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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민 자진출국 대책:
공수표 받고 떠나라는 압박

최근 미등록 이주민이 크게 늘고 있다. 2008년 이래 16~20만 명 수준이던 미등록 이주민은 2016년부터 급격히 늘어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39만 명에 이르렀다. 전체 이주민 대비 미등록 이주민 비율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6퍼센트를 넘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10일 새로운 미등록 이주민 감축 대책을 발표했다. 미등록 이주민이 올해 6월 30일까지 자진출국하면 재입국 기회를 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정부는 기존의 자진출국 제도가 범칙금을 면제하고 입국금지 기간을 완화해 줬지만, 자진출국 후 비자 발급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미등록 이주민을 출국시키는 효과가 적었다고 본다. 아마 정부가 미등록 체류 경력이 있는 이주민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도 그 목적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를 일정 수준까지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재입국이 보장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정부가 내놓은 자진출국 이후 조처들은 공수표나 다름 없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살인적인 미등록 이주민 단속이 계속돼 왔다 2019년 8월 고용허가제 15년 규탄 이주노동자 대회 ⓒ조승진

정부가 자진출국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발급해 주겠다는 비자들은 취업이 허용되지 않거나(단기체류, 어학연수, 기업투자 비자 등) 체류기간이 짧아서(3~5개월 계절근로 비자) 안정적 체류 보장과 거리가 멀다.

자진출국하면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하겠다지만 이미 이 시험에 통과하고도 취업을 기다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고용허가제는 나이 제한(40세 미만)도 있다.

게다가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25일 태국 노동부와 ‘불법체류 감소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서 미등록 체류자 정보를 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입국을 금지하지는 않더라도 태국 정부가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서(혹은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여권을 발급하지 않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토록 문제 투성이 유인책을 내놓고는 단속을 강화하려고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시행한 뒤 올해 7월부터 “전국적·범정부적인 단속 체계를 구축,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2020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 계획’을 발표해 상반기 중 대규모(규모 100억 원 이상) 공공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래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랑곳 않는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많은 고용주들이 자신의 부담을 내세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계획은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끔찍하게 만들 내용으로 가득하다.

차별과 억압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문제 집단이기는커녕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있다. 제조업과 농·어촌의 상당 부분이 이주노동자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도 “현실을 감안해” 고용주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을 자진신고하면 범칙금과 고용허가제 고용제한을 면제해 주겠다(제조업)거나 고용주와 지자체의 추천을 받고 자진출국하면 계절근로 취업기회를 부여하겠다(농·어촌)고 한다.

정부의 협박 ⓒ임준형

그러나 정부는 한사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는 피하고 있다. 사업장 이동을 금지하는 현대판 노예제인 고용허가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 제도를 이탈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가혹한 처우를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억압해서 얻을 이윤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릴수록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하향 압력을 받는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건설현장 등 취약계층 국민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며 이번 대책을 정당화한다. 완전한 책임 떠넘기기이다. 그러나 일자리 부족은 주로 경기변동과 정부 정책 때문이지(톨게이트 노동자 대량해고를 보라) 이주노동자 탓이 아니다.

한편, 정부는 아세안 국가 출신 미등록 이주민이 너무 많아서 “신남방정책과 관광객 유치 등 국익을 위한 개방정책 추진”이 어렵다고 불평한다. 관광 목적의 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체류하는 이주민 수가 늘고 있며 이주민들을 탓하고 있다.

그러나 신남방정책을 이용해 자본은 비교적 쉽게 국경을 넘는다. 지난해 한-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반동적 우파 엘리트 정치인인 필리핀의 두테르테를 포함해 각국의 정상들은 환대받았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기여를 인정하고 이들을 합법화해야 한다.

고(故) 자이분 프레용 산재 사망

혹사 당하다 억울한 죽음 맞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취약한 체류자격 때문에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는다. 지난해 11월 이를 비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건설폐기물 처리 업체 ㈜대아산업에서 일하던 태국 이주노동자 자이분 프레용 씨가 컨베이어 벨트의 이물질을 꺼내려다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관광비자로 입국한 33세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반복되는 죽음의 ‘외주화’와 ‘이주화’ 김용균의 어머니를 만난 프레용 자이분의 아버지 ⓒ임준형

대아산업의 2018년 매출액은 동종업계 상위 10퍼센트였다. 같은 해 영업이익만 40억 원이 넘는다. 그러는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끔찍하게 쥐어짜였다. 자이분 프레용 씨는 하루 10시간씩 주 6일을 일했지만 고작 월 140만 원을 받았다. 최저임금 미달액과 연차수당 미지급액을 합하면 1200여만 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단속의 두려움 때문에 공장 주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아산업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8명이 더 있었다(내국인 노동자는 9명).

3000만 원에 합의하자는 사측의 뻔뻔한 태도에 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자이분 프레용 산재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한국에 온 유가족들과 함께 싸웠다. 해를 넘기며 한 달 가까이 싸운 결과 1월 8일 협상을 타결하고 1월 10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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