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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안 주려고 폐업한 하청:
미소페 원청이 고용과 퇴직금 책임져라

수제화를 만드는 고령의 하청 노동자들이 5월 24일 원청인 미소페 본사(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주차장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하청 공장이 5월 14일 돌연 폐업을 했기 때문이다. 19명의 노동자들이 길게는 16년 이상 일하던 직장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날 미소페 원청이 해고된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퇴직금을 책임지라며 농성에 돌입했다.

5월 24일 오전 노동자들이 본사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순희 조직국장

노동자들은 7공장 사장이 “밀린 퇴직금을 주기 싫어서 폐업 통보 후 이틀 만에 먹튀”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퇴직금을 갖고 튀어라?

발단은 올해 3월이었다. 미소페 7공장(하청공장)에서 퇴사한 노동자 2명이 퇴직금을 요구했는데 업체는 지급을 거절했다.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소사장들이므로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출퇴근부터 업무 시간 모두 사측의 통제를 받았던 노동자들은 억울한 마음으로 법원에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다른 제화 노동자들이 제기한 퇴직금 소송에 대해 제화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것도 노동자들이 일말의 기대를 한 요인이었다.

결국 최근 1심 법원이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7공장에서 퇴직한 다른 노동자 11명도 퇴직금 소송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1인당 3천만 원에서 4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이처럼 제화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어지자 하청업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공장을 폐업해 버린 것이다.

5월 24일 오전 미소페의 원청 책임 이행 촉구 집회 중에 사측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이재환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폐업과 책임 회피에 원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폐업 때문에 퇴직금만이 아니라 일자리까지 사라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 시킬 때만 내 식구

그동안 원청 본사인 미소페는 직영 공장 없이 전부 하청공장을 통해 구두를 만들어서 백화점과 아울렛 등에 납품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퍼센트 성장을 했고 매출이 1050억 원에 이르렀다.

미소페 원청은 “미소페 7공장이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자체 폐업을 한 것”이라며 책임이 없다고 발뺌한다.

그러나 미소페 원청은 하청 공장들을 통제하고 지휘해 왔다. 지난해 8월 노조와 단체교섭을 시작할 때에도 하청 업체들에게 단체 교섭에 참여하라는 공문을 직접 발송했고, 단체교섭 시작에서 끝까지 교섭에 참가했다.

지난해 12월 미소페 1공장이 폐업을 하고 중국으로 이전 했을 때에도 고용 승계 협상에서도 원청이 관여했다. 당시 1공장 노동자 17명중 11명을 4개 하청업체에 분산 고용하기로 합의하는 자리에도 미소페 원청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미소페 7공장 폐업과 원청이 관련이 없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5월 24일 오전 노동자들이 미소페 사측의 원청 책임 이행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이재환

미소페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청제도를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노동권을 억누르며 착취율을 늘려 왔다. 노동자들이 원청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마디로 양아치”

제화 노동자들은 1997년 IMF 이후 도급제가 도입되면서 ‘소사장’(특수고용직)이란 이유로 4대보험 가입은 물론, 퇴직금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임금(공임)도 20년동안 제자리였다. 소사장이라지만 사측에서 출근과 퇴근을 통제하고 야근을 해야 했다.

제화 노동자들은 지난해 동종 업계의 제화업체인 ‘텐디’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을 계기로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지난해 미소페 원청 및 하청회사들은 노조와 단체교섭을 하고 임금(공임)을 한 켤레당 1000원~1300원 인상했다. 올해 4월부터는 4대보험과 퇴직금 관련 논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노조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난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7공장은 원청에서 일감을 많이 줘서 성수동에서도 잘나가는 공장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문 닫는 게 말이 되냐?”

“여태껏 노예처럼 부려 먹다가 공임 올려달라, 퇴직금 달라 하니까 폐업을 해버린 것이다. 우리를 허수아비로 본 것이다. 분이 안 풀릴 정도로 열 받는다.”

“40년 동안 구두를 만들어 왔는데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니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천막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남 부럽지 않게 잘나가던 공장이 퇴직금을 빌미로 폐업을 한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야비하다. 한마디로 양아치다”

“여기서 밀리면 성수동에서 제2, 제3의 폐업이 계속 나올 것이다.”

정기만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은 “미소페 7공장은 우리 제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다. 미소페 원청이 다음주 수요일(29일)까지 답변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백화점 내 미소페 매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 하겠다”고 했다.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서 인정 받지 못하고 퇴직금 조차 받지 못한 채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제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당하다.

5월 24일 오전 노동자들이 미소페 사측의 원청 책임 이행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이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