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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 천국 미국의 끔찍한 코로나19 현실

필자 이예송은 미국 캘리포니아주·텍사스주 등에서 4년 가까이 거주했다.

나는 3월 16일에 미국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8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한 후, 파트너와 여섯 살 아들과 함께 (당시 권고사항은 아니었지만) 자가 격리를 했다.(이후 감기 증상이 생겨 아들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나는 2월 중순부터 불안감에 시달렸다. 미국은 민간의료 위주라 의료 환경이 턱없이 열악하기 때문에 의료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싸다. 비효율도 너무 심해 의사 한 번 만나기도 힘들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특히 나처럼 보험이 없거나 보장성이 극히 낮은 보험 대상자인 미국인 5분의 1에게는 더한층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독감과 다를 바 없다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만 집중했지 방역에는 열의가 전혀 없었다. 모든 일상이 똑같이 돌아갔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매진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했고, 직장인들은 직장에 출근해야 했고, 나는 장을 보러 다닐 수밖에 없었다.

3월 중순이 되자 내가 거주하던 캘리포니아주(州)에서도 확진자가 늘었지만, 진단 키트가 없어서 증상을 호소해도 검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며 애초에 검사를 거부당했다. 심지어 거의 죽을 듯한 증상이 있는 사람조차 검사를 거부당했다.

어찌어찌 검사를 받아도 검사비가 약 500만 원이 청구된다. 보험으로 일부 공제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도 본인 부담금으로 약 160만 원을 내야 해, 많은 사람들이 검사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다.

그 와중에 신문에는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스포츠 스타 누구, 정치인 누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유일한 방법은 부자들 얼굴에 기침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쓰디쓴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 떠돌 정도였다.

나중에야 캘리포니아주정부가 검사비를 무료로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이는 보험 가입자들의 본인 부담금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 특히 미등록 이주민들은 (단속추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나마의 혜택도 전혀 받을 수 없다.

4300만 원

만약 증상이 심해서 입원이라도 하면 수천만 원이 청구될 판이다. 보험 가입자라 해도 치료비를 빼고도 입원비만 보험 보장 범위에 따라 하루에 수십~수백만 원을 내야 하고, 응급실 이용료 220만 원도 별도로 내야 한다. 심지어 병원 건물 안에 들어갈 때 시설 이용료까지 내야 한다! (보험 미가입자는 이보다 훨씬 많이 부담해야 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젊은 여성이 입원 치료를 받고 의료비로 4300만 원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얼마 전 17살 한국계 미국인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한 것도, 의료보험 미가입자라는 이유로 병원이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병원에 갈 생각을 아예 접었다. 약국에는 감기약이 동났고 ‘코로나바이러스 자가 치료법’이라는 것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미국 뉴욕의 한 병원 앞에 줄지어 선 냉동 트럭의 내부 모습.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이 놓여 있다 ⓒ출처 버즈피드

〈뉴욕 타임스〉는 이런 소식도 전했다. ‘남편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 밤새 열이 나고, 이불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기침을 하다 피를 토해도, 병원은 병상이 부족하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때나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간호하면서 자신과 딸이 전염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만약 자신과 남편이 입원하게 되면 딸을 누가 돌봐줄 수 있을지 걱정하다 잠을 못 이루기 일쑤다.’ 나도 남편과 아이 외에 다른 가족 없이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혹시 나와 남편 모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우리 아이를 누가 돌봐줄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미국 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간호사와 의사를 위한 보호장비도 너무 허술하다. 의사·간호사들이 SNS에 개별적으로 마스크 기부를 호소할 정도다.

도대체 이 모든 일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현금 1200달러(약 150만 원)를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시 모두 원룸 월세가 250만 원 꼴이다. 보험료도 4인 기준 매달 220만 원 이상 내야 한다.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어져 해고된 사람들도 많다. 도대체 기업을 지원한다며 퍼붓는 돈, 국방비로 쓰는 돈, 그 많은 돈을 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없나?

이런 상황이라 사재기가 심해지기도 했다.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음식을 쌓아 두고 칩거할 생각 때문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행동을 이기적이라 비난하지만, 완전한 위선이다. 사재기가 정말 문제라면 왜 정부가 식량을 배급하지 않았는가? 총기까지 사재기할 정도로 불신이 극에 이르렀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바로 정부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 부르고, 주류 언론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다룬 기사에 마스크 쓴 동양인 사진을 첨부한다. 이 때문에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공격이 늘었다. 동양인들이 길거리에서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릴 희생양이 필요해 이런 차별을 부추기는 것이다.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가리는 인종차별에 맞서야 한다.

저항

이런 상황 때문에 곳곳에서 상호부조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동네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해열제를 나눠 주고 먹을 것이라도 문 앞에 놓기 위함이었다. 힘든 시기에 정부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려 스스로 연대를 조직했다. 이런 네트워크가 앞으로 정부 대응에 반대하는 저항의 네트워크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속해 있던 미국의 반자본주의 단체 ‘마르크스21’도 네트워크에 함께하고 있다. ‘마르크스21’은 코로나바이러스 무료 검사, 무료 치료,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제정, 의료 보호장비 생산을 위한 생산의 사회적 재배치, 유급 병가 보장, 월세 면제, 강제퇴거 반대, 인종차별 반대 등의 요구를 내걸기도 했다.

노동자들도 싸우고 있다. 얼마 전 비행기 엔진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노동자들은 일감이 없어 해고될 위험에 처하자 엔진 공장을 인공호흡기 생산으로 돌리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뉴욕시와 로스엔젤레스시에서는 지방정부가 휴교령을 회피했을 때 교사노동조합이 이를 강제했다. ‘아마존’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계속 일하라고 지시한 사측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간호사들이 의료 보호장비를 확충하라며 시위를 벌였고, 피츠버그시의 청소 노동자들도 작업장 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싸웠다.

노동계급은 사람의 목숨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를 바꿀 힘과 잠재력이 있다.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노동계급 투쟁의 일부가 돼 투쟁을 고무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느냐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죽고 살지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