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영화평:
국가 권력의 공모와 폭력으로 진실을 가둔 사건을 폭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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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나라슈퍼 사건’(삼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년들〉(감독 정지영)이 개봉한다.
삼례 사건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슈퍼에 3인조 강도가 들어 현금과 패물을 훔치고 슈퍼 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 지 9일 만에 무고한 청년 세 명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다. 경찰은 이들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고 증거를 조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현장 검증에서도 경찰은 폭행과 욕설로 원하는 행동을 주문했다.(당시 현장 검증 영상도 남아 있다.)
연출된 현장 검증이라는 걸 자백하듯 또 다른 경찰이 낄낄대며 말한다. “니가 감독이냐? 얘는 탤런트고.”
검찰은 경찰 수사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기소했다.
불과 1년 뒤 검찰은 제보를 받고 진범을 찾아냈다. 그에게서 진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진술과 자백까지 받았지만 검사는 진범을 무혐의 처분해 버렸다.
그는 처음 세 청년을 기소한 검사이기도 했다. 자기 실수를 덮으려 한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 유가족도 범인 지목부터 현장 검증 등 수사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유가족의 제기마저 무시했다.
유가족은 여러 증거와 정황상 진범은 세 청년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판사도 이를 무시했다.
법원도 세 청년이 억울하게 수 년간 옥살이를 하게 한 공범이었다. 세 청년은 3년 6개월에서 5년 6개월을 복역했다.
결국 이 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17년이 지나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가족과 세 청년이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다시 싸운 덕분이었다.
영화 〈소년들〉은 이런 삼례 사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왕따
한편, 현실의 삼례 사건에는 주인공 황준철 반장(설경구 분) 같은 경찰은 없었다.
아마도 극적 연출을 위해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끌어내는 데 핵심적 공헌을 한 황상만 반장 캐릭터를 빌어온 듯하다.
약촌오거리 사건도 삼례 사건과 비슷하게 국가 권력이 애먼 청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징역을 10년이나 살았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었다.
영화에서 황준철은 작중 삼례 사건의 진범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경찰청 수사계장 최우성(유준상 분), 담당 검사(조진웅 분) 등 사건 조작의 주범들과 정면 대립한다.
최우성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제 나 하나가 아닌 조직 전체를 배신한 적이 된 거요. 12만 경찰 전체를 적으로 만든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살 수나 있겠어?”
최우성의 말대로 황준철은 진범을 잡은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좌천되고 결국 파면된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황상만 씨도 비슷하게 조직 내 왕따와 보복을 당했고, 2014년에는 결국 경찰을 그만둬야 했다. 진실을 밝혔음에도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경찰, 검찰 기구가 얼마나 억압적이면서도 관료적이고 부패한 조직인지 잘 보여 준다.
삼례 사건에서(약촌오거리 사건도 마찬가지) 범인으로 지목된 세 청년은 모두 하층 노동계급으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었다. 매우 가난해 자주 배를 곯았고 그 때문에 먹을 것을 서리하다 절도 전과가 생겼다.
셋의 당시 학력은 두 명이 중학교 중퇴, 나머지는 중졸이었다.
이 중 두 명은 부모에게 장애가 있었고 그 자신도 지적 장애가 있었으며,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검경이 보기에 세 청년은 범인으로 몰기 적당했고 또 이에 저항하기 어려우리라 봤을 것이다. 검경 자신의 뿌리 깊은 계급차별적 편견이 작용한 것이다.
중학교 중퇴
이처럼 사법 기구가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은 명백히 계급 차별적이다.
경찰, 검찰 같은 자본주의 사법 기구는 자본주의 질서를 대중에 강제하기 위한 억압 집단으로서 지배계급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그 기구의 주된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 기구의 소속원들이 하찮은 하층민 한둘 두들겨 패 감옥에 보냈다 해서 벌을 주는 건 기구의 목적에도 맞지 않고 (조직 유지에 꼭 필요한) 소속원의 충성심만 약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 어렵다는 재심을 통해 결국 무죄 판결까지 났음에도 삼례 사건에 연루된 경찰과 검찰 누구 하나 징계도 처벌도 받지 않은 이유다.
영화 〈소년들〉은 이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많은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영화다.
인터넷에서 사건명으로만 검색해도 많은 글이 나오는 사건이지만, 가급적 영화 감상에 방해가 덜 되도록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기를 바라고, 또 보고 나서 국가 권력과 사법 기구의 본질에 대해 친구, 동료와 함께 토론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개봉일은 오는 11월 1일(수)이다.
삼례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등에 대해 더 상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지연된 정의》(2022, 박상규, 후마니타스)를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