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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고 현장 실습:
비교육적인 저임금 노동력 제공 수단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발생한 고 이민호 학생 현장 실습 사망 사고는 직업계고(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종합고 직업반)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현장 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이민호 학생 죽음의 진상 규명과 현장 실습 전면 폐지를 위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직업계고는 3학년 1학기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2학기에 현장 실습(사실상 조기 취업)을 하는 식으로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문계고 교육 과정도 수시 모집이 확대되면서 3학년 2학기부터 파행적으로 운영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이 취업과 입시에 종속된 결과다.

ⓒ출처 현장실습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

현장 실습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아주 심각하다. 현장 실습 표준협약서조차 체결하지 않은 사업장이 많고, 산업 안전도 형편없다. 이민호 학생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비극이다. 현장 실습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구의역 참사와 최근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노동자(남양주고 출신)의 죽음을 계기로도 폭로됐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2월 22일 ‘학습 중심 현장 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직업계고 현장 실습 개선 방안’의 후속 조처다. 이번 방안의 골자는 ‘선도기업에서 2~3개월 학습 중심 현장 실습을 하고 수업일수 3분의 2 지점부터 조기 취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장 실습 제도를 약간만 손봐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미 2003년에 ‘고등학교 현장 실습 운영 개선 방안’에서 “조기 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업에 한해 학생을 파견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6년 ‘현장 실습 정상화 방안’에서는 “취업이 예정되어 있고 수업의 3분의 2 이상 이수한 경우에만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취업률 성과주의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 실습은 취업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학교는 취업률을 근거로 각종 지원금을 받는다. 취업률 1퍼센트가 아쉬운 이유다. 학교들이 어찌나 취업률을 중시했던지 지난해 9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시도교육감에게 별도로 의견 표명까지 했다. “취업과 관련한 홍보물에 특정 학생의 개인 정보가 과도하게 포함되고 있고, 홍보물 게시 행위는 차별적 문화를 조성할 수 있으므로, 전국 시도교육감이 홍보물 게시와 관련 각급 학교에 대해 지도·감독할 필요가 있다.”

2월에 발표한 방안은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양적 취업률 평가지표(현행 3점)를 전면 폐지해 학교가 양적인 취업률에 매달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학교의 적극적인 학생 취업 지도·상담을 유도하는 정성 지표를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말로는 취업률 평가를 없애는 것처럼 해 놓고는 실질적 내용은 남겨둔 것이다.

교육부가 추천한 ‘현장 실습 기업 후보군’이 안전을 담보하는 곳인지도 신뢰하기 어렵다. 고 이민호 학생 사망의 진상이 규명되기는커녕 사후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부의 관리감독마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기계 고장의 원인 분석이 누락됐을 뿐만 아니라, 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 대한 자체 안전 점검조차 실시되지 않았는데도 공장 재가동이 승인됐다.

무엇보다 교육부는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은 폐지한다고 하면서도,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의 다른 형태인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2학년 1학기부터 실시)를 확대하고 있다.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에서 나타난 온갖 문제들을 고스란히 겪고 있다. 도제학교 업무를 맡은 한 교사가 과도한 기업 유치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현장 실습과 더불어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와 취업 맞춤반 사업도 폐지해야 한다.

저임금, 산업재해로 내몰리는 학생들

현장 실습 제도의 문제는 비단 실시 시기만이 아니다. 이 제도는 본질에서 비교육적이다. 현장 실습은 1949년 제정된 교육법에 처음 담겼고,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3년에 제정된 산업교육진흥법으로 더욱 강화됐다. 1997년 ‘제7차 교육과정 편성 운영 지침’은 직업계고의 전문교과 학습을 현장 실습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서, 직업계고가 저임금 노동 공급기관으로 변질되는 것을 가속화했다.

고교 현장 실습은 조기 취업 형태로 이뤄져 학생을 저임금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한다. 결국 학생들은 현장 실습 후 취업해서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2013년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현장 실습 내실화 방안’은 “현장 실습을 값싼 노동력 제공의 수단이 아니라 일터 기반의 학습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현장 실습생들의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LG 유플러스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간 홍수연 학생의 죽음과 이민호 학생의 죽음은 말뿐인 방안의 한계를 보여 준다.

산업체 파견 현장 실습 제도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에 내몰아 산업 재해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왔다. 따라서 이 제도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폐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전교조가 최근 실시한 교사 의견 조사 결과를 보면, 교사 63.1퍼센트가 교육부의 현장 실습 개선안에 대해 회의적이라 답했다. 취업보다 교육에 방점을 두는 정책을 원하는 교사 비율도 65.07퍼센트에 달했다.

많은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 1년에 몇백만 원(150만 원~250만 원으로 지역마다 상이)을 부담해야 하는 일반고의 등록금이 부담돼 직업계고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다. 현재 직업계고는 등록금이 무상이다.

만약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일찍부터 취업을 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무상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