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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총선 결과:
투쟁의 필요성을 보여 주다

5월 8일 남아공 총선에서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거둔 성적은 초라했다. 찰리 킴버는 전진하기 위해서는 저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아공 프레토리아 지역의 개표 장면

이번 남아공 총선 결과는 집권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대한 냉엄한 심판이었다. 5월 6~7일 사전 투표 기간에도 사람들은 가난과 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웨스턴케이프주(州) 주도 케이프타운의 하엘리샤와 플레튼버그베이, 남아공 동부 항구도시인 더반 인근의 움라지 구역에서 도로를 봉쇄했다. 투표소로 사용될 예정이던 근처 마을회관 두 곳이 불에 탔다.

시위 참가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잊혀지고 있습니다. ANC에 투표하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이에요.”

ANC는 58퍼센트를 득표했다. 5년 전 총선의 62퍼센트, 2004년의 득표율 70퍼센트보다 줄어든 것이다.

ANC의 [실제] 쇠퇴는 득표율 하락 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 투표율이 낮아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인등록을 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유권자의 27퍼센트만이 이번에 ANC에 투표했다. 1994년에 이 수치는 54퍼센트였다.

남아공의 인종 간 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1994년에 종식된 이후, ANC는 남아공을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로 바꾸는 데 실패했다.

요하네스버그 인근 [옛 흑인 거주 구역] 소웨토에서 온 엘리자베스 하셰는 이렇게 말했다. “ANC는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겠지만 그건 개소리에요. 이번 선거는 ANC 퇴진으로 또 한 걸음 크게 다가간 겁니다.”

그나마 2018년에 제이컵 주마가 ANC 대표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덕분에 ANC는 훨씬 더 심각한 득표율 하락을 면했다. 주마는 조직적 부패와 국가 자산 횡령 비리의 한복판에 있었다.

주마와 친인척들은 대부호인 굽타 가문과 유착했다. 굽타 가문이 수익성 좋은 국책사업 계약과 정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랐다.

2017년에는 주마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연좌 농성이 벌어졌다. 이 투쟁은 대학의 인종차별·배제 정책에 항의한 운동들에 뒤이은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시위와 맞물렸다.

내부 다툼

극심한 내부 다툼 끝에 주마는 퇴진했다. 그 덕분에 몇몇 ANC 비판자가 ANC 지지자로 돌아왔다.

대기업들은 신경질적으로 주마의 퇴진을 요구했다. 주마 때문에 [남아공의] 불안정이 심화됐기 때문이었다. 주마가 물러나자 기업들은 집권당을 대체로 용인했다.

2018년 2월에 남아공공산당(SACP)은 2019년 총선에 독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산당은 중요한 정당이다. 28만 명의 당원을 거느리고 노동조합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이다.

공산당은 수십 년 동안 ANC, 코사투(COSATU, 남아공노총)와 “삼각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동맹이 분열한다면 의미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나 주마가 퇴진하자 공산당은 ANC 지지로 되돌아갔다.

4월에 공산당은 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투표용지에 있는 정당들 중 투쟁을 이끌 수 있는 당은 ANC 뿐이다.”

과거 ANC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공산당원] 로니 카스릴스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당은 주마 정권의 뼈아픈 교훈에도 불구하고 ANC를 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ANC의 신자유주의는 일자리를 창출할 가망이 없습니다.

“ANC는 이런 상황에서도 60퍼센트 가까이 득표했습니다. 남아공 대중이 기대를 걸만한 다른 정당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이끌었던 당이라는 ‘명성’이 남아있기도 하고요. 그 명성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지만 말입니다.”

주마의 후임 시릴 라마포사는 ANC의 타락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이다.

한때 라마포사는 전투적인 전국광원노조(NUM)를 [창설하고] 이끈 인물이다. 그러나 이제 라마포사는 2012년 마리카나에서 34명의 광원을 학살한 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당시 라마포사는 마리카나 광산을 소유한 론민의 이사였다. 론민은 당시 경찰과 협력해 학살을 자행했다.

라마포사는 당시 학살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고 파업 노동자들에 맞선 “행동”을 촉구했다.

ANC 정부 하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21퍼센트를 득표해 2014년 총선 당시 득표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민주동맹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당시 있었던 백인 정당 일부에 뿌리를 둔 당이지만, 현재 민주동맹지도부·지지자 대부분이 흑인이다.

민주동맹은 [부패한] ANC의 “청렴한” 대안을 자처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민주동맹은 대기업을 공공연히 대변하며 대규모 민영화를 공약했다. 민주동맹은 부자들에게서 토지를 몰수해 재분배하려는 시도에도 반대했다.

경제자유투사당(EFF)은 지지율이 가장 많이 오른 정당이다. 경제자유투사당은 2014년에 6퍼센트를 득표했는데, 이번 선거에선 11퍼센트로 늘었다.

경제자유투사당 대표 줄리어스 말레마의 급진적 언사는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경제자유투사당은 토지 소유와 일자리 문제를 핵심으로 부각했다. 경제자유투사당은 이렇게 주장했다. “정치적 자유를 달성한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의 80퍼센트는 남아공 전체 토지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땅을 갖고 있다.”

“일자리가 필요한 유능한 남아공 사람들 700만 명 이상이 실업자다. 정권 교체 없이는 변화의 희망도 없다.”

경제자유투사당 자신도 부패 혐의에 직면해 있음에도 ANC에 환멸을 느낀 일부 사람들이 경제자유투사당에 이끌렸다.

안타깝게도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SRWP)은 아직 그런 지지를 모으지 못했다. 아주 최근에 출범한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은 조합원이 약 35만 명인 금속노조(NUMSA)에 탄탄한 기반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은 고작 2만 5000표를 얻어 득표율이 0.2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총선 후 성명에서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 [결과] 뿐 아니라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들의 계급적 구성과 성격을 노동계급과 당원들에 끈질기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 지금의 혁명적 과제다.”

금속노조는 5년도 더 전부터 새로운 노동자 정당 건설을 거론했다.

그러나 그들이 [창당을] 망설이는 사이에 경제자유투사당이 기회를 잡았다.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은 몇몇 훌륭한 사회주의 정책들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기층에서 조직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투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작업장에서 응집력 있는 조직을 건설하고 불평등·인종차별·환경·복지·일자리를 비롯한 여러 쟁점들에 관해 선동해야 한다.

세볼렌코시 말라는 남아공판자촌거주자운동(AbM) 활동가다. 남아공판자촌거주자운동은 콰줄루나탈주(州) 소재 판자촌 거주자 5만 5000명이 모인 운동 단체다.

말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에 결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우리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이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희 단체는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냈습니다. ‘우리는 투표의 의미를 논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가난하다. 여전히 땅도 집도 없는데 투표가 무슨 소용인가.’

“‘헌법 민주주의, 국제법, 국제 기준이 보장하는 필수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면 투표가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투표를 하지만 우리가 뽑은 자가 우리를 죽인다면 투표가 무슨 소용인가.’

“이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우리의 힘은 아래에서, 투쟁에서, 점거 운동에서, 거리에서 나옵니다.”

남아공의 저항 운동 수준은 매우 높다. 항의 운동과 전투적 시위·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운동을 성장시키는 것이 가야할 길이다.


ANC, 가난한 사람들을 배신하다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해방운동은 결국 그 운동이 해방하려 했던 사람들을 저버린다.

1994년부터 남아공을 이끈 ANC 지도자들은 흑인과 백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공정한” 자본주의를 운영하려 했다.

그들은 기업주들과 공조해 번영을 구가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강한 기업·지주·은행가들과 맺은 친교의 대가로 ANC는 대중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ANC는 전투적 언사를 버렸고 자본주의에 도전하기보다는 협조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압도 다수 대중을 인종적으로 억압하고 빈곤을 고착화했다.

ANC는 얼마쯤 변화를 이루긴 했다. 그러나 경제적 해방은 여전히 머나먼 일이다.

현재 공식 실업률은 27퍼센트다.

그러나 구직 포기자까지 감안하면 그 수치는 37퍼센트로 뛴다.

ANC 집권기에 성인이 된 청년 2000만 명의 실업률은 훨씬 높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전체 부의 7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하위 60퍼센트는 겨우 7퍼센트만을 차지한다.

ANC와 결별한 신생 남아공노동조합연맹(SAFTU)은 2017년에 이렇게 밝혔다. “ANC 정부는 최악의 근본주의적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지금의 상황을 낳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합의는 민주주의를 향한 돌파구를 열었지만 백인 소유주들의 독점 자본주의의 존속을 보장했다.

“그 결과 남아공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

경제적 현실은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정부는 최종 집계까지 국민의 75퍼센트가 선거인등록을 했다고 밝혔다.

즉 1000만 명이 선거인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 600만 명이 30세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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