.(그렇지 않다고 해서 저항과 개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1970년에 집권한 칠레의 좌파 정부(아옌데 대통령) 사례를 보자. 당시 군부를 자기 편으로 두고 있는 지배계급/우파 야당은 좌파 정부의 작은 개혁에조차 딴죽을 걸었다. 이럴 때 지배계급 언론이 ‘여론’이라며 대안으로 내놓은 게 바로 ‘여야 협치’였다. 기득권을 침해하는 개혁은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결국 아옌데 정부가 우파의 공격에 직면해 헌법 존중을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국가 밖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산업을 통제하고 정당방위를 위해 무장하려 했다. 그러나 아옌데 정부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을 막음으로써 사실상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 버렸다. 결국 미국이 후원한 피노체트 장군(아옌데가 임명함)의 군부 쿠데타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아옌데 정부의 요인들은 대부분 살해당했다. 노동조합과 좌파 운동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다. 그 여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됐다.

요즘 사례를 들면, 영국에서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총리가 돼 실질적 개혁을 추진할 경우, 노동당 우파를 포함해 공식 정당들을 가로지르는 반()개혁 연합이 등장할 것이다.

요컨대, 제도 개선이나 정권 교체보다 계급 갈등과 투쟁이 더 중요하다. 서로 다른 계급들 사이의 대결이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다.(부차적이지만 지배계급 내 분파 간의 갈등도 주목할 요소다.) 아무리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해도 법원은 물론이고 군부나 경찰 등이 바뀔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야당다운 야당은 공식 정치 밖에서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노동계급 기반의 급진 좌파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는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같은 노동자 정당들도 집권한다. 그러나 그 집권은 그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통치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 정당들이 집권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움직여 실질적 개혁을 이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는 시기에는 특히 더 그렇다. 결국 순응하거나 칠레의 아옌데처럼 제거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두고 레닌은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좌파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정치 개혁을 크게 중시할 수는 없다. 물론 지역주의를 거스르는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조처는 노동계급의 대표자를 늘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그것으로는 노동계급에 유리한 개혁의 시행을 보증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와 권력 분립론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사회계약론에 대해

국가기관 내 권력분립론은 17세기 유물론 철학자 토마스 홉스로 거슬러 간다. 권력 분립론은 영국 혁명 직후인 17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존 로크, 18세기 미국 혁명을 지켜봤던 몽테스키외 등에 의해서 (각자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의 독립 국가인 미국의 국가 구조에 반영됐다.

이 철학자들은 사회계약론자들이기도 했는데, 당시의 신흥 부르주아지를 대변했다. 권력 분립과 사회계약론은 왕권신수설에 맞서는 것이었다.

이 사고의 출발점은 ‘재산을 소유한 개인’들이다. 이들이 보장받아야 할 ‘천부인권’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귀족들과 달리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재산에 대한 권리(소유·처분권)이다.

개인들이 모이면 곧 사회라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국가도 ’각 개인들’이 사회 유지를 위해 서로 합의 하에 구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사회계약). 사회계약적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 행사(상품 교환)를 각자에게 중립적으로 보장하고 장려할 존재이다. 이 국가는 계약 당사자들에게 중립적(“공정”)이어야 하므로 기본권 침해를 하지 말아야 하고 되도록 개입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권력을 분산시켜 내부적으로 서로 견제하게 해야 한다. 재산을 소유한 시민들이 참정권을 통해 견제하거나 직접 그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이들에게 헌법은 이 사회계약의 계약서인 셈이다.)

이는 자본주의 정치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자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3권 분립 사상이 현실의 국가들을 만들어 낸 건 아니다. 반대로 당시 성장하던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투쟁을 벌이며 쌓은 역사적 경험의 영향을 받았다.

봉건 군주제(왕정) 하에서 부상한 신흥 부르주아지는 지배계급이 되기 전에 (일부 귀족과 동맹해) 군주(왕)에게서 자신들의 권력·이익·생명을 보호할 권리를 얻어 내려 했고 이를 위해 왕권을 억제하는 투쟁도 벌였다.

가령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인신 구속을 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왕이 가진 권력의 일부(자의적 구속·고문 등 군주에게 속한 자의적 사법권과 징세권)를 박탈하거나 제약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부르주아지의 정치투쟁은 대체로 왕권에서 사법권 일부와 입법권 일부를 떼어 갖는 식으로 벌어졌다. 이는 의회가 입법을 명분으로 왕의 통치에 간섭하는 형태였다(입헌군주제).

17~18세기 부르주아 혁명들에서 부르주아지를 대표한 직업 정치인들이 대체로 법률가 출신인 것도 이와 연관돼 있을 것이다. 또한 영국 혁명 이후 권력 분립론을 발전시킨 로크가 입법권과 집행권(행정부)의 분리를 강조한 것이나, 로크와 몽테스키외가 삼권 중 입법권을 중점에 둔 것 등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권력 분립은 전(前)자본주의적 왕권을 제약하고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진보였다. 그러나 의회는 사실 말만 많은 곳이지, 국가 업무가 실제로 집행되는 곳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19세기 후반 이후 노동계급의 압력에 떠밀려서야 투표권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단계적으로 그랬다.

그러면서 보통선거권 허용이 무해한 것이 되게 하려고 그들은 꾸준히 애썼다. 그들은 선출되는 기관이 주민의 다수인 평범한 대중에게 장악될까 봐 두려웠다. 미국의 정치 체제(국가 형태)를 규정한 제헌헌법의 기초를 놓았고 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제임스 매디슨은 3권 분립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부르주아 협력자들의 동의를 얻어 냈다.평범한 대중의 대변자들이 입법권을 쥔 (하원)의회에서 다수가 될 수도 있으니, 하원이 통과시킨 법률을 추가 심사하는 상원(의회)을 만들고, 집행부를 지휘하는 대통령은 간선으로 선출하게 했으며, 대통령에게 법률안 거부권도 부여했다. 대법원에는 위헌법률심사권을 줬다. 하원은 대통령 탄핵권이 있지만 탄핵의 최종 결정은 상원이 한다.

물론 의회주의자들은 반대의 경우도 두려워했다. 프랑스에서 두 명의(삼촌-조카)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행정부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선출된 군주’가 될까 봐 의회에 예산 편성권이나 전쟁 개시권 같은 견제 권한을 부여했다.(한국 국회는 예산 심의권만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입법부와 행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라고 보는 건 공식 정치가 정당 정치인 현실에서 지나치게 순진한 견해일 것이다. 특히 두 제국주의적 부자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미국 의회는 더더욱 민주주의의 진전과 아무 상관도 없다.

국가의 중립성?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계약론의 가정과 달리 사회 속에 개인들을 자리매김하며, 국가는 (계급 사회의 산물로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려고 만든 무장한 정치조직이라고 본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맞게 탄생되거나 재구성된다. 국가기구 전체가 자국 경제의 성공에 의존한다. 이윤율이 높고 자본 축적이 잘 될 때 국가의 재정 능력을 좌우하는 조세 수입도 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반적인 이윤율의 위기 속에서 개개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이유다. 정권 인수 전략으로는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 회복 노력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한편 세계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각국이 관할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운 좋게 성장하면 국가도 커지고 각 국가기구의 비대화·관료화, 기능과 기구의 분화 등이 일어난다.

그래서 개인들이나 분권화된 국가기관들을 파편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지배계급의 정치조직으로서 국가의 중앙집권적 성격에서 출발해 각 국가기관들을 설명하는 것이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위기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미국 헌법은 전쟁 개시와 대내외 선전포고를 연방 의회의 권한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에서 의회는 선전포고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은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시작됐다.

미국 의회는 자신들의 권한이 침해당했다고 투덜거렸지만 이 전쟁들을 지지했고 그래서 전쟁 비용도 추인해 줬다. 이후 정부의 이런 행동을 제약하는 여러 법안들이 생겨났지만 추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통령의 핵 발사 명령권에는 법적으로 의회의 개입 권한이 없다. 오직 임명직 관료들이 잘 ‘견제해’ 주길 바랄 뿐이다!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비상대권’ 문제도 살펴보자. 내우·외환·천재지변 등의 상황에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하고 법률을 공포하고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물론 헌법 조항상으로는 사후에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계엄 실행 상황이라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조짐이 보이는 경우 국회는 소집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계엄 선포 등 비상대권을 국회에서 해제시킬 수 있는 정당이 있다면, 그것은 군대와 관료, 기성 언론 등에 훨씬 더 깊게 오래 뿌리내린 전통적인 지배계급 정당일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그런 정당들에 속하지 않은 대통령이 그런 정당들을 거슬러 비상대권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리라 가정하기는 힘들다. 전시 계엄이라면 모든 기성 정당들이 찬성할 테고 말이다.

반면, 전통적 지배계급 정당 소속 대통령이 계엄 같은 비상대권을 행사했다면, 다른 변수가 없는 한 국가기구 안에서 이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위기가 너무 심각해 지배계급이 파시스트(중간계급을 기반으로 한다)에게 정권을 양도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파시스트들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건 독일 나치당 사례에서 보듯 헌정 질서 안에서도 가능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실제 운영에서 3권 분립은 허상에 가깝고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진보파 정치인들이 기존 정치 구조 안에서 쌓아 놓은 명망도 아무 소용이 없다. 민주주의는 원래 “민중의 지배”라는 뜻인데, 이에 비춰 볼 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전혀 민주적이지가 않다. 노동계급에게는 자본가들의 독재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이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어쩔 수 없이 허용한다는 점에서만 독재나 파시즘보다 진보적이다.(그조차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기구가 대중 저항에 밀려 양보한다면, 그것은 저항의 기세가 아주 거세서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지배계급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이거나 그보다 더 나아가 군대의 사병이나 말단 공무원·경찰 등이 저항에 가담해 국가가 마비되는 혁명적 상황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주류 정치학계의 권력분립론은 선거로 여야 정권 교체가 가능한 ‘다당제’도 권력 분립의 한 형태로 본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공무원)의 신분과 독립성 보장(국가 행정의 안정성·지속성 보장), 지방자치제도(지방 ‘분권’화), 여론(을 반영하는 언론의 자유) 등도 권력 분립(견제) 기능으로 본다.

오히려 국가기구 사이에 얽히고설킨 ‘견제와 균형’의 구조는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 개혁을 추진하려는 사람(개혁주의자)들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과속 방지턱 구실을 한다. 상호 견제 과정을 통과하려면, 오히려 양측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과 인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지배자들끼리의 견제는 결국 모종의 절충과 합의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그 결과, 선출된 의원들은 국가적 업무의 집행에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늘날 의회에서 다루던 많은 문제가 법정에서 해결되는 것(“정치의 사법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대해진 관료 기구 속에서 고위 관료, 법원, 검찰, 경찰, 군부, 각종 정보기관이 실권을 행사한다. 때때로 개혁에 저항하면서 말이다.(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는 “사법의 정치화”로 달리 볼 수도 있다.)

국가기구 내 선출되지 않은 부분은 공식·비공식(지배계급 인맥 네트워크 등을 통한 추천, 로비, 낙하산 등) 임명권자들에게만 책임을 진다. 권력 분립은 자본주의 국가의 특정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책임지기(떠넘기기)를 할 뿐, 피억압 대중에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점이 가령 촛불 무력 진압 모의를 군부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한다고 해도 그들의 반동성이 억제될 수 없는 이유다.

누구에게 책임지는가

권력 분립 이론과 지향은 국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착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국가의 실제 운영에서 3권 분립은 허상에 가깝고,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런 진단에 따른 적절한 처방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계급성과 3권 분립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직시하는 일일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정상 상태를 추구하며 그에 적응하려 애쓰는 개혁주의 전략의 부적절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성 정치 질서 안에서 단순히 인적 청산·교체를 하는 것만으로는 국가를 개혁에 이용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물론 촛불 운동이 바란 인적 적폐 청산은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대중이 요구한 것으로, 정당한 응징이다. 그 응징이 성공하면 지배계급에 경고가 될 것이며, 세력균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러나 대중 저항에 직면했을 때 국가의 태도 변화를 사람의 교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국가의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 박근혜의 검찰·경찰, 박근혜의 법원, 박근혜에게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봤던 보수 언론들이 일제히 돌변한 2016년 11월에 박근혜는 아직 직무 수행 중이었다. 집권당은 분열해 일부가 국회 탄핵에 합류했다. 대법원보다 더 박근혜와 유착했던 헌재가 박근혜를 만장일치로 파면했다.

그러나 비슷한 때 군부 중심으로 친박 친위 쿠데타 모의도 시작됐다. 이 논의는 맞불 집회를 후원하고 기회를 엿보며 헌재 탄핵 당일까지도 이어졌던 듯하다.

아래로부터 저항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쿠데타 모의도 모의로 끝났고, 지배계급이 운동에 양보했다. 박근혜를 속죄양으로 내주고 운동을 구슬려 정치 상황을 다시 안정시킬 수 있어 보였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선택을 피했던 것이다.(현재까지는 그들로서는 현명한 선택이 됐다.)

촛불 운동이 더 나아가려고 했다면, 운동은 반동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운동이 더 나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혁명가들을 모험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모든 전진은 역풍을 부르기 마련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낳는다. 그리고 일정 수준에서 자제한 그런 계급 간 평화의 대가는 무엇인가? 문재인은 1년 만에 촛불 염원을 배신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탓에 우파의 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문재인과의 협력을 통한 개혁을 여전히 기대하는 운동 내 온건 개혁주의가 이 상황에 일조해 왔다. 그래서 지금 개혁주의가 성장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종합하면, 지속되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는 기성 정치체제 안에서 추구하는 개혁은 아무리 급진적이라도 성공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기구는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없다.

파리 코뮌 이래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혁명적 상황에서는 작업장에서 선출돼 언제든지 작업장 동료들에 의해 소환될 수 있고, (자본주의국가의 의회와 달리) 선출한 계급 대중에게 책임지는 형태의 노동자 권력 기관(의 맹아)들이 거듭 등장했다. 그 기관들의 선출·집행·소환은 모두 계급의 의지를 나타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노동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민주화로 등장할 수 없다. 자본가 계급의 무장한 정치조직인 기존 국가에 맞서 그것을 해체시켜야만 노동계급이 승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배계급이 효과적으로 저항(심지어 저항을 폭력적으로 분쇄)할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혁명적 전망과 조직화로 이 싸움을 이끌 정당은 그런 싸움이 본격적인 정치 일정에 오르기 전부터 건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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