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논란:
복지·안전 예산 미미, 기업 퍼주기가 주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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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이익을 확고하게 대변하는 우파 정당 자유한국당은 추경이 재정 “곳간을 거덜” 내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한다. 세금 사용을 늘리지 말고, 임금을 억제하고, 해고를 쉽게 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표방한 낙수 효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정책을 쓸수록 빈익빈 부익부가 늘어나는 ‘분수 효과’가 존재했을 뿐이다.
6조 7000억 원 규모의 이번 추경을 두고 그들이 재정 파탄 운운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여러 경제학자들도 지적했듯이, 문재인 정부는 이제까지 신자유주의적 재정 건전성을 추구하며 긴축 정책을 펴 왔다. 지난 2년 동안 정부가 사용하지 않고 남은 세금은 매년 10조 원이 넘는다. 이번 추경도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권고한 9조 원 추경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의 이번 추경은 정부의 말과 달리 오히려 미세먼지 대책이나 안전을 위한 대책이 미미하고, 노동자와 빈곤층을 위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받아야 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예산은 4조 5000억 원으로, 미세먼지 등 국민안전을 위한 예산(2조 2000억 원)의 갑절이 넘는다. 그런데 미세먼지 대책이라고 돼 있지만 실상은 기업 지원 정책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을 위해 2105억 원을 쓰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기가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차·수소차를 약간 보급하는 것으로는 미세먼지 개선 효과가 거의 없다. 이런 정책은 환경보다는 현대차·기아차 기업의 이윤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지원과 공장에 미세먼지 방지 시설 설치 등을 내놓았다. 이는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핵심적인 대책은 여전히 빠져 있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대량 발생시키는 노후 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고 신규 건설을 불허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일부 석탄발전소를 봄철에만 일시 가동 중단 하는 방식으로 축소됐고, 화력발전소 일곱 기는 여전히 건설되고 있다. 이번 추경에서도 석탄발전소 폐쇄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산불 등 재난에 대응하겠다며 7000억 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나 “기업의 환경·안전 설비투자” 지원 등 기업 지원책이다. 산불 특수진화대 인력을 135명 확충하겠다고 하지만, 저임금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 온 그들의 처우 개선 관련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에 고용과 사회안전망 보강을 위해 배정된 예산 1조 5000억 원 중 8000억 원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실업급여 증가에 대비한 예산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일자리 지원책은 죄다 저질 단기 일자리뿐이다. 만들겠다는 일자리 7만 3000개 중 노인 일자리가 3만 개인데, 월급이 27만 원에 불과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다른 일자리들도 평균 10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들이다.
지금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데, 이를 위한 예산은 추경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한 강사법으로 대량 해고를 겪고 있는 강사들을 위해서는 280억 원이 배정됐다. 2000명에게 1명 당 연구비 1400만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김용섭 위원장이 지적하듯이, 올해 1학기에만 2만여 명이 해고된 상황에서 이 정도 지원은 “새 발의 피”일 뿐이다.
반면 정부는 수출·투자·관광 분야 활력을 제고하겠다며 산업 구조조정 지원, 수출 기업 지원,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지원책을 발표했다. 대부분 수출 대기업들이 득을 볼 내용이다.
이처럼, 이번 추경에서 미세먼지·안전·민생 대책은 너무나 부족한 반면 기업 지원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친기업 본색
이번 추경은 한국 경제의 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친기업 기조가 노골적이 되고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겠다며 삼성전자에 무려 22조 원에 달하는 감세 혜택을 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총은 7월 총파업의 요구 중 하나로 “정부재정 확대”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부가 친기업적 재정 정책을 쓰는 상황에서 어떤 재정 확대냐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과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 임금 등 노동계급과 빈곤층을 위해 돈을 쓰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또, 최근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산하 노동조합들, 한국노총,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NGO 등은 “지금 당장 긴급한 복지·노동예산 확대를 요구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복지 확대 요구는 지지받아야 한다. 그런데 복지·노동예산을 특별히 17조 원 더 늘리라고 요구한 것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퍼센트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정부 기준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재정건전성 기준에 맞춰 요구의 수준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 자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가 심화할수록 세수는 줄어드는 데 비해 지출은 늘어서 재정 적자가 생기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압력에 취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복지·연금·임금 등을 삭감하며 고통을 받는 것은 언제나 노동자들이다. (물론 극소수 자본가들도 전체 자본가 계급을 위한 속죄양이 되곤 하지만 말이다.)
재정 적자가 커지며 경제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하는 문제다. 그 책임을 노동계급이 떠안을 이유가 없다. 노동계급은 위기의 책임을 자본가들이 지라고 주장하며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서 노동계급과 빈곤층의 처지를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또한 자본주의의 안정성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변화를 추구하며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