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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③:
노동자 통제와 사회주의

최근 코로나19 위기와 그것이 심화시킨 경제 위기에 대응해 각국 정부가 경제에 개입을 강화하고 있고, 국유화를 거론하는 곳들도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이전 글 “국유화와 사회주의”에서 다뤘듯이 국유화 확대가 곧 사회주의인 것은 아니다. 이 글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이언 버철이 쓴 것으로, 노동자 통제가 사회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설명한다.

노동자 통제의 잠재력을 보여 준 러시아 혁명 시기 소비에트 1918년 전국 러시아소비에트대회에 파견된 한 지구 소비에트(Venevsky)의 대표자들

솔직히 당신이 하는 일은 윗사람보다 당신이 더 잘하지 않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틀림없이 십중팔구가 코웃음 치며 “물론이죠” 하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양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무엇을 생산하고 제공할지 결정한다.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지하는 사람들도 사회주의를 국가 소유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숱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드러났듯,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도 [2008년 금융 위기로 체제가 위기에 빠지자] 거대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인수하는 등 일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영국 보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를 두고 “시장 실패에 사회주의로 대응한다”고 썼다. 그러나 〈데일리 텔레그래프〉처럼 정신 세계가 기괴한 자들을 빼면 아무도 부시를 사회주의자로 여기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은 일자리를 지키는 방편이라면 국유화를 지지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공공 서비스 민영화에도 반대한다. 민영화가 공공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유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1947년 영국 광원들은 탄광 국유화를 환영했다. 하지만 몇 년 안 돼 요크셔 지역 광부들은 새 사용자인 정부에 맞서 (노조 관료들을 거슬러) 파업을 벌여야 했다.

그래서 진정한 사회주의의 전통은 언제나 노동자 통제를 중시했다. 이를 영국의 사회주의자 G. D. H. 콜은 이렇게 표현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사회주의를 온전하게 건설할 수 없다.”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신디컬리즘)이 노동운동 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운동은 국가 소유에 반대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이 산업을 장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당시 프랑스 노동조합들은 “공장이 정부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영국에서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은 기술공, 광원, 철도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막대했다.

그래서 1918년 영국 노동당은 당헌에 ‘제4조’를 넣었다. 이 조항은 “생산·유통·교환 수단의 공동 소유”뿐 아니라 “인민이 각 산업이나 서비스를 관리하고 지배하는, 실현 가능한 최선의 체제”를 요구한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은 단 한 번도 이 조항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1945년 영국 노동당 정부는 여러 국유화 조처를 단행했지만, 각료인 스태포드 크립스는 코웃음 치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노동자의 산업 통제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게 바람직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혹시나 또 시비가 붙을까 봐 1995년에 노동당 당시 대표 토니 블레어는 제4조를 “연대·관용·존중하는 정신” 운운하는 장황한 공문구로 개정했다.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대중은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가 처음으로 발표한 법령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산업·상업·금융·농업 분야의 모든 협동조합과 기업에서 생산물과 원자재의 제조·구매·판매·관리와 기업 재정을 노동자들이 통제한다.”

당시 러시아에서 진정한 운동은 아래로부터 나왔다. 쫓겨나거나 도망간 공장주가 부지기수였다. 노동자들은 일터를 접수해 스스로 운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혁명 초기 러시아에 있던 미국의 사회주의자 존 리드는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한 공장에서 공장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한 노동자가 일어나 말했다. ‘동지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술자를 구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아요. 사장은 기술자도 아니었어요. 기술도 모르고, 화학도 모르고, 회계도 할 줄 몰랐어요. 사장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소유하기였죠. 기술적 도움이 필요하면 기술자를 고용했죠. 이제 공장은 우리 것입니다. 기술자나 경리 같은 사람을 고용해서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하자구요.’”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경제가 붕괴하고 외국 군대가 침공해 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런 맹아적인 노동자 통제는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때로는 노동자 통제를 명분으로 특정한 노동자 집단이 자기 이익을 계급 전체의 이익보다 앞세우기도 했다. 이를 저지하려고 볼셰비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혁명 초기에 시도된 노동자 통제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감을 준다.

그후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노동자 통제는 세계 도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36년 스페인, 1968년 프랑스, 1973년 칠레, 1980년 폴란드, 200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들은 일터를 장악하고 기존 소유주와 경영자가 쓸모없는 존재일 뿐임을 보여 줬다.

1956년 헝가리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노동자들은 생산을 관리하려고 평의회를 세웠다. 이 기구는 기본 임금 수준과 고용을 결정하고 책임자를 임명했다.

어떤 관리자는 자리에서 쫓겨나 생산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국의 노동자 평의회는 연기자, 제작자, 보도자, 기술자, 정비공, 청소 노동자들을 한데 뭉치게 했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했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는 독재 정권 타도를 계기로 노동자들이 일터를 장악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는 당시 벌어진 투쟁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리스본 외곽에 있는 작은 의류 공장인 샤르미냐에서는 경영진이 부도 수표로 임금을 지급하려 했다. 오스트리아인인 경영자는 해외로 달아났다. 노동자들(다수는 여성이었다)은 협동조합을 설립해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플라스틱, 섬유, 로프, 자루 등을 제조하는 공장인 에우로필에서는 노동자 40퍼센트가 임시직이었는데, 경영진이 회사를 파산시키려 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생산을 지속했다. 노동자들은 경영진을 쫓아냈고 회사를 무상으로 국유화해 노동자들이 운영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1979년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샤 왕조 독재가 타도됐을 때 노동자들은 “쇼라”(평의회)를 설립해 공장을 운영했다. 이란의 사회주의자 마르얌 포야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쇼라는 구매, 판매, 가격 책정, 원자재 주문 등 공장 운영의 모든 측면에 권력을 행사했다.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는 다양한 위원회가 조직됐다. 직능위원회는 임금, 노동조건, 보험, 보건, 안전에 관한 노동조합 요구를 제기하는 구실을 했다.

“재정위원회는 개별 공장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재정 운용을 감독했다. 통신위원회는 다른 공장의 쇼라와 연락을 유지하는 구실을 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성위원회는 여성 노동자 고유의 요구를 관철했다. 여성위원회는 특히 여성이 노동력의 다수인 섬유·화학 산업에서 두드러졌다.”

2008년 영국에서는 1979년 초 영국을 뒤흔든 “불만의 겨울”이 재현될 조짐이 있었다. 지배자들과 그들에 붙어먹는 하수인들이 그 시절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당시 노동자들이 산업을 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1979년 1월 화물 노동자 파업으로 주유소가 폐쇄되고 생필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운송일반노조는 “긴급” 물자 운송을 허용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무엇이 “긴급”한 것인지는 노조 지부 간부들에게 달려 있었고, 현장 대의원들은 이를 결정하기 위해 “허가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달 국민보건서비스(NHS)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파업을 벌였다. 이번에도 무엇이 “긴급”한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했다.

1월 말 총리는 응급 처치를 하는 국민보건서비스 병원이 절반에 못 미치며,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구급차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도 보건 노동자들이 병원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위계

정부가 보기에 이는 임금 인상 파업보다 더 골치아픈 것이었다. 이런 투쟁은 의료 체계 전반의 위계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사람을 살린 보건 노동자들은 “긴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문제에서 자신들이 정치인들보다 더 낫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통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한 일터는 물론 한 나라에서만 사회주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공장을 장악해도 결국 시장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착취를 조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동자 통제는 민주적으로 사회 운영 전반을 계획해 사회 전반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읽을지는 인쇄 노동자들끼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버스 운행 시간도 버스 노동자들끼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부문별 이익은 사회 전체의 필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주의자 핼 드레이퍼가 말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를 가르는 데에서 노동자 통제는 핵심적인 문제다.

특정 상황에서는 의회가 국민의료서비스처럼 노동자에게 득이 되는 국유화나 실질적 개혁을 단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 통제는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되기까지 일터에서 거두는 작은 승리 모두는 토니 클리프가 말한 “야금야금 진행되는 노동자 통제”라 할 수 있다.

해고된 동료를 방어하며 경영진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노동 “유연화”라는 미명 하에 추진되던 고용 조건 악화를 저지하는 것은 모두 노동자 통제를 위한 투쟁의 일부이다.

그런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지배자들에게 맞설 자신감을 얻는다. 경기 후퇴, 전쟁, 엄습하는 기후 재앙의 도가니 속으로 온 세계가 빨려 들러가는 이때 우리는 지배자들에게 말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을 운영할 능력이 없지만 우리는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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