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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 의혹:
‘공정’과 ‘정의’보다 계급 불평등이 문제다

“그들만의 리그” 드러나다 말로는 촛불 계승, 특권 물려주는 데는 구 적폐 세력과 매한가지 ⓒ이미진

검찰이 8월 27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사모펀드 투자 관련 의혹, 딸의 입시 특혜 의혹 수사를 명목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박근혜 정권을 수사하며 얻은 국민적 인기를 배경으로 일약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이 이 수사를 직접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다음 달 자신들의 직속상관이 될 수도 있는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권 실세를 검찰이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국 후보자의 여러 의혹 때문에 임명 반대 여론이 커지고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와 민주당 지지율이 확연하게 하락한 시점이었다.

구 여권 적폐 청산에 대한 높은 지지 여론을 바탕으로 검찰 수사를 앞세워 인기와 지지를 유지해 온 정권에서 검찰이 정권 실세의 부정 의혹을 수사하고 나선 것은 시사적이다. 검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임기 후반 권력기관 단속은 쉽지 않게 됐다.

설사 검찰이 조국에게 면죄부를 주더라도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검찰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정치적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사례에서 드러났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으로 불거진 대미 관계 균열, 수출 경제 위험 증대, 불안정 고조 등의 문제로 위기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노동계급의 불만(배신감)도 자라나고 있다. 지배계급이 박근혜를 버리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 것은 사회적 대화 방식을 통한 정치적 안정 속에서 복합적 위기에서 지배계급을 지켜줄 조처들을 추진해 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 관리에 무능하다면 지배계급도 이 정부를 존중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권력투쟁도 더 첨예해지고 있다.

그래서 검찰 통제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문재인이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동안에도 민주당은 우파 야당의 거센 반대를 오히려 조국을 반드시 장관에 임명해야 할 이유로 삼아 왔다. 조국이 이 정부의 ‘개혁’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처신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여야 간 권력 투쟁은 더 격렬해질 듯하다. 진보 개혁적 노동계급의 지지를 잃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는 어려운 싸움이다. 검찰조차 조국의 통제를 안 따르겠다고 한 마당이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조국 인사청문회를 더 미루려는 것은 나날이 반대 여론이 커지는 조국 임명 문제로 문재인의 정치적 부담을 키우려는 책략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8월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정의당과 진보진영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약하게도 위기일 때만 조그만 개혁 요구에 호응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이 지금 싸우는 게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여/야 진영논리가 아니라 계급 관점의 접근이어야

일각에서는 조국이 검찰 수사나 청문회로 위법 혐의를 벗으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조국 의혹 사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조국에 대한 서민층의 경악과 분노는 촛불 운동을 계승하겠다고 한 정권의 실세가 실제로는 재산을 불리고 물려주는 과정에서 구 적폐 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계급 불평등 현실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자녀 세대에게 경제·사회적 지위(학벌, 경력, 직업, 재산)를 물려주려고 벌인 일들은 이 사회 “그들만의 리그”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정의당 의견그룹 ‘진보너머’도 이와 유사하게 상황을 규정했다. ☞ 바로가기)

조국은 진보적 가치와 양심을 부르짖던 “강남 좌파”(진보적 ‘언행’을 하는 특권층을 비유하는 말)로 불려 왔는데, 그의 경우에는 ‘좌파’가 아니라 ‘강남’에 존재의 본질이 있었던 것이다.

조국 후보자 일가가 자신들이 소유·경영한 사학재단 웅동학원과 재산 분쟁을 벌인 일, 알고 보니 일가친척만의 돈놀이였던 사모펀드 등은 (드러난 것만 놓고 봤을 때) 세금 등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사유 재산을 불리고 상속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여느 지배자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사모펀드 투자 시점은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따라서 권력을 통해 얻은 정보나 지원이 투자 과정에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합리적이다.

조국 딸의 논문 의혹은 상류층 학생들이 어떤 학교에 집결하는지, 또 그렇게 모인 아이들의 입시를 부모들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특권을 행사해 돕는지를 드러냈다.

서울의 한 사립 외국어계열 특수목적고(“특목고”)에 다닌 조국의 딸이 고교생 신분으로 단국대 의과대학의 연구 논문 프로그램에 인턴으로 참여한 것은 재학생 부모들의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 대표적인 상류층(상층 중간계급까지 포함된) 전문직 부모들이 서로의 자녀를 인턴으로 받아 가며 품앗이 지원을 한 것이다. 문제의 단국대 의대 교수의 자녀도 조국 딸과 고교 동기였다. 여기에 제1저자 등재라는 혜택까지 입은 것이다. 이런 도움을 받아 외국어계열 특목고 학생은 명문대 자연계 학부를 거쳐 현재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한 것이다.

“개천의 붕어”

노동자·서민층 사람들은 대학 입학을 위해 이런 종류의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다. 아마 대다수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자립형사립고 등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겠지만 말이다.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 업무, 공장 제조 라인, 건물 경비, 마트 캐셔 일을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명문대 지원 자기소개서에 넣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 체험을 나열하고서 “고교 시절부터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과 실습 경험을 갖춘 인재를 놓치는 것은 … [미래의 인재를] 놓치는 것”(알려진 조국 딸 자기소개서에서 인용)이라고 당당하게 쓸 수 있을까?

사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상상해 봐도 별 도움이 안 될 텐데, 일단 그런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경쟁에서 차별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한 전문직과 달리 노동자 직업 체험을 하려면 부모가 아니라 사용자의 허가부터 받아야 한다.

친문 인사들의 뻔뻔한 옹호와 달리, 이런 과정들이 ‘합법’이라고 해도 분노를 경감시키긴커녕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그것들이 합법이라면, “그들만의 리그”가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민층 자녀들은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박탈감이 이른바 “국민 괘씸죄”의 배경이다.

조국은 7년 전에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 예쁘고 따뜻한 개천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했다. 이제 보니 용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 “붕어, 가재, 개구리”로 계속 살아가라는 격려였나 보다. 즉, 서민층 청년들과 상류층 청년들은 애초에 계급이 다른 것이다. 문재인 아들 문준용이 어리석게도 조국 딸을 공개 응원한 것도 동류 의식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조국 본인이 부와 권력보다 진보적 가치와 양심을 더 중시하라고 설파해 온 온건한 ‘진보 지식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개혁 촛불 정부를 표방해 놓고는 실제로는 박근혜 적폐를 실천하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똑 닮았다. 이러니 조국의 위선은 청년 세대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그동안 ‘우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한국당이 돌아온다’고 사람들을 겁주며 지지층 결속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민주당에게 ‘너희가 한국당과 다른 게 뭐냐’고 묻기 시작했다. 계급 간 불평등 현실에서 수혜를 입는 계급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양당 간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조국 의혹이 상징적인 이유다.

한국당 같은 뻔뻔한 우파가 민주당의 위선을 이용해 기층의 정당한 불만을 가로채고 이를 반우파 정서와 지형을 깨는 도구로 쓰기 전에, 노동운동은 훤히 드러난 계급 불평등 현실을 비판하고 정당한 분노를 대변해야 한다. 당면한 노동개악에 맞서는 투쟁과 연결시켜서 그렇게 할 수 있다. 당연히 조국을 옹호하면서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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