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직업계고 지원 및 취업 활성화 방안 발표:
기능반 학생 죽음 외면하고 값싼 노동력 만들기에 골몰하는 문재인 정부
〈노동자 연대〉 구독
4월 8일, 밤 늦은 시간에 고 이준서 학생 유가족이 받은 전화 내용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은 기능대회 준비 과정에서 압박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살했다.
사건 발생 후, 나는 해당 학교를 방문하면서 교사로서 부끄럽고 원통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동안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기능대회는 교육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학생들을 메달 경쟁과 가혹한 훈련에 시달리게 만드는 기능대회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인의 죽음 앞에서 제대로 된 성찰조차 없는 교육 당국의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고 이준서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기능대회와 기능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5월 13일,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경주 S 공고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우리는 이준서 학생 죽음의 진정한 원인 밝히고, 교육부의 직업교육 정책을 바로 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공대위의 진상조사단이 실질적인 조사에 들어가면서 실체적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고 이준서 학생은 기능대회 준비과정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힘들어 했다. 이 학생에게는 훈련이 전부였고 청소년 시기에 종합적으로 배워야 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고 이준서 학생은 기능대회(지방대회와 전국대회) 준비기간 약 6개월 동안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훈련을 받았다. 집중 훈련기간 아닌 평소에도 방과후 수업을 마친 후에 밤 11시까지 기능반 활동을 했다.
고된 훈련 과정 때문에 기능반 이외 친구들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기능반 내부 관계의 갈등이 일어나면서 심리적 한계에 내몰린 듯하다. 훈련기간에 체중이 무려 10킬로그램나 빠졌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학교가 합숙훈련을 강행할 정도니, 기능반 학생들이 느끼는 경쟁 압박은 엄청났을 것이다.
안전보다 메달 경쟁
교육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 개학을 연기하는 와중에도 합숙훈련 문제가 계속 터져 나왔다. 3월 25일에 부산 지역 고등학교 4곳에서, 4월 2일에 경북 지역 학교 8곳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음이 폭로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고 이준서 학생 사망 사건 이후에도, 학교들은 기능대회 준비 훈련을 강행했다.
전교조의 실태 조사를 보면, 4월 24일 설문조사에 응답한 학교 198곳 중 50곳에서 기능대회 훈련을 진행했다. 기능반의 병폐가 이슈화되던 5월 14일에도 전화로 몇 군데 학교를 선정해 조사했더니, 14개 학교의 등교 훈련이 적발됐다.
학교들이 아이들 목숨을 담보로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는 기능대회 수상이 직업계고 학교의 위상을 높여 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부는 강력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형식적으로 ‘온라인 개학 및 온라인 수업 지침’ 공문만 발송했다. 또한 합숙훈련이 적발된 학교들이 소속된 시도교육청에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 달라’는 요청을 구두로 했을 뿐이다.
고 이준서 학생이 사망한 지 44일 지난 5월 22일,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직업계고 극복 방안”으로 “2020 직업계고 지원 및 취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학생의 안전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고 떠들었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이 학습 및 건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건전한 경쟁을 통해 기능인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기능경기대회 지원·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적혀있을 뿐 내용은 없다. 사고 후 44일 만에 내놓은 대책치고는 너무 하지 않는가?
코로나19 위험 속에서도 합숙훈련을 방치했던 교육부가 과연 “학생 안전”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기능대회와 경쟁적 교육 제도에 경종을 울린 고 이준서 학생의 죽음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이 고작 이런 것인가? 교육부 방안을 발표한 담당자는 고인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너무 비정하다.
기능대회 자체가 아이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조건에서 ‘학습 및 건강권’은 불가능하다. 기능반을 폐지하고 메달 경쟁을 멈춰야 직업교육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다.
5월 22일 교육부의 발표는 직업교육은 모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교가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경쟁에 의해 선발하여 공급하는 공간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값싼 노동력
지금까지 교육부가 직업계고 기능반 운영 현실을 몰라서 기능반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기능반 훈련이 학생들의 취업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방식 중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로 판단한다. 숙련기술의 저변 확대와 숙련기술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기능대회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능대회 수상은 결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전국 기능대회에서 매년 약 800명의 입상자가 배출되지만, 지난 10년 동안(2007~2016년 통계) 입상자 중 1470명이 대기업에 입사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업계고 학생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척 시늉만 했을 뿐, 사실은 기업을 위해 저임금, 노동착취, 산재의 온상인 현장실습 제도를 유지했다.
2017년 제주도 현장실습생 산재 사망 이후, 문재인 정부는 현장실습을 “학습형”으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기업들은 저렴한 노동력인 현장실습생을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했고, 문재인 정부와 교육부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해 현상실습의 위험성을 방치했다.
얼마 전 정부는 청소년 고용이 금지된 숙박 업소에도 현장실습을 허용하기 위해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하며 규제완화를 했다.
교육부의 “2020 직업계고 지원 및 취업 활성화 방안”도 이전 우파 정부들이 했던 값싼 노동력 제공하기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부의 “기업 인센티브” 정책은 학생들을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곳에서 착취하는 현장실습을 부추기는 방안일 뿐, 제대로 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모든 현장실습생에게 안전조끼를 보급하고 착용을 의무화하도록 유도해 기업관계자의 관심과 지원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업들이 현장실습생을 육안으로 구분하지 못해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았나?
기업을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제공하기 위해 직업계고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정부와 교육부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기능대회와 현장실습은 폐지돼야 한다. 또한 정부는 학생들에게 공공부문의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지방직 행정직군 선발제도 신설”처럼 차별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정적 일자리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교육은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경쟁의 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권리로서 보장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