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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 :
고용 안정도 처우 개선도 못 하는 엉터리 방안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2018년 12월 31일, 이하 자회사 모델안)의 구체적 내용이 알려졌다.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에 자회사 모델안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는 발표를 미뤘을 뿐이지, 지난 한 해 내내 이를 관철하는 데 기를 썼다.

그 결과 2018년 9월 기준 중앙행정부처 산하 공공기관 334곳에서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됐거나 전환될 예정인 비정규직 숫자는 3만 2514명(33곳)이었다(2018년 10월 이용득 의원). 이 기관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용역 노동자 약 7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그러나 지난해 내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추진에 맞서 격렬하게 반대해 투쟁을 벌였다. 잡월드 파업이 대표적이다. 또 노동자들은 수차례 대규모 공동 집회와 파업까지 벌이며 문재인이 직접 나서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자회사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허구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지표가 됐다.

기존 자회사 문제점 극복?

정부는 자회사 모델안이 기존 공공기관 자회사들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공통된 기준 없이 자회사가 설립”된 것이 문제라며, 모회사 100퍼센트 출자, 법령으로 자회사 설립 근거 마련 등의 조처를 하면 자회사 운영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회사 모델안의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인천공항 사례를 보면 이것이 거짓말임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의 파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천공항 ⓒ출처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첫째, 자회사 모델안에는 ‘공정 채용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는 기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경쟁 채용’ 과정에서 해고될 위험이 있는 방안이다.

실제 인천공항공사 사측이 전환 채용한다는 노조와의 합의를 파기하고 경쟁 채용을 도입하는 바람에, 무려 2000명의 전환 채용이 불확실하게 됐고, 일부는 해고로 내몰릴 위험에 처했다.

둘째, 처우 개선 역시 미미하기 짝이 없다. 자회사 모델안은 “전환 이전 임금수준” 등을 고려하도록 돼 있는데다, 직무급제 도입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건 개선에 관해서는 ‘모회사의 사내근로복지기금 공동 활용’ 문구 정도가 포함돼 있는데, 이는 정부의 부담은 늘리지 않은 채 정규직 복지에 사용될 재원을 나눠 쓰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사측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추가로 투입되는 예산 없이” 자회사 전환을 한다고 결정했다. 2017년 당기 순이익이 무려 1조 원이 넘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기존 용역업체에 지급되던 일반관리비와 이윤을 노동자 처우 개선에 쓰라는 노조의 요구도 거부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고작 평균 3.7퍼센트의 임금 인상과 일부 수당을 받을 뿐이다. 게다가 정부는 직무급제까지 도입해 앞으로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체계를 만들려 한다.

이처럼 정부가 내놓은 자회사 모델안은 기존 자회사 문제를 “극복”하는 “바람직한 모델”이 전혀 아니다.

게다가 공공기관들이 자회사에게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해 벌써부터 ‘독점, 일감 몰아주기’라며 불공정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빌미로 다시 경쟁 입찰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를 압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 정부는 공공 사업의 민간 개방을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경쟁 입찰 압력을 더 키울 것이다.

자회사 추진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부

최근 정부가 자회사 모델안을 내놓은 것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공공기관들의 자회사 추진에 힘을 실어 주며 자회사 전환을 못박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자회사 모델안의 내용을 폭로하고, 자회사 고용 자체에 분명하게 반대하며 정부에 맞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2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이 자회사 문제로 노정협의에 참가한 것은 부적절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등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도 자회사의 조건 요구안도 내놓았는데, 이것도 문제다.

그동안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자회사 전환 중단, 직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왔는데, 자회사 조건안을 제시함으로써 ‘어떤 자회사 방식이냐’를 논의하는 길을 열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노정협의는 정부가 노조들과 충분히 상의했다는 명분을 얻는 데 이용됐고, 정부는 자회사 모델안 강행을 최종 통보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과 산하 공공부문 노조들은 이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지난해 잡월드 파업을 정점으로 자회사 반대 요구가 부상했을 때,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이 투쟁을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으로 확대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가를 비롯한 정부와의 협상을 성사시키는 데 주된 관심이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도 경사노위 중재에 기대며 문재인 정부에 단호하게 맞서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해 투쟁으로부터 ‘자회사 반대를 내걸고 싸워 봐야 소용없고, 더 나은 자회사 방안을 추구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 동력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에 반감이 크다.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발전, 가스, 마사회, 서울대병원, 산업은행 등이 그렇다. 인천공항 노동자들도 다시 투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1월 11일에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자회사 추진에 나서 해당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다. 고 김용균 동지 사망에 항의하는 운동이 지속되고 있고 2월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악 등의 현안이 코앞에 있는 상황이다.

기층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단호하게 이런 공격에 맞서 투쟁에 힘을 쏟도록 촉구하며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런 때 또다시 경사노위 참가를 추진하다 투쟁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