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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기아차 비정규직 프라스틱 공장 점거 파업이 아쉽게 중단되다

개정판은 원래 기사에서 몇몇 사실관계를 수정했다.

지난 9월 4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파업이 6일 만에 중단됐다.

이 점거 파업은 강제 전적 위기에 놓인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지난 8월 30일 시작됐다. 이로 인해 완성차 생산 일부가 중단됐고 범퍼 없이 차가 생산됐다. 원청 사측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측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분리(2017년 5월) 이후 비정규직지회 탄압을 강화하고 파업 때마다 원청 관리자들을 동원해 파업 파괴 행위를 일삼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호하고 용기 있게 점거에 나서 원청 사측에 타격을 가한 것은 의미 있는 전진이었다.

특히 점거 파업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에 적잖이 기대를 걸고 있다가 실망해 투쟁에 나선 최근 노동자 투쟁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점거 파업은 손에 쥐는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중단됐다. 김수억 비정규직지회 집행부는 “강제 전적을 중단하고 3주체(기아차 사측,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점거 파업을 종료시켰다.

강제 전적

김수억 집행부는 이번 파업의 애초 목표 중 하나인 불법파견 직접 교섭 요구를 쟁취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강제 전적 관련해서는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합의 내용이 입에서 입으로 알려졌을 때 점거 파업 참가자들의 상당수도 그렇게 생각했다.(필자도 그랬다.)

그러나 막상 나중에야 공개된 회의록를 보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문제가 많았다. 3주체 협의를 한다는 회의록에 인사권자인 사측 서명이 빠져 있다. 또, ‘강제 전적 중단’도 협의를 진행할 동안만 전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업체 전적에 관한 3주체 협의를 진행하며, 협의 기간 중 전적에 동의하지 않은 비정규직 조합원에 대해서는 전적을 진행하지 않는다.”

요컨대 강제 전적 관련해서도 변변한 양보를 얻지 못한 채 ‘일단 점거파업을 풀고 협상하자’는 합의인 셈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용자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합의 이후 기아차 정규직노조(기아차지부 화성지회)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 사태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협의 내용을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강제하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측이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일부 보수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핑계 삼아 회의록을 지키지 않아도 강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정규직지회는 합의 다음날 발행한 노보에서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특별채용을 신속히 진행하고 정규직 단협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비정규직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기존 방식 그대로 강제 전적에 따른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위기에 내몰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파업 종료 이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당황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민주적 절차

김수억 집행부는 점거 파업을 종료하면서 파업 참여 조합원들에게 합의안(회의록)을 공개하고 향후 계획을 결정하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회의록이 작성되기 전에 대의원과 조합원 간담회를 진행해 의견 수렴을 한다고 했지만 이것은 집행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성격이었다. 파업에 참여한 대의원 대부분과 현장 조합원 일부는 잠정 합의 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안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수억 집행부는 ‘원청 관리자들이 보고 있다,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회의록 작성 후 다 설명하겠다’며 전체 토론을 거부하고 뒤로 미뤘다.

그러나 점거 농성장에서 관리자들을 쫓아내고 토론을 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투쟁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파벌적으로 집행부를 흠집내려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향후 계획을 책임 있게 결정하는 과정에서야말로 그들의 본심도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에 실망한 일부 조합원들은 안타깝게도 회의록이 나오기도 전에 농성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때 필자는 합의안에 대한 정확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요구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강제 전적 중단은 일정 성과라고 본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회의록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수억 집행부가 민주적인 토론을 거부한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점거 중단 지지로 비춰 파업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줬다. 이는 분명 실수였다.

그리고 3~4시간 후 김수억 집행부는 회의록이 작성됐다며 집회를 소집했지만, 집회가 끝날 때까지 회의록을 공개하지도 토론에 부치지도 않았다. 필자가 회의록 공개를 요구한 후에야 농성장을 빠져 나가는 조합원들 뒤통수에 대고 형식적으로 합의안을 낭독했을 뿐이다.

파업하는 동안에도 김수억 집행부는 파업 수위와 전술을 조합원 토론 없이 일방으로 정하곤 했다. 식당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함께 전면에 내걸고 투쟁하자고 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강제 전적 대상 업체 전체가 전면파업 하는 것으로 수위를 높였지만(나머지는 6시간), 곧이어 전면파업을 플라스틱·도장부로 좁히기도 했다. 일부 구간에 대한 대체 인력 투입도 불법 시비를 이유로 묵인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파업 기간의 쟁의 전술 결정을 자신에게 위임해 달라고 한다. 투쟁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좌파 지도부일지라도 이런 비민주적 권한 집중은 투쟁을 확대하는 방법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현장 조합원들의 잠재력을 제약할 뿐이다.

중재자

이번 비정규직 프라스틱 공장 점거 파업은 여러 어려운 조건에서 진행됐다. 이번 투쟁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점거 파업을 둘러싼 객관적 조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 분리 및 파장 등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세계경제 위기의 장기화와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 관세 부과 예고 때문에 사측은 이윤 압박을 적잖게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사측이 강경해져 웬만한 투쟁으로 양보를 따내기가 쉽지 않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우향우하는 정치 상황도 사측에게 힘을 줬을 것이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호한 점거 파업과 함께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1년 반 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문제 삼으며 내친 상황은 사측의 이간질이 파고 들기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

사측은 비정규직지회를 문제 덩어리 취급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비정규직지회의 불법 파업에 맞서 우리 일터를 지키자”고 이간질했다. 또, “신규 채용이 계속될 예정인데 노동강도가 센 조립 공장에 오지 않으려고 파업을 한다”며 한시라도 빨리 조립 공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그러나 정규직의 노동강도 강화를 압박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사측이 추진하는 공정 축소와 인원 감축이다. 사측은 전환배치로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이 해소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측이 전환배치를 맘껏 하도록 놔두면 관리자들의 작업장 통제가 강화돼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연대가 중요한 상황이었지만 정규직지부와 화성지회 집행부는 비정규직지회의 점거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다. 그들은 사측의 폭력을 비판했지만, 비정규직지회를 향해서도 파업 중단을 압박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손잡고 사측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게 아니라, 사측과 비정규직지회 사이에서 (각각 강제 전적과 점거 파업을 중단하고 3주체 협의를 하라고) 중재하는 것이 정규직지부와 화성지회 집행부의 입장이었다.

정규직의 연대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면 정규직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지지와 연대를 확대해야 했다. 그래야 정규직노조 지도부에게 압력을 형성해 (어정쩡한 중재자 입장이 아니라) 점거 파업을 방어하고 연대하는 실질적 조처를 내리도록 압박할 수 있다. 또, 정규직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지가 확대돼야 사측도 함부로 점거 농성자들을 탄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지지와 연대가 점거 파업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규직 활동가들이 만든 기아차비정규직 없는 일터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현장에서 연대를 조직하기보다 자신들의 명망과 권위에 의지해 정규직지부와 지회 집행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데 주력했다. 전직 임원들의 정규직노조 지도부 면담이나 기자회견 등이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런 상층 활동은 의미가 없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활용해 기층 조합원들을 사이에서 지지와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동본부는 이런 활동을 위한 활력도 방향성도 부족했다.

노동자연대 기아차모임 회원들은 운동본부에서 공동의 활동을 하면서도 독자적으로 기층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모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리플릿을 발행해서 비정규직지회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고 사측의 이간질 논리를 날카롭게 논박해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지지 서명을 받고 모금도 했는데 짧은 시간에 60만 원가량을 모았다.

그러나 이것은 화성공장 규모로 볼 때 미약한 수준인데, 부끄럽게도 지지 운동의 출발이 너무 늦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 파업에 들어간 후에야 부랴부랴 연대를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불법파견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강제 전적 문제도 전부터 예고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년 반 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분리 이후 이를 돌아보고 연대에 필요한 주장을 꾸준히 내놓아야 했다.

맺으며

비정규직 플라스틱 공장 점거 파업은 손에 잡히는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중단됐다. 점거 농성자들이 보여 준 용기와 투지를 생각하면 특히 아쉬움이 크다. 물론 요구 성취의 불만족과 별개로 점거 농성을 지속할 수 있었는가는 하나의 쟁점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조합원들의 민주적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했다. 그래야 투쟁 계획을 책임 있게 함께 결정하고 결속을 유지하면서 전진해 나아갈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가 효과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것도 극복해야 할 점인데, 이것은 결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제 사측은 시간 끌기를 하며 공격 시점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이에 맞서 현장을 다시 조직하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가 분명하다. 그 출발은 이번 파업에 대한 진지하고 반성적인 평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필자 또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