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정치에서 여야가 맞서지만:
노동계급은 대변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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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국가 기념식 행사를 앞두고 여권은 자유한국당과 당대표 황교안을 강하게 압박했다.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등 5·18 망언 자한당 국회의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은 채 황교안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광주민중항쟁이 북한군이 침투해 벌인 일이라는 중상모략).
그러나 전두환과 함께 광주 학살의 주동자인 노태우의 정부가 이 항쟁을 “광주 민주화운동”이라 규정했었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모두 5·18 묘역에 참배하고 기념식에도 참석했었다. 황교안 본인조차 행사 당일 거센 항의 속에서 기념식에 참가해 (박근혜의 국무총리로 참석했을 때에는 부르지 않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물론 행사 후에는 항의를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자한당이 이처럼 사회적으로 합의된 최소한의 역사 평가조차 뒤집는 발언을 하고 이를 용인한 것은 좌우 양극화 속에서 우파를 결집시키려는 계산이다. 자한당은 경제 위기와 문재인의 정치적 기반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실패할 거라고 보고, 정권 초부터 “협치”보다는 우파 결집 기조로 일관해 왔다.
우파 결집에 기초해 정권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으면 총선 승리와 정권 탈환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의 진보 염원 배신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커져 온 덕을 보면서 이런 책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자한당이 지지율을 회복한다는 바로 그 점(거기에 더해 온갖 막말로 지지층 결집을 시도한다는 점) 때문에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효과인 반우파 정서가 강력하게 일어났다.
이를 배경으로 한 공식정치의 양극화가 사생결단식으로 가면서 중도파들은 여야 모두에게, 특히 문재인에게 “협치”를 주문한다. 지배계급의 분열이 낳을 부정적 효과들, 즉 각종 비리 폭로가 빈번해지고 이로 말미암아 지배계급이 분열하고 위신이 추락하는 일, 그것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 노동개악의 지연 등을 피하기 위함이다. 여야가 힘을 합쳐 경제 위기에 대비한 개악들을 빨리 처리하고 안보 위기에 대응해 국민적 단합을 추구하라는 것인데, 이는 문재인 정부에게 자기 지지층과의 갈등을 불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문재인과 현 여권은 우파와 협치를 한다고 해서 중도파 정부에게 자동으로 활로가 생기는 게 아님을 노무현 정부 시절에 배웠다. 문재인은 중도파를 의식해 “협치”를 말하면서도 주도권 다툼을 중단하거나 그 다툼에서 밀릴 생각은 없다. 이는 선거제 개혁 같은 것을 여당이 반우파 공조로 통과시키며 진보층을 붙잡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구조조정과 노동개악 따위를 문재인 정부가 더 선도적으로 추진해 사용자들의 지지를 유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여당은 우파의 권좌 복귀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과 두려움도 이용한다. 문재인이 황교안과 나경원 등을 겨냥해 “독재자의 후예”라고 비판한 배경이다.
물론 황교안도 우파층을 염두에 두고 문재인이 “진짜 독재자의 후예(김정은)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대변인을 한다”고 색깔론을 폈다.
그러나 5·18을 앞둔 시점에서는 민주당 지지층 재결집이 좀 더 유리했던 듯하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자한당의 상승세가 주춤했다. 두 당 사이에 좁혀지던 지지율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민주당에 실망해 정의당이나 “지지 정당 없음”으로 갔던 진보층 일부도 일시적으로 민주당으로 회귀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문재인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가 반등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조사마다 구체적 수치는 달라도 거의 모든 조사에서 50퍼센트 미만을 못 벗어난 지 오래다. 필요할 때만 “촛불 정부” 운운하는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반감은 그대로인 것이다.
공식정치에서 분열과 갈등 상은 당분간은 지속되고 더 격화될 수 있다.
공식정치 양극화를 어떻게 볼까
두 당은 사용자들을 위한 개악 문제에서조차 협력하기보다는 누가 사용자를 위한 노동개악을 더 잘 할 것이냐로 갈등을 겪고 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북·미 대화가 다시 교착되면서, 경제·안보 위기 문제가 부각되자 계급 양극화에 기초한 좌우 양극화가 더 촉진됐다. 이것이 민주당과 자한당의 갈등이 격화된 배경이다.
자한당을 선호해 온 전통적 지배계급은 문재인이 노조 지도자들을 통해 개악을 추진하려고 신중하고 천천히 접근해 온 것에 점점 더 큰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듯하다. 노동계급의 기층 정서가 변하기 시작해, 새로운 조직화와 새로운 투쟁 흐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요한 개악, 여야가 서로 합의 처리하기로 동의한 노동개악들마저 지연되는 수준으로 갈등이 고조됐던 것이다.
그러나 노동개악 등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건 두 당 모두에 화해 압박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가 배경이 된 버스 사태는 민주당에게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의 시급함을 환기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부는 기업 지원을 늘리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예산)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관련 기사 “추경 논란: 복지·안전 예산 미미, 기업 퍼주기가 주안점” 참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멱살잡이도 불사할 것 같던 여야 원내대표들이 정의당을 배제하고는 자기들끼리 “밥 잘 주는 누나”, “맥주 사 주는 형” 하면서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한 까닭이다. 그러나 선거법 처리 등을 놓고 서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있기 때문에 임시국회 개원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서 힘을 합쳤던 반(反)자한당 4당 공조의 허약성도 확인되고 있다. 지지층 기반도 다를뿐더러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해관계도 다르기 때문에, 알량한 선거제 개혁법안조차 그대로 유지될 거라고 믿기 힘들다.
이 상황에서 검찰,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에서 정부 방침에 관료들이 저항하는 조짐들이 표출됐다. 검찰총장 문무일은 법무부 장관의 만류에도 패스트트랙에 포함된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발하는 독자 기자회견까지 했다. 거의 항명 수준이다. 경찰 불신론을 앞세웠지만, 사실은 검경수사권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이 더 불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만의 표시인지, 동시에 검찰은 전직 경찰청장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 강신명을 구속해 버렸다. 검찰의 항명은 물론이고 중요한 권력기관인 검찰과 경찰의 갈등도 정부에게는 불안 요소이다.
전통적으로 균형 재정을 선호하고, 또 그렇게 국가 재정 정책을 이끌어 온 기획재정부 관료들과 문재인 여권 사이에도 재정 문제로 갈등이 있어 보인다. 균형 재정론은 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 노선이었다.
문재인은 5월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포용적 혁신국가의 투자는 생산성 향상으로 돌아올 것이므로 낭비가 아니라면서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지출 구조조정도 언급해 난처함을 드러냈다. 이 회의가 정부 관료들의 입장을 결정하는 자리이므로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관료들에 대한 당부이다. 자한당 등 우파들도 재정 확대나 올해 추경예산이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반발한다.
그러나 문재인의 올해 추경예산은 양도 적고 주안점도 기업 지원에 있다. 문재인은 사용자와 부자들을 불편하게 할 증세를 한사코 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기업 지원을 위한 재정 확대에서도 한계를 보인다. 그런데 재정 확대 규모가 적을수록, 복지보다는 기업 지원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다. 5월 22일 문재인은 의료영리화와 직결되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연간 4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공식정치 양극화의 배경에 사회적·계급적 양극화가 있다. 그러므로 공식정치의 양극화와 갈등이 당분간 지속돼도 그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결국 우파와의 타협으로 이동할 개연성이 더 크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김호 씨를 구속하고는 문자 증거를 날조한 경찰을 5월 21일 무혐의 처리했다. 그 전에는 노동자연대 최영준, 한국진보연대 안지중 등 트럼프 방한 반대 시위 조직자들을 2년 만에 기소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과 경찰도 지배계급 입장에서의 ‘공안’(체제 수호와 기존 질서 유지) 문제에서는 다를 게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독립적이어야
원내 진보 정당 등 진보진영 일부는 자한당의 정치적 회복에 맞서 문재인 정부를 편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는 듯하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 노동개악 등을 두고는 부분적 비판을 하는 기조를 취해 온 것의 논리적 귀결일 수도 있다. 정의당,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등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민중당은 북·미 문제 등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실천에서는 (문재인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는) 반(反)자한당 실천을 적극 실행하고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온건함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우파성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힘을 회복하는 자한당에게 문재인 정부가 지금 밀려 버리면 이 정권 하에서 개혁 추진이 물 건너 간다고 보는 듯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혁을 중시해 왔기 때문에 민주당이 자한당과의 협치를 추구한다며 패스트트랙에 올려 놓은 선거제 개편이 흔들릴까 봐 더 조심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그저 우파적 압력에 밀리는 게 아님을 봐야 한다. 우파에 맞서면서도 노동개악, 친제국주의 문제 등에서 선택적으로 협력을 하는 것을 봐야 한다. 가령 우파 집회들은 문재인 정부를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에 비유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좌파 독재 타도” 구호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 그러나 문재인은 국내 우파의 “좌파 독재” 운운에 강력히 대응하지만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마두로가 아니라 과이도를 지지한다. 이는 문재인이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을 한 결과다.
따라서 문재인을 변호하고, 우파로부터 방어해야만 개혁을 추진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류다. 사안별로 반우파 공조를 취하더라도 (가령 선거제 개혁이나 5·18 망언 의원 징계 요구) 독자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진보층을 대변해야 한다. 오히려 지배계급의 분열을 활용해 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해 민주노총은, 정부가 말은 “선 비준”을 하겠다면서도 개악 내용을 담은 보완 입법안을 함께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물론 우파는 이조차 항의하겠지만, 그렇다고 문재인의 기만적 방안을 긍정적으로 볼 근거는 전혀 못 된다.
노동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노동기본권 협약 비준을 핑계로 개악안을 입법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저항하는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지, 국회에서 ILO 협약 비준안이 통과되길 기다리거나 자한당에만 맞서 개악의 주범 정부에게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