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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간부 압수수색:
노동개악 위한 문재인의 기선 잡기

4월 13일 문재인 정부의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총국 간부 4명의 자택, 차량,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국회 앞 집회 등이 사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시법(집회시위에관한법률) 위반 건치고는 경찰 대응 수준이 이례적으로 세다. 경찰이 문제 삼는 일이모두 우발적이거나 상징적 국회 진입 시도에 따른 경미한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수백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더 나쁘게 만들 법안을 다루면서 국회는 노동자들의 항변조차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런 국회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은 정당하다.

마녀사냥 말라 노동자들의 대국회 항의는 정당하다 ⓒ출처 민주노총

그러나 경찰청은 민주노총의 국회 진입 시도가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노동자·서민을 위해서는 하는 일도 없는 국회에 항의한 것이 질서 파괴 행위라는 것이다.

국회 경비를 맡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5명 규모 수사전담반을 꾸렸다. 지난해 6월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청이 전국에서 선거사범 총력 단속 수사전담반을 꾸릴 때 서울경찰청의 수사전담반 총원이(서울청 요원과 경찰서 31곳 차출 인원을 모두 더해) 340명 규모였다. 민주노총 수사전담반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지능범죄수사과장을 반장으로 한 것은 온라인 사찰까지 해서 인적 사항을 샅샅이 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4월 12일 경찰은 자한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인 대학생 중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자한당 정치인들의 반동적 발언을 규탄하는 행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검찰은 이튿날 바로 2명 중 1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다행히도 다음날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말이다.

검찰과 경찰의 태도는 문재인 정부의 상황 인식을 짐작케 한다. 국회에서 여당과 자한당이 극한 대치를 하면서 임시국회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번 회기에 노동개악 입법을 반드시 하겠다는 입장이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킬 탄력근로제 개악, 최저임금 추가 개악, 단체행동권 약화시킬 노동조합법 개악 등. 자한당은 이조차 성에 차지 않아 하면서 더 나쁜 개악안을 내놓고 자기들이 진정한 사용자 대변 정당임을 과시한다.

따라서 국회 법안 협상 과정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자한당이 개악안을 내밀수록 사용자들의 지지를 잃을까 봐 문재인과 민주당도 더 개악에 매달릴 것이고, 노동자들의 항의에 대해서도 대체로 더 강경하게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해야 중도파 정부가 우파와 노동자 양쪽에서 압박받으며 쪼그라드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강경 대응도 정부가 노조에 물렁하게 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마녀사냥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노동자들의 투지와 사기는 조금씩 높아져 왔다. 노동운동이 박근혜 퇴진에 기여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사기도 괜찮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진보 개혁 약속에 기대를 걸었던 노동자들이 지금 문재인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쓰라린 냉소와 좌절보다는 항의와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3월 말과 4월 초 국회 진입 저지 투쟁 직후 민주당과 자한당이 합의에 실패해 노동개악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못했다. 그 직후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투쟁 결의 자리로 치러진 한 가지 이유다.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가가 물 건너간 듯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 수정안은 대의원대회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다.

4월 13일 특수고용 노동자 2만여 명이 서울 종로 도심에서 위력 있는 집회를 열었다.

5월 1일 노동절 집회가 수도에서 대규모로 열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벌인다면 정부는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개악을 추진하면 노·정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경찰이 민주노총 간부 탄압에 앞장선 것은 올 상반기 노·정 충돌 국면을 앞두고 민주노총에게 보내는 강력한 사전 경고인 것이다. 물론 우파 눈치 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압수수색 대상이 된 민주노총 간부나 대학생 구속영장 신청을 보면, 경찰은 주로 자민통계 활동가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듯하다. 그래서 경고 메시지의 내용이 마녀사냥으로 보이기도 한다. 혹시 모를 남북관계 경색 조짐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이간시키고, 다른 진보적 사회세력으로부터 민주노총을 고립시킬 수 있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교롭게도 경찰 압수수색 이틀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북·미 대화가 틀어져 제재 완화와 화해·협력보다는 다시 긴장이 고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재인정부의 위선(어설프게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한미동맹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에 일침을 날린 것이다.

만일 북·미 갈등 재격화 속에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진보진영 내 반미 자주화 운동 세력들의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고, 이들에 대한 우파의 단속 압력도 커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황 변화 가능성에 발빠르게 대응하려 하는 것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대중적 노동자 운동의 부상 이후 정치체제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형태로 점차 변모해 오면서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국가보안법도 결코 폐지되지 않는 것은 이런 정치적 불안정 문제를 만성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5월 1일 노동절 집회부터 본격화될 5~6월 노·정 충돌 국면에서 온건파 노조 지도자들을 포섭하는 것도 계속하지만, 탄압도 카드(이간·고립의 마녀사냥 책략)로 삼을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개악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촛불 개혁 염원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요구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선택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로 우파도 약화시키고 개혁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온건파들의 셈법은 거듭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