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율 하락 ― 왼쪽의 대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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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주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긍정평가도가 50퍼센트대 초반으로 취임 후 최하를 기록했다. 한 조사에서는 아예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초 80퍼센트까지 갔던 지지율이 넉 달 만에 폭락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수행 부정평가도 함께 늘었다. 지지가 줄어든 것뿐 아니라 반감도 커진 것이다.
청와대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9월 7일 이렇게 말했다.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
사실 청와대는 8월부터 심각하게 생각해 왔다. 4월에 약속했던 가을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자더니 결국 9월 4일 김정은에게 특사를 보내어 회담을 추석 직전으로 앞당겼다. 이른바 ‘추석 민심’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북미간 중재도 고려했을 것이다. 때마침 트럼프도 11월 초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9월 6일에는 대통령 주재로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대선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로 내세웠던 주장이다. 당시 대선 캠프에 포용국가위원회를 만들었고, (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병준보다 먼저)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성경륭 교수가 이를 이끌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과 지지층 이탈의 연계 조짐이 보이자,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민주당의 새 당대표 이해찬,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까지 모두 공급 확대 카드를 꺼냈다. 국토부는 택지 확보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원인
문재인 지지율 하락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의 불만이 작용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사실 문재인은 노동정책에서부터 급속히 우선회했다. 특히 설비투자가 줄고 고용지표가 악화했다.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올해 3월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빚어진 일자리 위기에 정부 개입을 거부한 것은 문재인 본인이었다. 하지만 5월 이후 문재인은 ‘앗 뜨거’ 하는 태도로 삼성과 엘지 등에 투자 확대를 요청했고, 줬다 뺐는 최저임금 삭감 개악을 강행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에서도 인기 있는 구호였고,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은 부족했어도 촛불 염원의 일부 실현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상된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적용된 지 겨우 다섯 달 만에 말짱 도루묵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뒤로도 문재인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추진하다가 당시 야당 지지층이 강하게 반대한 의료 영리화 정책을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추진하려 한다. 국민연금 개악 추진도 반발을 사고 있다. ‘포용 국가’의 이름으로 평생 복지 운운한 것은 국민연금 개악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노조 인정 등 간단한 노동적폐 청산조차 거부했다. 삼성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한 단죄 등도 속시원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개각에서도 기업과 노동정책을 다루는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보수적인 친기업 관료들을 장관으로 지명했다. 이들은 진선미, 유은혜 등과 달리 인사청문회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고, 업무를 개시하면 경제부총리 김동연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김동연과 대립한다는 장하성은 결코 친노동 개혁파가 아니다. 이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김동연과 장하성이 보수 대 진보 대결을 벌인다는 프레임은 웃기는 허수아비 놀음이다. 처음부터 우파에게 유리하다.
물론 부차적으로 여권의 분열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가령 친문 핵심 그룹이라던 전해철(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 후임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냄)이 보수적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 등과 손잡고 이재명 경기지사를 찍어내려 한 것이 그런 효과를 줬을 것이다.
특히 적폐 청산 등을 내세워 지지를 받는 정부에서 대통령 측근 실세가 상대적 개혁 인사들을 몰아내는 모양새는 우파에게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를 줬을 것이다.
장차 여권 내분을 사전에 막고 김경수 등 친문 후계 구도 구축을 위한 것이었을 텐데, 효과는 거꾸로 나타난 셈이다.
우파 사기 재장전
문재인이 우선회하자 지지율이 하락하고, 그래서 좌측 깜빡이 켜는 시늉을 하는 것은 촛불 염원과 우파 통치 9년 적폐 사이에 문재인 정부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그토록 높았던 지지율은 개혁 염원 때문이지 문재인의 ‘혁신 성장’ 따위를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촛불 운동은 전혀 혁명적이지는 않았어도 꽤 급진적인 개혁을 바랐다. 어쨌거나 정권 교체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주의의 헤게모니 탓에 정부의 개혁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개혁 조처들이 순전히 현 여권 덕분이라거나 자신들의 무임승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의 우선회가 왼쪽으로의 이탈을 낳은 것이다. 몇몇 조사에서 문재인 지지 이탈층의 다수가 20대 진보적 청년층이라고 한다. 또한 문재인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유일하게 정의당만 지지율이 올랐다. 늘어난 정의당 지지층 안에서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은 대폭 낮아졌다.
문재인의 민주당은 한국 지배계급의 제2선호 정당으로, 자신들이 전통적 여당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지배계급의 이익을 오히려 더 잘 보호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는 정당이다. 그래서 그들 자신이 적폐 구조와 연결돼 있고, 대중이 바라는 적폐 청산을 전혀 일관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이 초기에 위세를 떨치며 구 여권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간절한 개혁 염원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우선회의 결과 지지율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이는 우파에게 사기 재장전의 계기가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는 4월 남북정상회담 때는 만찬에 야당 대표들을 안 불렀다고 불평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고 동행 초대를 거절했다.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양보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김학용(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추가 개악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또한 사법 농단이 확연히 드러났는데도 법원은 대놓고 증거 인멸 위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판결을 내린다.
노조 파괴 공작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이상훈의 구속영장은 또 기각됐다. 삼성은 이재용 구속 시점에서 약속했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약속을 최근에 뒤집었다.
〈중앙일보〉는 이런 주문을 했다. “불신을 씻으려면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안는 협치, 진영을 초월한 인재 등용, 현장의 외침을 듣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동굴을 뛰쳐나와야 한다.” 문재인이 “현장”의 사용자와 구 여권에게 불신을 샀으니, 양보와 후퇴로 해소하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개신교 우익이 성소수자 행사를 무산시킨 것, 난민 반대를 내세워 우익이 새로 결집하려는 시도 등도 눈여겨 보며 대응해야 한다.
물론 우파 야당들의 지지율이 즉시 회복되지는 않고 있다. 촛불 운동의 반우파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또한 문재인은 개혁 포장지를 폐기하지 않고 있고, 몇몇 조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회복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경제나 안보 상황이 불확실한 탓에 이런 아슬아슬한 상태가 오래가지는 못할 듯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회복되지 못하면 이 나라 공식정치를 지배하는 두 정당 모두 위기인 셈이다. 구미에서처럼 정치 불안정과 새로운 양극화가 일어날 수 있다. 기성 정당들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말이다.
이런 때 진정한 진보, 즉 좌파는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 개별 투쟁들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다. 이 투쟁들을 (정치적으로) 보편화하려 해야 한다. 우파들의 악선동에 맞서 난민 문제 등에서 노동계급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개혁주의적 운동 지도부들은 문재인 정부의 약화가 우파를 되살릴까 봐 문재인 비판에 더 주저하는 듯하다. 특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단연코 노동개악 때문에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해 현장 조합원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문재인의 우선회가 우파 사기를 회복시켜 주는데도 노동운동이 문재인 비판을 삼가면 우파는 더 신이 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을 두들겨서 그 왼쪽까지 침묵시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계와 노동운동이 문재인에게 인내심 많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하는 길이다. 노무현 정부 후반부(대략 2005년 이후)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