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경주” 요구하는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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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당초 국회 예산심의가 끝나는 11월 15일을 협상의 ‘데드라인’으로 잡고 논의해 왔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시간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주말까지 이어진 협상에서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광주시는 국회 예산 심의 법정 시한인 12월 2일까지 협상을 진행해 현대차의 투자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고 밝혔다.
협상이 난항인 것은 현대차 사측이 광주시와 한국노총이 요구한 ‘주 40시간에 신입 임금 3500만 원’조차 거부하고 있어서다. 생산직 신입 임금 3500만 원은 현대차 정규직 신입 노동자의 70~80퍼센트 수준인데도 말이다.
광주시가 회사 설립 후 경영 분석을 통해 임금과 노동시간을 확정하자고 양보안을 내놓았지만, 현대차 사측은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 사측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의 생산직 신입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사측은 ‘주 44시간에 평균 연봉 3500만 원으로 못박자’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월 2회 8시간 특근 수당을 포함한 것인데다가, ‘평균 연봉’ 3500만 원이기 때문에 신입 노동자의 임금은 그보다 훨씬 떨어지게 된다. 전체 노동자의 30퍼센트 정도로 예상되는 관리직 연봉을 포함해 평균 3500만 원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차 사측은 ‘단체교섭 5년간 유예’와 ‘물가에 연동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이 물가보다는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 신입 임금이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광주시와 현대차가 극적인 합의에 이르더라도 광주형 일자리의 질은 매우 떨어질 것이다. 100퍼센트 비정규직 공장으로 악명이 높은 동희오토 수준의 임금으로 결정될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들은 현대차가 투자를 거부한다면 그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고임금 요구 때문이라며 저임금 일자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저임금 일자리 확대에 반대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하다. 현대차 지부가 광주형 일자리 반대를 내걸고 파업에 나서는 것은 정당하다.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
광주시와 문재인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 추진의 주요 명분으로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도 내세우고 있다. 완성차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대신 깎은 임금의 일부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 교섭과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를 연동하고, 적정 납품 단가를 보장한다는 조건을 현대차 사측에 제안했다. 현대차 사측은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청과 하청의 임금 격차가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책임은 아니다. 하청·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가 정규직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체 노동자의 몫은 정해져 있는데 원청 정규직이 더 가져가서 하청 노동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말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에서 기업소득은 1980년 14퍼센트에서 2015년 24.6퍼센트로 늘어났지만, 가계소득은 72.1퍼센트에서 62퍼센트로 감소했다. 즉, 자본가 계급이 전체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몫을 잘 지켜냈다고 해서 격차 확대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따라서 원청 정규직의 고임금이 비정규직의 저임금 덕분이라는 주장은 악선동일 뿐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원청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을 양보한다고 해도 그 돈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늘리며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 해 온 현대·기아차 같은 대기업들이 정규직의 임금 삭감분을 하청 노동자들에 줄 리 만무한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광주형 일자리와 함께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하는데, 이 또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임금을 고착화시키기 좋은 제도다. 직무급제는 ‘직무 평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공정한’ 임금 체계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직무 평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사용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청 기업 노동자들의 직무는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에게 직무급제인 ‘표준임금모델’을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30년을 일해도 9급 공무원 급여 수준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정부는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원하청의 임금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것이다.
11월 15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노동계 인사들도 이런 점을 들어 광주형 일자리를 비판했다.
“완성차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가 원하청 관계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무관”(박용석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하다거나,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는 노조의 책임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중간착취로 발생하는 문제”(현대차지부 하부영 지부장)라며 말이다.
최근에 하 지부장은 ‘완성차 노동자의 임금 총액이 높은 것은 연장 근무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하청 노동자보다 크게 높은 것은 아니다’는 취지의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 추진의 명분으로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를 내세우는 것은 노동운동 내에서 정규직 임금 억제를 통한 연대임금론이 확산돼 온 점을 파고든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금속노조 지도부와 하 지부장 등도 이런 주장을 해 왔다.
예를 들어, 올해 초 하 지부장은 “현대자동차 노조의 30년 투쟁이 사회 양극화(혹은 임금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며 사실상 정부와 같은 논리로 대공장 정규직의 임금 투쟁을 폄훼한 바 있다.
그러면서 올해 임단협 요구로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내세웠는데, 즉 완성차 정규직의 임금 인상 요구를 낮추는 대신 그 돈으로 부품사·비정규직의 임금을 지원하라고 현대차 사측에 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도 하 지부장은 집회 발언에서 “우리는 하후상박을 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며 자신의 기존 주장을 옹호했다.
물론 정부와 사측은 원청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자는 것이고, 하 지부장은 임금 인상을 자제하자는 것이니 둘의 주장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논리는 동일하다. 원청 정규직이 양보해야 하청 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면 하청 노동자를 위해 원청 정규직이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하향 평준화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하 지부장 같은 대기업 노조 지도자들이 대부분 하청 노동자를 위해 제대로 싸운 것도 아니다. 금속노조와 완성차지부 지도자들은 대부분 부품사의 노조 탄압에 맞선 투쟁,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 투쟁 등에 연대하기를 회피해, 격차의 유지·확대에 일조했다.
사실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제시키면서 협상장에서 노조 지도자들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라고 한들, 사측이 그 요구를 받아들일 리도 만무하다.
상향 평준화로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해 나가려면, 노동조합으로 잘 조직돼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방어할 뿐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을 위해서도 연대해야 한다.
정규직의 고임금 운운하며 투쟁을 회피해 온 노조 지도자들의 전력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임금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공격에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잉 생산과 자동차 산업 발전 방안
한편, 광주시와 현대차 사이에서는 생산차량도 문제가 됐다.
현대차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경우 경차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내연기관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국내 경차 판매가 포화 상태라며, 경형 SUV가 아니라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변경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광주형 일자리 문제를 과잉 생산과 자동차 산업 위기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임금 삭감 문제로 접근하면 귀족 노조의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말이다. 울산 지역의 진보정당들도 저임금 문제보다는 울산의 일자리 감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실제로 현대·기아차 사측은 공장별 물량 배정 문제를 두고 노동자들을 경쟁시키며, 임금·노동조건 악화에 이용해 왔다. 광주에 추가로 공장이 지어진다면 또다시 노동자들을 경쟁시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시설이 남아도는 데 공장 신설이 웬 말이냐’, ‘광주형 일자리가 아니라 전기차 생산을 위해 투자를 늘려라’ 하는 등의 주장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사측의 투자 계획에 대해 하라 마라 하고 얘기하는 것은 그 투자에 대한 책임과 수익성 악화에 따른 책임도 함께 지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 경쟁력 향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협조해야만 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장기 불황기에 기업 경쟁력에 협조하겠다는 태도는 사측의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 압박에 맞서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