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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노동자가 말한다, ‘통신 대란’의 진정한 이유
민영화와 이윤 지상주의가 낳은 재난

통신 사고가 재난과 함께 발생하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한 KT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 ⓒ조승진

11월 24일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국사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서대문구, 마포구, 중구, 용산구, 은평구 등 서울 북서부 권역에 ‘통신 대란’이 일어났다. 해당 지역의 KT 이동전화, 인터넷, 유선전화, IPTV 등이 마비된 것이다. KT통신망을 주로 이용하는 카드 결제 단말기도 먹통이 됐다.

통신 사고는 단지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생명·안전과 직결돼 있다. 해당 지역의 KT통신망 이용자들은 한동안 모든 종류의 통신이 차단된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래서 서울시소방재난본부가 보낸 재난 안내 문자도 못 받았다. 서대문과 용산의 112 통신 시스템도 마비됐고, KT회선을 이용하는 병원 전산망도 장애를 일으켰다.

이번 사고가 지진, 화재, 태풍 등 다른 재난과 함께 발생했다면 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통신구 한 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통신 대란'으로까지 이어진 배경에는 민영화가 있다. KT는 민영화 이후 수익성 논리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KT는 비용을 줄이겠다며, 개별 국사(전화국)별로 분산돼 있던 기존 통신 시설을 소수의 집중국으로 모았다. 그렇게 하면 유휴 공간이 확보된 전화국 건물을 매각하거나 임대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인력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아현국사는 서울지역 KT통신망의 중간 허브 구실을 하는 곳으로 여러 지역의 회선들이 집중돼 있다. 그래서 피해 규모가 컸던 것이다.

비용 절감에 급급했던 KT는 통신 사고 대비책 마련에 소홀했다. 이번 사고 당시 근무자는 단 2명뿐이었다고 한다. 아현지점을 폐지하면서 상주 인원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자동소화장치 등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설비도 없었다. 케이블 설치 등 핵심 업무를 외주화한 것도 신속한 대처를 어렵게 했다.

장애 발생시 복구 작업을 위해 통신회선을 우회할 수 있는 이원화 체계가 없었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정부는 아현국사를 D등급 통신 시설로 분류하는데, A~C등급과는 달리 D등급은 통신회선 이원화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화재 발생 이틀 뒤 오성목 KT네크워크부문 사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D등급까지 이원화하려면 ... 대규모 토목공사와 광케이블 포석 작업이 필요해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고 밝혔다. 핵심은 비용인 것이다.

KT는 비용을 아끼려고 등급 규정을 일부러 어겼을 수도 있다. 회선이 분산돼 있던 시기에 설정한 등급을 회선을 집중시킨 이후에도 유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화재 현장에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완전 복구까지는 여러 날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승진

민영화와 자본주의

이번 '통신 대란'은 KT 민영화의 폐해를 드러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통신 안정성에서 중요한 요소인 설비투자액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2000년 33.9퍼센트이던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액은 2004년에는 15.3퍼센트로 줄었고, 현재는 10퍼센트 이하다.

그 문제점은 곧 드러났다. 2005년 2월 경기남부·영남지역에서 대량의 전화 불통 사태가 벌어졌는데, 설비투자가 줄면서 교환기 여유 용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비용 절감을 앞세운 인력 구조조정도 거듭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4년 황창규 회장이 취임 직후 강제 ‘명예퇴직’으로 8300여 명을 쫓아낸 일이다. 6만여 명이던 직원이 2만 3000여 명으로 줄었다. 인터넷 개통과 수리, 케이블 설치, 콜센터 등 핵심 업무들은 외주화됐다.

그렇게 생겨난 수익은 KT 주식을 보유한 국내외 자본에게 돌아갔고 피해는 노동자와 서민의 몫이 됐다. KT 민영화의 폐해를 제대로 돌아보고 재국유화 같은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더 근본에서 비용 절감에 집착하고 수익성을 좇는 KT의 행태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을 우선하는 체제다. 자본가들의 이윤 경쟁이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이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수익성 경쟁, 비용 절감 경쟁을 벌인다. 그런 경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난다. 세월호 참사부터 최근의 종로 고시원 화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반복되는 참사를 통해 수없이 이를 확인해 왔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잔인한 우선순위는 통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4년 3월 종로 통신구, 11월 대구 통신구, 2000년 2월 여의도의 전기·통신 공동구에서 불이 나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2003년에는 DNS서버가 다운돼 인터넷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거듭되는 '통신 대란'을 막으려면 민영화 반대·재국유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한 한편, 그 운동이 근본적으로 이윤 중심 체제에 대한 도전과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KT 아현국사 화재 현장. 통신 안정성을 도외시하고 비용 절감만 추구한 결과다 ⓒ조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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