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사측이 주 52시간제 시행을 핑계로 기아차 화성공장 현대그린푸드 소속 식당 노동자들의 연봉을 자그마치 1500만 원 삭감하려 한다.

사측은 지난 몇 년간 “식당 노동자 임금이 5900만 원이 넘는다”고 악의적으로 주장하면서 임금 삭감을 시도해 왔다. 사측은 주간 2교대제를 시행하면서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은 보전해 줬지만, 식당 노동자들만 배제한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식당 노동자들의 성과급도 대폭 낮게 책정했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식당 노동을 비하하고 허드렛 일 정도로 취급하면서, 이 노동자들을 더한층 저임금으로 내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당 노동자들은 주 70~80시간이라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하고서야 연봉 59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각종 공상, 산재 환자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식당 노동자들이 연봉 5900만 원을 받는 게 왜 문제인가? “우리가 밥을 하지 않으면 컨베이어 타는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식당 노동자들의 주장처럼 이들도 자동차를 만드는 데서 매일 매일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조리실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도 매우 높다.

따라서 식당 노동자들이 ‘임금 보전’을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그러나 사측은 주 52시간 시행으로 이런 문제들을 완화하려 하지는 않은 채, 근무형태를 바꿔 임금을 대폭 삭감하려 한다. 출·퇴근 시간을 대폭 조정해 휴게시간을 없애고 임금을 삭감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합의

유감스럽게도 기아차 정규직 노조 지도부는 그동안 식당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해 왔다.

2007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 통합 이후에도 정규직 집행부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좌파라고 알려졌던 김성락 집행부는 오히려 사측과 함께 “연봉 5900만 원 받는 식당 노동자의 과도한 요구로 노동조합과 현장이 혼란스럽다”고 비난하며, 비정규직 노조를 내쫓는 명분으로 삼았다. 김성락 집행부의 이런 잘못 덕분에 사측은 자신감을 갖고 식당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다.

김성락 집행부 이후 등장한 강상호, 윤민희 우파 집행부도 식사의 질 개선을 핑계로 식당 노동자들의 전환 배치와 단기 계약직 충원 등에 합의해 준 바 있다. 그러나 식사 질을 개선하려면 식재료비를 대폭 올리고, 외주화를 중단하고 직영화해야 한다. 학교 급식도 외주 민영화를 했다가 여러 문제점들이 지속돼 직영운영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런데 사측의 공격에 맞서 싸워야 하는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집행부도 아쉬운 모습을 보여 왔다.

올해 6월 강제 전적 반대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시작된 프라스틱 공장 점거 파업 당시 식당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반대를 함께 내걸고 싸울 것을 요청했지만 김수억 집행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2일 김수억 집행부는 식당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 내용이 빠진 ‘근무형태 변경 시범운영’을 사측과 합의했다.

식당 대의원 상당수가 “회사가 임금 보전을 하지 않는다면 시범운영을 중단하고, 조기출근·특근 거부 투쟁 등을 조직하자”고 요구했지만, 김수억 집행부는 조합원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김수억 집행부는 사측과 잠정 합의하고 12월 20일 총회를 소집했다. 조합원 설명회를 했지만 사측과 비공개로 작성한 회의록이기 때문에 배포할 수 없다며 구두로 설명을 했다. 내용의 핵심은 ‘특근 교통비 1만 3800원 지급, 시범운영 전 근무월로 퇴직금 중간정산, 극히 미미한 수당 적용’ 등이다. 식당 대의원들은 임금 1500만 원이 삭감되는데 이런 안을 임금 보전이라고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대의원들은 보잘것없는 합의의 실상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자 김수억 지회장에게 회의록을 공개 배포하고 총회를 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프라스틱 공장 점거파업 때도 조합원들에게 최종 합의한 회의록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비민주적으로 파업을 종료한 일이 있다.

대의원들은 부당한 투표라며 조합원들에게 투표 거부를 호소했고, 조합원 214명 중 98명만이 투표에 참가해 총회를 무산시켰다. 김수억 지회장이 ‘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며 겁박으로 들릴 만한 얘기를 했고, 사측이 투표 참여를 독려했는데도 투표가 무산된 것이다.

제대로 된 투쟁

기아차 화성공장의 식당 노동자들은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가 있다. 2006년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해 강력한 투쟁으로 화성 공장 전체의 배식을 중단시킬 수 있는 힘을 보여 줬고, 이에 놀란 기아차 사측은 적지 않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식당 대의원 상당수는 근무형태 변경 시범운영 기간에 현대그린푸드 본사 팻말 시위와 사장 면담 항의 방문, 그리고 노동부 항의 방문을 하며 임금 보전 투쟁을 지속했다. 투쟁에 압력을 받은 노동부 경기지청이 현장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대의원들은 총회 무산 뒤에도 임금 보전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세도 나쁘지 않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하락하며 위기를 겪고 있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조를 조직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차 울산공장의 현대그린푸드 노동자들도 노조를 설립하고 “52시간 시행에 따른 임금 보전, 인원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12월 14일에는 찬성률 88퍼센트로 파업을 결의했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연대를 모색하고 공동투쟁에 나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규직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식당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막아 내도록 지지와 연대를 해야 한다. 식당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막아 내는 것이 앞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을 향한 임금 삭감 공격에 맞서는 데도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