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넘게 인천공항에 구금된 난민 가족 연대 기자회견:
정부는 루렌도 가족의 입국과 체류 허가하고 아동 인권 보장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콩고 출신 앙골라 난민 가족 6명이 55일째 인천공항에 구금돼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입국을 거부했다. 10세 미만 아동 4명과 건강이 매우 악화된 보베테 씨를 장기 구금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난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는 한시적 입국 허가조차 거부하고 있다.
2월 19일 인천공항 내 법무부 출입국 서비스센터 앞에서 “루렌도 씨 가족 입국 허가! 체류 보장!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이 주최하고 난민·이주·노동·사회·아동·종교 단체 등 20곳이 동참했다.
문재인 정부의 차가운 태도를 보여 주듯이 인천공항공사는 기자회견을 시작부터 방해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 참가한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조합원들이 공항 측의 방해를 물리쳤다.
인천공항을 지나는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수원이주민센터 정지윤 활동가가 루렌도 씨의 편지를 절절하게 대독할 때는 공항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멈춰 서서 듣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함께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평화’와 ‘포용’을 운운하면서 난민들에게는 냉혹하고 매정하다고 비판했다.
루렌도 씨의 법적 대리인 이상현 변호사는 그간의 경과를 생생하게 보고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인지를 판단하려면 그의 삶과 그가 떠난 사회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그러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취소 소송 판결 전에도 루렌도 가족의 입국이 가능하도록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디아코니아 홍주민 목사는 정부가 난민을 그저 “처리” 대상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번 사건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난민 10명 중 9명을 난민 심사도 못 받게 하고 추방했습니다. 루렌도 가족도 3번이나 강제 추방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난민 추방은 살인”이라며 “인권 선진국 … 촛불정부를 입에 올리지 말라”고 정부를 규탄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 김희진 변호사는 “아동을 동반한 가족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는 유엔아동권리 협약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루렌도 가족의 입국이 허가돼야 하며, 향후 난민 인정 심사 과정에서 아동 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노동자연대 김지윤 활동가는 난민 발생의 책임이 미국을 비롯한 열강과 다국적 기업들에 있고 난민들은 무고한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앙골라에서는 20년 넘는 내전과 여기에 개입하는 미국 탓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고, 콩고는 자원을 둘러싼 분쟁으로 3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콩고가 전 세계 생산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콜탄 등 광물 자원은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제품의 필수 원료이다. 이 원료 채취에 아동 노동, 노예 노동 등 심각한 착취와 억압이 동원된다.
사회를 맡은 ‘난민과손잡고’ 사마 활동가는 한국이 첨단 산업으로 돈을 벌면서도 이 산업에 꼭 필요한 광물 자원을 둘러싼 이권 분쟁과 노동 착취, 탄압을 피해 온 난민들을 받아 주지 않는 것은 비극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루렌도 가족의 입국 허가와 체류 보장을 위해 난민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할 것임을 밝혔다. 난민공동행동은 향후 루렌도 가족의 진료를 추진하고 지원을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 지원 모금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3월 17일 인종차별반대의 날 집회에서 루렌도 가족 문제 해결을 적극 요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루렌도 씨는 서한을 통해 공항 안에서의 힘든 생활을 생생히 전했다. 루렌도 씨 가족은 두 시간씩 기다렸다가 아이들을 공중 화장실에서 씻겨야 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여러 한국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도움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호소했다.(편지 전문 보기)
루렌도 가족은 끔찍한 탄압과 이주민 차별을 피해 한국에 왔다.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조처다. 문재인 정부는 조속히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허가하고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기자회견문]
54일째 인천공항에 구금된 난민 —
루렌도 가족의 입국과 체류를 허가하고 아동인권을 보장하라!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들어오는 인천공항. 그곳에 오늘로 54일째 죄 없이 구금돼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그 중 4명은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며, 아이들의 엄마는 건강 상태도 좋지 않다. 바로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보베테 씨 가족이다.
유엔에 따르면 2018년 10월 한 달 동안 앙골라에서 쫓겨난 콩고 사람은 33만 명에 이른다. 루렌도 가족이 앙골라를 떠나기 불과 두 달 전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루렌도 씨는 단지 자신이 몰던 택시가 경찰차와 부딪혔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특수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 사이 아내 보베테 씨는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루렌도 가족은 이런 끔찍한 탄압과 이주민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모든 것을 걸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 난민이다. 그러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일 것이라는 기대는 지난해 12월 28일 한국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무너졌다. 한국 정부는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불허하고 여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정식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박탈한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정부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린 과정이다. 다 완성하지도 못한 난민신청서를 가져가는가 하면, 운명이 걸린 결정을 위한 인터뷰는 통역과 조서 작성을 포함해 고작 2시간 남짓 진행됐다. 아이들의 의견이 청취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불회부 결정을 내린 이유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보베테 씨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의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으나 묵살당했다고 한다. 보베테 씨는 이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외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리고 나서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감금시설인 공항 내 송환대기실에 가두려 했다. 루렌도 가족은 이를 거부했고 이때부터 출국장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이들은 하루 두 끼, 부모는 한 끼만 먹고 있다. 여행객이 없는 시간 화장실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소파를 이어 붙여 쪽잠을 청한다.
대한민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임에도, 아동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24시간 불이 켜진 공항 탑승구역에서 아이들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음은 물론, 교육받을 권리도 박탈되었다.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것 외에 놀이할 방법도 없다. 친구와 상호작용하며 경험과 지식을 학습할 이 중요한 시기에, 온전한 개인적 시간이 특히 중요한 감수성 예민할 성장기에, 루렌도 가족 아동의 일상은 공항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있다. 지쳐가는 부모의 모습을 마주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더욱 지쳐간다. 우리는 과연 아동인권을 보장하는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현실은 루렌도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인천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이들 10명 중 9명이 루렌도 가족처럼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았다. 사실상 난민의 입국 자체가 차단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물리적 폭력이 벌어지는 일들도 보고된 바 있다. 더욱이 한국은 아동 난민심사를 위한 정책 및 지침도 없다. 부모를 동반하지 않은 난민아동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도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강제추방 위기에 내몰렸을 이들을 생각하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루렌도 가족의 상황은 정부가 상반기 내 추진하겠다는 난민법 개악이 난민들에게 어떤 고통을 낳을지 보여 준다. 법무부는 지난해 난민반대 청와대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것이 명백한 신청자는 신속하게 불회부 결정하여 난민신청자 자격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방향으로 난민법이 개악된다면,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는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국경을 드나드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절실한 사람들이 가로막혀 있다. 번듯한 환승 호텔까지 갖춰진 그곳에서, 누구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숙소가 필요한 사람들이 바닥에 내던져져 있다.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이것이 ‘평화’와 ‘포용’을 내세우는 정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루렌도 씨 가족은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런데 6개월가량 예상되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인천공항 터미널에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건강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입국 허가를 해 달라는 요구조차 거부했다.
정부의 이런 냉혹하고 매정한 태도와 달리 루렌도 가족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물품과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출국하는 길에 애써 이들을 방문해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
루렌도 가족은 공항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며 공항을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응답해 연대의 손길을 더욱 모으고 정부에 요구해 나갈 것이다.
- 정부는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허가하고 체류를 보장하라!
- 정부는 루렌도 가족의 입국이 허가될 때까지, 최소한 미성년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는 숙식공간을 마련하며, 기본적인 생필품을 제공하라!
- 정부는 아동인권을 보장하라!
2019년 2월 19일
난민과함께공동행동(경기이주공대위, 나눔문화, 난민과손잡고, 노동자연대,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사회변혁노동자당, 아시아의 친구들, 수원이주민센터, 순천이주민센터, 이주공동행동, 이집트혁명활동가그룹, 정의당 국제연대당원모임, 지구인의정류장, 카사마코, 한국디아코니아) 난민인권네트워크 출입국항 실무그룹, 국제아동인권센터,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센터, 한국기독교장로회생명선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