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문재인의 ILO 핵심협약 비준 방침은 개악을 위한 눈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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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단결권에 관한 ILO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완 입법은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포함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정부안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그에 따라 기존 노동법을 고쳐야 하므로 비준과 보완 입법을 국회에서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관련 보완 입법을 사회적 대화 형식으로 마련하라고 맡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5월 20일 합의안 도출 실패를 선언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노동조합의 기본권 사항을 노사간 협상, 즉 거래의 대상으로 삼게 한 것 자체가 사용자들에게 유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노조 인정 등을 약속하고는 단 하나도 지키지 않은 방식이었다. 실질적인 공약 이행 책임을 국회 입법 논의와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로 넘겨버리고는 남 탓만 해 온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약속한 비준을 미루는 사이에 해직이나 노조 불인정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했다. 전교조 불인정 같은 문제는 노동부 공문 한 장이면 해결되는 데도 말이다.
ILO 핵심협약의 취지는 이른바 노동3권 중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나머지 2권(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적 개혁 기구인 ILO조차 이런 핵심협약을 채택하고 보급해 온 것이다. 즉, 이를 보장한다고 해서 반대급부(가령 사용자 대항권)를 노동자들이 내줘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회나 경사노위의 보완입법 논의가 먼저라고 워낙 완강하게 주장해 왔기 때문에 5월 22일 노동부가 국회 비준을 일단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 마치 노동계의 요구인 “선(先) 비준”을 수용한 것처럼 보일 것도 같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노동부 발표를 “[핵심협약의] 선 비준”으로 해석하고 긍정 평가하거나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실수다. 정부 입장은 국회에 핵심협약 비준동의안과 보완 입법안을 동시에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밝힌 국회비준 동의안 제출 시점이 9월 정기국회이고 앞으로 넉 달이면 정부가 말한 보완 입법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
무엇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안 자체에 이미 개악안들이 포함돼 있고 이를 받아 민주당이 상급단체의 사업장 출입 제한 등 심각한 수준의 개악 법안을 이미 내놓은 상태이다. 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은 22일 발표만으로도 노동 편향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계 의견 수렴은 정부의 보완 입법안이 개악안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노동계가 요구한 건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으로 즉각 비준하라는 것이었는데, 자한당의 반대가 뻔히 예상되는 국회로 비준 책임을 떠넘긴 것도 정부가 염두에 둔 보완 입법이 개악이 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
강제노동 철폐를 담은 협약 105조가 국가보안법과 충돌한다는 등의 이유로 비준 대상에서 배제한 것도 이런 짐작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비준 먼저 할 수 없다’, ‘대통령 권한으로 비준할 수 없다’고 해 온 근거가 협약 비준으로 법 개정 사항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쉽게 말해,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법 개정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시작하는 이유를 EU의 통상 압력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 자체가 노동자를 무시하는 발상이다. 노동자들이 그토록 공약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 존중”은 그동안처럼 그저 말뿐인 것이다.
요컨대, 문재인 정부는 도저히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뒤늦게서야 비준 입장을 밝히면서도, 그 통과 책임은 국회로 미루고 내용조차 핵심협약 비준을 무력화시킬 개악안을 동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기만적 태도는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가 대정부 압박과 투쟁을 조직하기를 꺼리면서 정부와의 협력이나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기본권을 보장받겠다는 태도를 버리지 않아 온(즉 정치적으로 종속을 자처한) 것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미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개혁 성취 전략이 실패로 입증된 상황에서 교섭전략특위 같은 것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 사회적 대화 노선의 실패는 이미 올해 상반기 두 차례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확인된 것이다. 상황은 당시에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해 이를 관철시킨 좌파들이 경고한 대로 가고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대구본부, 경북본부, 전북본부, 충북본부 등이 정부의 ILO 비준 방침을 비판하고 민주노총 중앙의 경솔한 입장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지역 간부층에서조차 김명환 집행부의 희망 섞인 예측에 동의가 많지 않다고 밝힌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재차 확인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사기극”에 맞서 7월 파업 현실화 등 실질적인 총력투쟁 조직에 매진해야 할 때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힘이 향하면 헛되이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