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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추천 도서 《지연된 정의》를 읽고:
경찰·검찰 그리고 법원이 만들어 낸 가짜 범인들

본지 301호에 실린 기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누명을 쓴 윤모 씨 등 — 경찰과 검찰이 망가뜨린 많은 삶들’에서 추천된 책 《지연된 정의》(2016, 후마니타스)를 읽고 대학생 독자가 보낸 서평이다. 

“형사 사법의 최고 이상과 목표는 실체적 진실 규명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오판을 할 수 있다.” ( 《지연된 정의》, 315쪽)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안타까운 사람의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드문 사례로 소개되고,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오판의 운 없는 피해자로 여겨진다. 수사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 고문과 폭행은 소수의 일탈로 치부되기도 한다. 개인의 결함이지 조직의 결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법원, 경찰, 검찰의 순기능을 위해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지음, 후마니타스

그러나 이 책이 소개한 세 사건(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은 이런 주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 사건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재심으로 누명을 벗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둘째 공통점은 시민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한다는 경찰·검찰·법원이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사회 가장 변두리에 있는 약자들을 가차 없이 희생시킨 사례라는 것이다.

수사기관들은 온갖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가짜’ 범인을 만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몽둥이로 때려서 허위 자백을 받아 내고, 글을 못 쓰는 지적장애인에게 허위 진술서를 따라 그리도록 하고, 조서를 조작하고, 피의자의 나체 사진을 가지고 협박했다. 검사는 진범을 찾고도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범과 가짜 범인을 대질해서 가짜 범인에게 허위 자백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가짜 범인이 너무 가여워서 진범이 눈물을 흘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찌나 황당하고 가슴 아픈지 많은 독자들은 아마 헛웃음이 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은 일사천리로 이뤄졌지만 그들이 재심을 거쳐 구제받기까지는 십수 년이 걸렸다.

이들은 한패였다

세 사건 모두에서 수사기관인 경찰·검찰과 법원은 자신의 무능과 오점을 감추려고 함께 움직였다. 그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기구들이 공모한 것이다.

한 ‘선량한’ 형사의 사례가 이 점을 잘 드러낸다.

황상만 형사반장은 약촌오거리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듣고 수사를 진행했다. 용의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용의자와 그를 도운 친구도 함께 범행을 자백했다. 용의자는 다섯 번이나 자백했다. 진술 내용도 사건 정황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황 반장이 진범을 잡은 것이다.

황 반장은 수사 내용을 수사과장과 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검사에게도 영장 청구를 요청했다. 그러나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수사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주변에서도 황 반장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황 반장은 약 1년 동안 1000만 원이 넘는 사비를 털어 사건에 매달렸다. 범행을 자백했던 용의자는 검사가 자신을 구속하지 않자 어느 순간부터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황 반장은 결국 지구대로 좌천됐다.

황 반장은 공저자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첩보를 입수하고 군산경찰서 서장, 수사과장 등 모든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했어요. 이걸 수사하느냐 마느냐 고민이 컸지. 3년 전에 익산경찰서가 체포한 가짜 살인범이 교도소에 있잖아. 근데 우리가 진짜 살인범을 잡으면 여러 사람이 난처해지지. 엉뚱한 범인을 잡은 경찰과 검찰, 그 아이에게 10년을 선고한 판사 …

“보통 경찰서장은 해당 지역 사람이 하거든요. 근데 느닷없이 경찰청 본청 간부가 군산경찰서장으로 와서 나를 지구대로 보내더라고. (중략) 그때 비수사 부서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금방 복귀했거든. 근데 나는 끝까지 복귀시키지 않더라고요. 내가 여러 번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도.”

수사기관과 검사는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진범을 풀어 줬다. 결국 그들 잘못으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열다섯 살 소년은 진범이 잡혔는데도 풀려나지 못했다. 자기 안위를 위해 어린 소년을 교도소에 가두는 것쯤은 이들에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처럼 누명을 쓴 사람들을 재심으로 구제하는 ‘재심’ 프로젝트는 사법계에서 꽤 이례적인 사례들이다. 재심이 인정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고 절차도 굉장히 복잡하다. 국가기구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례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에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모 씨가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국가기구들이 작정하고 공모해 조서를 조작하고 구타로 입막음하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 책이 다룬 세 사건의 주인공들도 퇴직한 기자와 파산 직전 변호사가 몇 년에 걸쳐 달려들어서 겨우 구제할 수 있었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람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조차 없는 최하층의 사람들임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삼례 슈퍼 살인 사건과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에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은 하층 청소년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구타하고 위협해 허위 자백을 받아 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사회적 약자에게 유독 더 비정했던 것이다.

함께 토론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사기관과 법원의 존재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이 기관들이 부패하긴 했어도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고쳐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서초동 집회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이런 상식에 도전해야 하고, 선출되지 않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억압 기구로서 체제를 지키는 구실을 한다는 점을 봐야 한다. 그리고 주변을 설득하려 애써야 한다.

이런 토론이 효과적이려면 국가기구가 부패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각 분리된 듯 보이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실은 하나의 일관된 목적을 위해 함께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이 기구들의 목적은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체제와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권력자와 기업주들이 성가시지 않으시게 쳐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선량한 개인이 이 기구들의 근본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공상적이다. 황 반장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선량한’ 개인은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기구에 흡수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애먼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경찰이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엉뚱한 사람 집에 무단 침입해서 가짜 증거를 모아다 조서를 조작하고, 그 과정에서 가져온 가짜 범인의 누드사진을 동료들과 돌려본 일 등에 대한 온갖 폭로를 보다 보면 열불이 나서 중간에 책을 던져 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분통 터지는 일들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진득이 읽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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