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상 성 범죄자 신상 공개 - 새로운 희생양 찾기
〈노동자 연대〉 구독
지난 8월 말 '청소년 대상 성 범죄자' 1백69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신상 공개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번에 공개된 '성 범죄'에는 강간, 성추행 같은 성폭력과 10대 성매매가 포함됐다.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등의 신상을 공개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신상 공개가 청소년 성 범죄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라고 말한다.
신상이 공개된 후 이것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성 단체와 청소년 단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신상 공개를 지지하고 있다.
강간·성추행처럼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성폭력이 근절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성매매처럼 성을 비인간적으로 상품화시키는 것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신상 공개가 청소년 대상 성폭력과 성매매를 근절하는 효과적인 대책일까?
격리
기성 언론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게 '파렴치한' 청소년 대상 성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상 공개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에서 입증된 바 없다. 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가 이미 확립된 미국과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제도 실시 이후 범죄가 사라졌다거나 줄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미국은 미성년자 대상 성 범죄자의 이름과 주소는 물론, 사진까지 공개하고 심지어 집 앞과 차 문 앞에도 성 범죄 전력자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성 범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신고된 강간 범죄율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워싱턴 주 공공정책연구소는 성 범죄자 고지법이 성 범죄자의 재범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신상 공개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처벌 강화가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처벌 강화는 전 세계 지배자들이 범죄 예방 대책으로 늘 내세우는 수법이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처벌 강화로 범죄를 근절한 적이 없다. 사형 제도처럼 범죄에 대한 가장 잔혹한 처벌조차 범죄를 없애지 못했다.
신상 공개는 단지 망신 주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범죄 전력자를 평생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키는 것이다. 신상이 직장에 통보돼 해고되고 주소가 공개돼 그와 가족들은 이웃의 끊임없는 멸시에 시달릴 뿐 아니라 종종 협박, 괴롭힘에 시달릴 것이다. 이번 신상 공개에서 주소는 구까지만 공개가 됐는데, 주소가 아주 자세히 공개되는 서구에서는 범죄 전력자 집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괴롭히는 일이 잦다.
공포
신상 공개는 범죄 예방은커녕, 사회를 온통 도덕적 공포로 가득 채워 범죄 해결책을 이성적으로 토론하기 힘들게 만든다.
이것은 범죄에 대한 히스테리를 증가시켜 종종 범죄 전력자의 집을 습격하는 등 폭력 사태를 조장할 수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한 언론이 1백40건의 아동 성 학대로 9년형을 살았던 사람의 주소를 공개하면서, 그 지역 전체가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주민들이 범죄 전력자 집 주변을 습격해 유리창이 깨지고 차량들이 불타는 등 소요가 2주간 지속됐다. 그들은 아이들을 앞세워 시위를 벌이면서 아동 성 범죄자들을 사형시키거나 거세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출소 후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범죄 전력자들을 공격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동 성 학대자로 몰려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공포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 중에 조금만 이상하게 여겨지면 아동 성 학대자로 지목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기성 정치가들과 언론이 계속해서 범죄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선동을 일삼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왜곡
기성 언론은 범죄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 범죄에 대한 위협을 과장하고 범죄 실상을 왜곡하곤 한다.
기성 언론은 청소년 대상 성폭력과 성매매 사건을 보도하면서 가정 밖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 이번에 신상이 공개된 사람은 대개 낯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강간·성추행 사건의 대부분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보고된 아동 성 학대 사건 중 80.7퍼센트가 아는 사람에 의한 것이었다.
지배자들은 '거리의 위협'을 강조하는 대신 가정 내 위험은 과소평가한다. 많은 아동 성 학대가 가정 내에서 벌어진다. 형사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된 아동 성 학대 사건 가운데 36.3퍼센트 가량이 가족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러나, 이것조차 매우 과소평가돼 있다. 아동 성 학대는 대부분 더 광범한 신체적·정서적 학대 가운데서 일어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가정 내에서 벌어진다.
가정은 성 학대 뿐아니라 수많은 폭력이 오가는 곳이다. 가장 많은 살인과 구타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가정이다. '거리의 위협'에 대한 강조는 성폭력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성매매까지 신상 공개에 포함시킴으로써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성을 파는 청소년의 대부분이 억압적 가정을 못 견뎌 가출한 아이들이란 점을 무시하고 있다.
좌절
이번 신상 공개에서 언론은 모두 '파렴치한' 개인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단지 개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강간, 성추행 같은 성폭력과 성매매는 우리 사회에서 성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을 순전히 개인의 내면의 감정으로만 여기지만, 그것은 결코 더 넓은 사회와 분리돼 있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넓은 관계들이 우리의 성적 감정과 행동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커다란 압력 하에 자라난다. 사회는 우리에게 완벽한 파트너를 찾고 이상적인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력을 넣는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성과 사랑, 결혼 생활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이 실현되는 것은 권력과 부를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뿐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는 나날의 삶의 고역 ― 가난, 장시간 노동, 형편없는 주택 등등 ― 은 좋은 관계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간다.
언론은 어린이 강간범과 성 추행범을 악마적 본성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지만, 결코 타고난 심성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경우 어린이 강간범과 성 추행범은 그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성 학대를 비롯한 각종 학대의 희생자이다.
비록 어린 시절에 학대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커서 어린이를 학대하진 않지만, 이것은 아동 성 학대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기성 언론이 청소년 성매매의 원인을 성을 사고파는 개인들의 '왜곡된 성 의식'에서 찾는 것 역시 위선이다.
10대가 성을 파는 것은 원조교제를 '가벼운 아르바이트쯤으로 여기는' 데서 나온 게 아니다. 성을 파는 청소년의 압도 다수가 가난에 시달린다. 이들은 대부분 숨막히는 가정과 학교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가출해 오갈 데 없어 어쩔 수 없이 성을 판다.
시간당 1천5백 원∼1천7백 원 가량밖에 안 되는 초저임금을 받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청소년이란 거의 없다.
성을 사는 성인들에게 비난의 초점을 맞추는 것 또한 잘못이다. 이들의 행동이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성을 사는 성인들이 청소년이 몸을 팔 수밖에 없는 가난과 억압, 소외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10대의 성을 사는 성인들 역시 체제의 희생자다. 어린 시절부터 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개방적으로 토론하는 대신 억누를 것만을 강요받은 사람들이 성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사회에서 성을 돈 주고 살 수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성을 왜곡시키는 것은 개인의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바로 가난과 소외, 억압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다.
진정한 해결책
청소년 대상 성폭력과 성 매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따라서 개인을 희생양 삼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신상 공개는 문제의 근원을 없애기보다는 청소년 대상 성 범죄에 대한 대중의 공분을 이용해 분노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버린다.
청소년 대상 성 범죄 단속 강화는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부의 불평등, 각종 차별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다른 데로 돌리고 사회를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범죄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말은 검열을 강화하고 유흥가 단속 등 대중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국가의 시도를 정당화한다. 이것은 경찰력 강화를 위한 명분 쌓기다.
성 범죄 단속 강화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지배자들의 주장은 순전한 위선이다.
많은 청소년의 가정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몰아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게 만들고 몸을 팔게 만드는 자들은 바로 지배자들이다. 입시 경쟁과 억압적 학교 생활을 강요해 수많은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자들이 지배자들이다.
지배자들이 내거는 '청소년 보호'는 늘 청소년을 숨막히게 만드는 각종 억압 ― 두발 제한, 복장 단속, 거리 통행 제한, 영화·만화·소설·음악 등 문화 통제 등 ― 을 강화해 왔을 뿐이다.
청소년을 고통스럽게 하는 성폭력과 성매매는 분명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상 공개 같은 마녀사냥이나 형량 강화 같은 방식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다.
진정한 해결책은 성폭력을 낳고 성매매를 부추기는 체제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는 성폭력과 성매매를 낳는 사회적 요인들 ― 가난, 성적 소외, 여성 차별 등 ― 에 맞설 때만 진정으로 청소년을 성폭력과 매매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