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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쓴 윤모 씨 등:
경찰과 검찰이 망가뜨린 많은 삶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 씨가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윤 씨는 1988년 13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드러나면서 그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윤 씨의 재심은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의 재심을 맡아 무죄 판결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그는 공동변호인단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하루빨리 윤 씨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란다.

윤 씨는 체포 당시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21살 청년이었다. 윤 씨는 경찰에게 “자백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고 최근 밝혔다. 경찰은 또한 사흘 동안 재우지 않았고 원래 다리가 불편한데도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다른 수감자가 차라리 경찰 말대로 하고 감형을 받으라고 한 조언을 듣고 1심에서 범행을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의 조력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중퇴했던 터라 수천만 원의 변호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2심부터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경찰 조사 당시의 자백만을 인정했다.

화성 연쇄살인은 1986년 9월 최초 발생해 10명이 넘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으로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자 전두환 정부는 무지막지한 수사를 벌이게 했다. 수사 대상자만 2만 1280명이었고, 용의자로 조사받은 사람도 무려 3000명에 이른다. 윤 씨처럼 경찰 강압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가, 나중에 일본에서 DNA 감정으로 누명을 벗은 사람도 있었다. 용의자로 몰린 이들 중 4명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 또는 자살 기도를 했다.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더 많을 것이다.

가난하고 천대 받는 이들을 속죄양삼는 경찰·검찰의 행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당시 전두환 정권의 진정한 관심은 독재 정권을 위협하던 대중 투쟁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경찰력을 대학·거리 시위와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는 데 총동원했다.(영화 〈살인의 추억〉은 초반부에서 이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백골단(경찰특공대 산하의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특별 사복경찰 부대로, 은빛 헬멧을 썼다고 해 시위대들이 경멸적으로 붙인 별칭)이 악명을 날렸는데, 이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시위대와 파업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한국의 형사사법(수사·기소·재판) 기관들은 철저하게 독재 정권을 비호하고 정권 비판자들을 탄압했다. 1987년 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가 고문을 받다 숨지자, 검찰과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무고한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고, 허위 자백을 했으며, 감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책임자들 누구도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 그런 기관들 덕분에 권력과 부를 누린 자들이 서로서로 감싸줬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간첩조작 사건을 진두지휘한 검사 김기춘은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이 됐고, 애먼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18년 옥살이를 시킨 판사 출신 여상규(자유한국당)는 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됐다. 그는 반성하기는커녕, 그 사건에 “책임을 느끼지 못하나?” 하는 기자의 질문에 “웃기고 앉아 있네”라고 막말을 늘어놓는 후안무치함을 보였다.

재심

한국 정치 체제가 권위주의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한 뒤에도 이 억압 기관들에 의한 피해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사사법 과정의 피해는 단지 군사독재의 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런 기관의 본질 자체가 폭력적이다.

2002년 김대중 정권 때는 서울지검 특수조사실에서 살인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밤샘 수사, 고문 수사 끝에 일어난 일이었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상담한 검·경의 인권 침해 내용 중 ‘불리한 진술 강요, 심야·장시간 조사, 편파·부당 수사’ 유형이 가장 많았다(검찰: 1678건, 경찰: 6427건).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의 폭력 앞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고, 범행을 인정하면 조금이라도 형량이 줄어들 것 같아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에서는 합법적 형기 거래 제도인 플리 바겐이 이런 압박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제대로 된 변호인도 구할 수 없는 가난하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의 말을 경찰, 검사, 언론, 판사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자포자기 심정이 됐을 것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재심 개시 사건의 53퍼센트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경의 강압적 수사와 이로 인한 허위 자백, 법원의 엘리트적 편견에 가득 찬 판결이 만든 결과다.

그중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과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으로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1999년 경찰은 전북 삼례의 한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강도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10대 소년 3명을 체포했다. 세 명 모두 가난했고 부모나 본인이 장애인이었다. 둘은 초등학교 졸, 한 명은 중졸이었다. 배가 고파 돈을 훔쳤다가 소년원에 다녀온 전과가 있다는 것이 용의자 지목의 배경이었던 듯하다. 경찰은 글을 쓸 줄 모르는 그에게 “보고 그려” 하는 식으로 허위 자술서를 쓰게 했다.

당시 담당 검사는 이들이 지능이 낮아도 범죄 지능은 발달했다는 편견 가득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사건 1년 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음을 알게 된 피해자는 자기 때문에 청년 셋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 탄원서를 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범들이 붙잡혔지만 검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범과 대질시켜 범행을 자백하는 진범더러 너희는 범인이 아니라고 하고, 누명을 쓴 3명에게 범행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이 일을 벌인 최성우 검사는 나중에 김앤장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됐다.

2000년 전북 익산에서 택시 기사 살해 혐의로 배달 일을 하던 15세 소년이 체포됐다. 그는 범인의 뒷모습을 본 목격자였다. 그러나 오히려 익산 경찰은 이 소년을 범인으로 몰았다. 경찰은 소년이 범행을 인정할 때까지 때리고 또 때렸다. 공장의 가난한 노동자였던 어머니는 억울했지만 아들을 구제할 방도가 없었다. 나중에 진범이 군산 경찰에 잡혀 자신의 범행을 네 번이나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군산 경찰은 ‘동료애’를 발휘해 수사를 중단시키고 진범을 찾아낸 형사반장을 파출소로 발령내어 그곳에서 정년퇴직하게 했다. 이 사건을 맡은 형사들은 포상을 받고 승진했다. 진실을 은폐한 검사 정종화, 김훈영은 문재인 정부에서 영전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수사 맡은 경찰, 기소한 검찰, 판결을 내린 법원이 모두 서로의 ‘위신’을 ‘배려’해 더는 들쑤시지 않고 진실을 계속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탈북민도 종종 수사기관의 타깃이 됐다. 2013년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화교 출신 탈북민 유우성 씨는 탈북민들의 정보를 북한 정부에 넘겼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증거 조작과 국정원이 유우성 씨 동생의 허위진술을 강요하며 협박·폭행을 한 일이 밝혀지며 무죄가 선고됐다.

2008년 검찰·경찰·국정원·기무사가 떠들썩하게 발표한 탈북자 원정화 간첩 사건은 대법에서 간첩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 사건 수사를 처음 시작한 경기도경 보안수사대장이 10년 넘게 공안기관의 조작을 주장하고 보수 매체인 〈신동아〉가 이를 보도했을까. 이 수사관은 이후 자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누명 2009년 검찰은 용산 철거민들에게 경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죽음의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이윤선

적반하장

2009년 쌍용차 공장 점거 파업에 참가했다가 나중에 자살을 시도한 조합원은 유서에서 경찰의 회유 공작을 폭로했다. 거짓이라도 자백하면 원직복직을 시켜 주고 부인하면 구속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파업 대열을 살인적으로 진압한 것으로도 모자라 노동자들의 생계를 두고 거래하려 한 것이다. 이 노동자는 ‘동료들을 팔아먹었다’는 가책을 깊이 느끼다 그런 비극적 시도까지 하게 된 것이다.

같은해 검찰은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으로 철거민들을 죽게 한 경찰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 책임을 철거민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검찰은 재판을 위해 3000쪽이 넘는 수사 기록을 피의자와 변호인에게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도 거부하며 버텼다. 2019년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검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적반하장으로 법적 대응을 암시하며 검찰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찰·검찰 같은 선출되지 않은 수사·정보 기관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억압 기구로서 체제를 지키는 구실을 한다. 그런 국가기구는 (다른 여러 억압 기구들과 함께) 법·질서의 이름으로 폭력 행사를 독점한다. 이를 통해 권력과 체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단속하고 억누른다. 이들의 본질적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의 ‘민생 치안’이 아니다. 경찰 내에서조차 교통과가 하바리 보직으로 취급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기능을 가진 형사사법 기관들을 갖고 있다. 이 나라들에서도 조작·은폐 문제가 흔히 벌어진다.

예컨대, 미국의 한 사회단체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 주자며 1992년부터 실시한 ‘결백 프로젝트’로 350명이 넘는 수감자가 풀려났다. 그중 20명이 사형수였다(2017년 기준). 최근 영국에서는 마약 범죄 증거들이 조작됐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기관들이 진실과 평범한 사람들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기관들은 “공권력”이 아니라 지배자들의 ‘사권력’으로 불리워야 한다.

억울하게 인생이 짓밟힌 피해자들은 구제받아야 하고, 책임자들은 처벌받는 것이 정의다. 사법기관에 의한 피해가 더는 없으려면 노동자 운동이 이런 기구를 필요로 하는 체제 자체를 조준해야 한다.

추천 도서: 《지연된 정의》(2016, 후마니타스)는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 등 검찰과 경찰에 의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된 무고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히 그리고 있다. 이 사건들의 재심과 무죄를 이끈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가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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